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목요일 아침에]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임석훈 논설위원

어금니 아빠 이영학·박사방 조주빈 등

'양의 탈' 쓴 이중적인 행태에 경악

총선 후보자 40% 사기 등 전과있어

사탕발림 속지말고 제대로 투표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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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천사가 여행 도중 어느 부잣집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됐다. 부자는 천사들에게 수많은 객실 중 차가운 지하실의 비좁은 공간을 내주었다. 두 천사가 잠자리에 들 무렵 늙은 천사가 벽에 구멍이 난 것을 발견하고는 그 구멍을 메워주었다. 젊은 천사가 “아니, 우리에게 이렇게 대우하는 자들에게 그런 선의를 베풀 필요가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늙은 천사가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네”라고 말했다.

그다음 날 밤 두 천사는 가난한 집에 머물게 됐다. 농부인 집주인 부부는 자신들도 부족한 음식을 함께 나누었을 뿐만 아니라 침대까지도 내주었다. 다음 날 아침 농부 내외가 암소가 죽은 것을 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죽은 암소는 그들이 우유를 짜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던 유일한 소득원이었다. 이것을 보고 젊은 천사가 화가 나서 늙은 천사에게 따졌다. “부잣집은 모든 걸 가졌으면서 불친절했는데도 도와줬으면서 궁핍한 살림에도 자신들의 모든 것을 나눴던 농부의 귀중한 암소를 어떻게 죽게 놔둘 수 있나요.”

늙은 천사가 대답했다. “부잣집에서 잘 때 난 벽 속에 금덩이가 있는 것을 발견했지. 그래서 나는 그 금을 찾지 못하게 구멍을 막은 걸세. 어젯밤 우리가 농부의 집에서 잘 때는 죽음의 천사가 그의 아내를 데려가려고 왔었네. 그래서 내가 대신 암소를 데려가라고 했지.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네” 외국에서 전해 내려오는 얘기다.


# 인터넷 메신저 텔레그램에서 ‘박사방’을 운영하며 성 착취물을 제작·유포한 혐의로 지난달 구속된 조주빈. 그는 얼마 전까지 비정부기구(NGO)에서 장애인지원팀장으로 봉사활동을 했다. 재활원과 보육원·요양원 등 여러 곳에서 자원봉사자로 성실하게 일했다. 지난해 11월 한 보육원에서 진행한 운동회에 참석한 모습이 일간지에 실리기도 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웃고 떠들며 부대끼다 보니 봉사자와 수혜자가 아닌 형과 동생, 오빠와 동생이 돼 편안히 즐길 수 있었다”고 했다. 입에 담기조차 힘든 온갖 가학행위를 일삼은 ‘박사방’ 운영자라고 믿기 힘든 모습이다. 사건이 알려지자 지인들과 봉사단체는 “그에게 별다른 특이한 점이 없었다”며 의아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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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년 전 딸의 친구를 살해해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한 이영학. 그는 얼굴 전체에 종양이 자라는 ‘거대 백악종’을 앓으면서도 딸 수술비를 조달하려 애쓰는 사실이 알려져 ‘어금니 아빠’ ‘천사 아빠’로 유명세를 탔다. 수술에 필요한 7억원을 마련한다며 자전거 전국 일주, 길거리 모금활동도 벌였다. 모금차 미국으로 간다는 그에게 많은 시민들은 “힘내라”며 응원의 메시지까지 보냈다. 하지만 딸 친구에게 몹쓸 짓을 하다 살해한 혐의로 붙잡힌 뒤 밝혀진 그의 이중생활은 놀라웠다. 빈곤층 행세를 하며 후원을 호소한 것과는 달리 고급 수입차를 몰고 다니는 등 호화생활을 즐겼다.

살다 보면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절감하는 때가 적지 않다. 조주빈·이영학에게 감쪽같이 속은 주변 사람들도 그랬을 것이다. 양의 탈을 쓴 늑대는 장삼이사에만 있는 게 아니다. 입만 열만 국민을 떠받들고 약자를 위한다고 말하는 정치인도 예외가 아니다. 많은 국민이 ‘조국 사태’에 분노하고 정의당에 ‘정의란 무엇인가’를 묻고 있는 까닭도 겉과 속이 다른 이중성에 배신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4·15총선이 2주일 남짓 남았다. 역시나 전체 후보자 가운데 40% 가까이가 전과자다. 음주운전·사기 같은 도덕성 논란이 불거질 수 있는 범죄를 저지른 사람뿐만 아니라 살인 등 강력범죄와 연루된 후보까지 있다. 비례대표 후보도 10명 중 3명꼴로 범죄경력이 있다. 선택하는 입장에서 이렇게 공개된 경우는 그나마 다행이다. 문제는 미소 속에 탐욕을 감춘 후보들이다. ‘야누스의 얼굴’을 가려내는 일은 결국 국민의 몫이다. 유권자들이 후보의 겉모습과 사탕발림에 현혹되지 말고 정신을 바짝 차려 투표하는 수밖에 없다. shim@sedaily.com

임석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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