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간 디지털화폐 패권경쟁이 카운트다운에 들어가면서 다른 주요 통화 발권국들도 주도권을 놓칠세라 대책 마련에 돌입했다. 특히 기축통화국인 유럽연합(EU)·일본은 디지털화폐에 대해 신중 모드에서 적극 모드로 급격히 태세전환 중이다. 화폐의 디지털화 추세에 뒤처질 경우 유로화·엔화의 입지가 한층 위축될 수 있다는 위기감에 따른 것이다.
예상대로 인민은행이 디지털위안화를 발행하고 페이스북 자회사인 칼리브라가 미국달러화와 연동한 민간 발행 암호화폐 ‘리브라’를 유통해 국제지급결제시장을 비집고 들어온다면 유로화·엔화의 외환거래 비율 추가 하락이 점쳐진다. 권혁준 순천향대 교수는 “만약 미국 당국이 리브라를 통한 송금·지급결제를 허용할 경우 다른 나라들도 (미국의 영향력을 의식해) 무역대금 등의 결제를 리브라로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이렇게 되면 유로화 등의 입지는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어 EU는 리브라 프로젝트를 적극 견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U에서는 프랑스가 앞장서서 중국보다 먼저 ‘중앙은행 발행 디지털화폐(CBDC)’를 연내 시범 발행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프랑스중앙은행의 프랑수와 빌루아 드 갈로 총재는 지난해 12월 파리에서 열린 한 금융 콘퍼런스에서 연사로 나와 “우리는 세계 최초로 CBDC를 발행함으로써 벤치마크 CBDC를 보유하는 이점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에서는 집권여당 핵심 멤버들이 총대를 메고 나섰다. 2월7일 아베 신조 총리의 최측근인 아키라 아마리 전 경제상과 자민당 의원들이 오는 6월 주요7개국(G7) 정상회의에서 CBDC를 어젠다로 상정하도록 추진할 것을 정부에 주문했다. 2월10일에는 자민당의 은행 및 금융체계 연구위원회 수장인 고조 아마모토가 디지털엔화를 3년 내에 만들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국제결제은행(BIS)의 ‘2019년도 외환거래량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유로화의 외환시장 거래량(장외거래 기준)에서 유로화가 차지하는 비율은 2010년 40%에 근접한 후 하락세를 타며 2019년에는 32%대로 내려앉았다. 엔화 비율도 2013년 23%로 정점을 찍은 뒤 지난해 16.8%로 떨어졌다. 반면 미국 달러의 점유율은 2010년 84.9%에서 2019년 88.3%로 올라 강세를 이어갔고 중국 위안화 점유율도 같은 기간 0.9%에서 4.3%로 상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