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업수당의 일부를 재정으로 보전하는 ‘고용유지지원금’ 신청건수가 두 달도 되지 않아 2만 건을 넘겼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인력 감축 등에 따른 대량 실업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고용 안정이 ‘발등의 불’로 떨어진 노동계는 일단 ‘총고용유지’ 요구에 집중하며 최저임금 인상이나 단위 사업장의 임단협, 일부 기업의 특별연장근로 협상에 대해서는 강경대응을 자제하고 있다. 하지만 경기 침체로 구조조정과 해고 사태가 본격화할 경우 최저임금, 고용안정 요구 등과 얽히며 사측이나 정부와 정면 충돌할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 사태의 후폭풍에 노사정 관계도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셈이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1월 29일부터 지난 25일까지 고용유지지원금을 신청한 사업장이 2만254곳으로 집계됐다고 26일 발표했다. 이중 30인 미만 영세 사업장 비율이 전체의 93.9%에 달한다. 코로나19로 여행업·외식업 등 서비스업 중심의 내수경기가 얼어붙으면서 영세사업장에 타격이 집중된 것이다. 고용유지지원금은 사용자가 경영난으로 휴업하더라도 근로자를 해고하지 않는 경우 휴업수당(평균임금의 70%) 중 일부를 재정으로 보전하는 제도다. 고용부는 지난 1월 29일부터 지원 요건에 코로나19로 조업이 중단된 사업장을 추가 반영했다.
더구나 코로나 19가 미국·유럽·아시아 등 전세계로 확산하면서 글로벌 밸류체인에 영향을 미치고 대기업에도 전방위적인 고용 타격이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민주노총 금속노조는 최근 산하 사업장에 보낸 임단협 지침에서 임금 인상 가이드라인을 기본급 기준 12만304원으로 정했지만 지난해 실제 평균 인상액인 2만576원(총 조합원 18만 명 중 13만 명 대상, 1월 21일 기준)보다 올해 인상액이 낮을 것이라는 관측이 높다. 금속노조 관계자는 “인상 요구액은 교섭 요구이니 줄이거나 하지는 않겠지만 임단협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많다”고 말했다. 서비스업 중심의 소규모 사업장 뿐만 아니라 제조업·대기업에서도 위기를 느끼고 있는 셈이다.
고용부가 지난 1월부터 특별연장근로 인가 사유에 경영상 이유를 포함하자 ‘주 52시간 근로제의 근간을 흔들지 말라’며 강경히 반발했던 양대노총은 최근 ‘총고용유지’를 요구하며 대응을 자제하고 있다. 금속노조 소속 현대차노조에서 사측의 특별연장근로 협상 요구에 응했지만 민주노총에서 공식 입장을 내지 않은 것이 대표적인 예다. 정흥준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그동안 유연근로제는 양대노총에서 강하게 반대했던 부분인데 수용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최저임금법에 따라 고용부의 최저임금위원회 심의요청이 이달 안으로 예정돼 있지만 양대노총의 인상 요구도 쏙 들어갔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코로나 19로 고용부터 불안한 상황에서 인상 목소리를 공개적으로 내기 어렵다”고 말했다. 오히려 한국경영자총협회에서 주휴수당 등 최저임금 제도를 고치자고 요구하는 상황이다.
다만 현재 물밑에서만 돌고 있는 ‘구조조정’이 실제 계획으로 발표되는 순간 노사 관계는 격랑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일감이 몰려들면 기업들은 현대차의 사례처럼 신규 채용을 자제하고 추가 근로를 시킬 것으로 보인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구조조정의 결과 잘려 나가는 것은 정규직이지만 경기가 회복되면 새롭게 채용되는 사람은 비정규직”이라며 “코로나19 이후 특별연장근로 요청도 빗발칠텐데 제도를 남용하는 사업장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잠잠했던 근로시간·최저임금·고용안정성 문제가 한꺼번에 튀어나오게 되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위기 상황에서 노사관계를 사안별로 해결하는 단계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정 위원은 “최저임금도 아직은 논의가 되고 있지 않지만 소상공인의 어려움이 많다면 동결을 한다든지 근로시간·최저임금 등을 하나하나 해결하는 단계적 접근이 필요하다”며 “한꺼번에 제도를 뜯어고친다면 저항이 생기고 극심한 대립으로 치달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