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코로나 블루' 문화계, 자연에서 희망 찾다

극장가 한파 속 '모리의 정원' 개봉

자연과 더불어사는 삶의 가치 전해

서점가, 봄 담은 '야생의 위로' 출간

미술계는 김종학·김종휘 작품 선봬

온라인 전시로 자연의 생동감 전달

영화 모리의 정원 스틸 컷./사진제공=영화사 진진영화 모리의 정원 스틸 컷./사진제공=영화사 진진



구순이 넘은 화가가 말랑하게 삶아낸 소시지와 지글지글 구운 생선, 고슬고슬한 쌀밥으로 아침 식사를 한다. 이가 성하지 않아 식사 도구로 집게와 가위까지 동원해야 하지만 표정을 보니 꽤 맛난 모양이다. 배를 든든히 채운 그는 비장한 표정으로 의관을 정제한다. 먼 길 떠나는 나그네를 바라보는 듯한 부인의 불안한 시선을 뒤로 한 채 지팡이 두 개를 짚고 길을 나선다. 어디로 가나 싶던 순간 목적지는 금세 나타난다. 집 안 정원이다. 당황스럽기도 하지만 관객은 이내 그에게 초록빛 정원이 우주보다 넓은 공간임을 알게 된다.

■30년을 들여다봐도 신비한 정원


일본 영화 ‘모리의 정원’이 지난달 26일 한국에서 개봉했다. 코로나19로 극장가에는 미증유의 한파가 몰아친 와중에 내린 과감한 결정이다. 불안과 우울의 시대에 희망의 메시지를 전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배급사 측 기대다.

30년 동안 대문 밖으로 제대로 나간 적 없는 노화가는 정원에서 시간을 잊은 채 일개미를 지켜보고 수국 사이를 노니는 꿀벌을 지긋하게 바라본다. 풀잎을 향해서는 “여태 자라고 있었는가”라며 인사를 건넨다. 비밀의 연못 안에 사는 송사리는 그에게 더 없이 소중한 친구다. 손수 쓴 집 앞 문패마저 비싼 작품으로 인정받아 걸핏하면 도난당하기 일쑤지만 세속적 성공에는 무심한 노화가는 그저 “사는 게 너무 좋다. 또 살고 싶다”고 말할 뿐이다. 영화는 일본 실존 화가 쿠마가이 모리카즈의 생애를 다뤘다. 일본 대표 배우 마자키 츠토무와 키키 키린이 노부부의 일상을 잔잔하게 연기하며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소박한 삶의 가치를 알려준다.

‘야생의 위로’ 저자의 자연 채집 기록물./사진출처=에바 미첼 인스타그램‘야생의 위로’ 저자의 자연 채집 기록물./사진출처=에바 미첼 인스타그램


■자연 관찰하며 우울증 잊다


‘코로나블루’가 만연한 요즘, 문화계는 ‘자연’에 주목한다. 극장 뿐 아니라 출판계와 미술계에도 자연의 치유 효과에 주목한 작품들이 잇따르고 있다.



서점에서는 영국 박물학자 에바 미첼의 저서 ‘야생의 위로’가 눈에 띈다. 자신의 우울증 극복기이자 자연 관찰 기록물로, 25년 동안 우울증에 시달리던 중 집 근처의 소박한 자연들 덕분에 마음 속 겨울을 몰아내고 봄 같은 위안을 얻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오두막집 주변을 오가며 보고 듣고 느낀 자연을 섬세한 문장, 따뜻한 사진과 스케치 그리고 수채화로 기록했다.

평상시 같았으면 단순한 자연 관찰기 정도로 치부됐을 수 도 있지만, ‘집콕’이 일상화한 독자들에게 집을 나서지 않고도 문밖의 봄날을 엿보게 하는 책이란 호평을 받는다. 저자는 현재도 인스타그램 등 SNS를 통해 자연 관찰 작품을 공개하며 외부와 소통 중이다.

김종학 ‘숲’ 2011년작./사진제공=부산시립미술관김종학 ‘숲’ 2011년작./사진제공=부산시립미술관


■온라인으로 전하는 자연의 향연

생명력이 넘치는 자연 소재 미술작품도 온라인으로 접할 수 있다. 부산시립미술관은 야심 차게 준비한 김종학(83) 작가 전시회가 휴관으로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자 VR 투어 공간, 온라인 해설·작가 인터뷰 등을 마련했다. 자연의 정취를 화려한 색채로 구현한 작가의 작품 세계는 온라인에서도 꽤 생생히 소개된다. 해설을 맡은 박진희 학예사는 “우울해지기 쉬운 요즘 희망과 응원의 메시지를 담아 온라인 감상 기회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김종휘의 1999년작 ‘향리’ /사진제공=60화랑김종휘의 1999년작 ‘향리’ /사진제공=60화랑


서울에서는 평생 자연을 그린 김종휘(1928~2001)의 유작전 ‘향리(鄕里)’가 성북동 60화랑에서 한창이다. 태를 묻은 고향 경주와 어린 시절을 보낸 이북 광산지역을 마음에 품었으되 추상적으로 그려내 한국 어디서든 볼법한 자연 풍경이 완성됐다. 굽은 길과 나뭇가지가 겹쳐 보이는 초기작, 유려한 붓질로 바람의 형상을 완성한 후기작을 비교해 감상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화랑 홈페이지에서 감상이 가능하고 전화예약 후 직접 방문할 수도 있다.


정영현·조상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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