경제·금융 정책

"대출 못받으면 폐업할 지경… 대기표 한장 받으려 두시간반 기다려"

■코로나19 소상공인 직접대출 시범실시 첫날

세금 체납 없으면 신청 5일 내 1,000만원 통장으로 입금

보증부대출과 동시 상담에 업무 과부하…현장 혼선 키워

"내일 오라" 안내에 고성…서류 준비 못해 발길 돌리기도

25일 소진공 서울동부센터에서 1,000만원 대출을 신청한 정모씨가 27일 대출가능을 뜻하는 번호표를 손에 들고 있다.25일 소진공 서울동부센터에서 1,000만원 대출을 신청한 정모씨가 27일 대출가능을 뜻하는 번호표를 손에 들고 있다.




25일 소진공 서울중부센터에서 방문객이 자신의 상담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25일 소진공 서울중부센터에서 방문객이 자신의 상담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피해를 입은 소상공인을 지원하기 위해 중소벤처기업부 산하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 1,000만원 이하 직접 대출을 시작한 첫날인 25일. 소진공 서울동부센터가 오전9시 문을 열고 접수를 받은 지 1시간 만에 긴 줄이 늘어섰다. 직원들은 “저 줄 끝으로 가라”며 교통정리로 분주했다. 보증부 대출인 기존 코로나19 경영안정자금은 신용보증재단의 보증심사가 밀려 2개월이나 걸린다. 이에 정부는 ‘급전’이 필요한 저신용 소상공인을 위해 62개 소진공 센터에서 1,000만원을 직접 대출해주기로 했다. 이날은 다음달 초 공식 대출을 앞두고 1주일간 시범적으로 직접 대출을 처음 실시한 날이다. 5일 만에 1,000만원을 대출받을 수 있다는 소식에 소상공인들은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혹시나 늦으면 예산이 소진돼 대출을 못 받을 수 있다는 걱정 때문에 미리 받아놓기 위해서다. 성동구에서 커피납품업체를 운영하는 정모(50)씨는 줄을 선 지 2시간 반이 지나고서야 겨우 ‘대기번호 10’이라고 적힌 번호표를 받았다. 정씨는 대기표를 보여주며 “이거 한 장을 받으려고 2시간 반이나 기다렸다”며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번호표를 받아든 정씨는 한참을 기다렸다가 상담석에 앉아 직원과 대화를 나눴다. 정씨의 가게는 코로나19 피해로 올 들어 매출이 전년 대비 30% 줄었다. 정씨의 신용등급은 4등급 이하. 그러다 보니 지난해 보증부 대출심사에서는 탈락했다. 신용보증재단의 보증심사가 필요한 보증부 대출에서 탈락한 정씨는 “담보부터 신용등급까지 심사가 너무 까다로워 보증부 대출을 받을 생각을 접었다”고 말했다. 그나마 저신용자에 1,000만원을 빌려주는 이번 대출은 정씨에게 마지막 ‘단비’ 같은 것이다. 정씨가 한걸음에 달려온 이유다. 5일 후면 정씨는 1,000만원의 대출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정씨는 “직접 받을 때까지 안심할 수 없다”며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이날 센터가 더 붐빈 것은 고신용자를 위한 긴급경영안정자금 대출(최대 7,000만원)과 저신용자를 위한 직접 대출(1,000만원) 신청을 한꺼번에 받아서다. 센터 문 앞의 줄도 고신용자·저신용자가 두 줄로 나눠 섰다. 보증부 대출은 소진공에서 소상공인 확인서만 발급하고 대출에 대한 상담을 한다. 이 방식이 현장의 업무 과부하를 낳았다. 센터 직원이 대기 줄에 “보증부 대출은 신용보증재단의 보증심사가 밀려 2개월이 걸리지만 직접 대출은 5일이면 된다”고 안내했지만 줄을 갈아타는 고객은 없었다. 센터에서 확인서를 받고 온 과일업체 사장 민모(42)씨는 “장사는 너무 안되지만 그나마 고신용자라 정부가 지원해줄 때 7,000만원을 대출받아놓으려 한다”며 “코로나19가 9월까지도 이어질 수 있다는 이야기가 있어 (신속한 대출이 이뤄진다 해도) 1,000만원으로는 감당이 안 된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오후12시가 넘어서야 센터 앞의 대기 줄은 조금씩 줄어들었다. 그러나 대출을 위한 기본적인 서류조차 준비 없이 왔다가 실랑이를 벌이는 모습도 보였다. 1시간 넘게 기다렸다는 40대 한 여성은 “서류가 필요한지 몰랐다”며 발길을 돌렸다. 종로구에 위치한 서울중부센터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12시가 되기도 전에 신청 접수가 마감됐다. 밀려드는 신청자들 때문에 점심 전에 이미 상담 한계선인 대기번호 300번을 넘겨 추가 접수를 받지 않기로 한 것이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급히 뛰어왔다 발길을 돌린 소상공인들과 안내 직원 간에 험한 말도 오갔다. 번호표만 받아들고 밖에서 기다리는 신청인도 지치기는 마찬가지다. 교육 사업을 하는 강모씨는 코로나19로 기업 교육이 모두 취소되면서 직원 10명 가운데 4명을 강제 퇴직시켰다. 강씨는 “석 달째 매출이 제로(0)”라고 했다. 이렇다 보니 1,000만원이라도 받아야 남은 직원들과 한 두달이라도 버틸 수 있다. 강씨는 순서 호출을 기다리며 “밥을 먹으러 가지도 못하고 센터 근처에서 담배만 피우고 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전국의 소진공 센터에서 하루 종일 이런 상황이 벌어졌다. 소진공 전체 서버도 이날 일시적으로 다운됐다. 홈페이지로 고객들이 몰려들면서 다운이 되자 연결된 전체 서버에도 영향을 미친 결과다. 중기부는 이날 신속한 보증지원을 위해 단기인력(3개월) 290명을 채용해 지역 신용보증재단에 파견했다. 그러나 코로나 피해 소상공인에 지원하는 경영안정자금의 집행률은 23.2%에 그치고 있다. 중기부는 이날 “지난 2월13일 이후 현재까지 전국 소상공인이 경영안정자금으로 총 8만8,729건을 접수해 이 중 3만8,684건(43.6%)이 심사 처리돼 은행에 보증서가 발급됐다”며 “이렇게 발급된 보증서를 가지고 실제 대출이 실행된 건수는 총 2만617건”이라고 밝혔다. 아직 전체 신청자의 절반 이상이 보증심사를 기다리고 있고 4분의 3은 대출금을 못 받은 셈이다. 매출은 줄고 자금은 부족한 소상공인들의 속은 더 타들어 가고 있다.

시중은행들은 이날 소진공 센터의 상황을 지켜보면서 다음달 1일부터 본격 실시되는 1~3등급 소상공인 긴급대출을 앞두고 촉각을 세우고 있다. 은행으로도 대출수요가 급격히 몰릴 수 있어서다. 일부 은행은 소상공인이 많은 지역 내 영업점에 전담 인력을 배치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양종곤·이재명·이지윤기자 ggm11@sedaily.com

양종곤·이재명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