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가 지난달 31일 최저임금위원회에 오는 2021년 최저임금 심의를 요청했다. 지난 1986년 도입돼 1988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최저임금제는 법적 지위에서 열등하고, 경제적 형편에서 열악한 노동자들에게 최소한의 생활 수준을 보호하는 순기능을 발휘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최근 2~3년간 우리 사회·경제활동의 저변을 형성하는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에는 직격탄이 됐으며 경력 없는 청년 사회 초년병들에게는 아르바이트 기회조차도 차단하는 진입 장벽을 만들어 낸 주범 중 하나로 전락했다. 그 결과 취업 시장에서는 소위 ‘을’이 보호되는 것이 아니라 ‘을’과 ‘을’의 싸움이 벌어지고 말았다. 허울만 사장이던 ‘갑’들은 숱하게 폐업하고 ‘을’의 기회도 갖지 못하는 가정들이 늘어났다. 이런 현상이 빚어진 데는 최저임금제가 갖는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지불 능력과 형평성이라는 경제적 현실을 무시한 채 소득주도성장이라는 정책을 고집한 정부에 그 책임이 있다.
유례없는 글로벌 감염병 사태를 맞아 전 세계 경제가 위축·퇴행할 움직임을 보이는 가운데 해외 경제 분석기관에서는 우리나라의 2020년 실질 국내총생산이 마이너스 성장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실제로 올 1·4분기는 전년 동기 대비해 감소했다는 평가들이 나온다. 그간 소득주도성장으로 인해 활력을 잃고 면역력을 상실할 정도에 이르렀던 우리 경제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이제는 호흡곤란과 기침 증상을 보이는 것이다.
한시라도 빨리 모든 치료 방법을 동원하는 한편 안정을 취하며 영양을 충분히 섭취하도록 해 한국 경제의 저항력을 높여야 한다. 그런데 이 와중에 2021년도 최저임금이 인상된다는 것은 병자의 밥그릇을 뺏는 것과 같다. 인체의 세포와도 같은 최소 경제주체들이 활력을 되찾지 못하면 몸이 죽는 것은 시간문제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서기 원년 기준으로서의 BC(Before Christ)와 AD(Anno Domini)의 의미를 BC는 ‘코로나 이전(Before Corona)’, AD는 ‘질병 이후(After Disease)’로 봐야 할지도 모른다는 견해들이 있다. 실제로 14세기 중세 유럽은 페스트를 겪고 난 뒤 사회·경제적으로 많은 변동이 있었다. 거기에는 인생관을 포함한 인간 실존에 대한 사고의 변화까지 포함돼 있었다. 중세에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글로벌 네트워크로 엮여 있고 4차 산업혁명의 흐름 속에 있는 인류는 정말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변동의 격랑 속에 놓일 수밖에 없다. 직업의 유형뿐만 아니라 고용과 근로 형태를 포함한 경제활동의 양상이 대폭 달라질 것이다.
그런 점에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모든 최저임금위원회의 위원들에게 호소한다. 최저임금법상 최저임금위원회는 근로자위원·사용자위원·공익위원으로 구성한다고 돼 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모두가 공익위원일 뿐이다. 만일 그 자리에 오로지 자기 직역을 대표해 나온다면, 그것도 양측이 동수로 나와 똑같은 목소리를 낸다면 굳이 그 자리에 위원들이 있을 필요는 없다. 직역의 소리는 자문이나 의견 제시로 충분하다. 실제로 영국의 경우 1998년 전국최저임금법에서 저임금위원회는 “영국 경제 전체 및 경쟁력의 영향을 고려해 권고안을 내야 한다”고 규정하면서, 특히 사용자 및 노조 출신 위원은 자기 집단의 이익을 대변하기보다 합리적이고 건설적으로 결정에 참여해야 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이제는 모두가 공익을 대표해 진지하게 머리를 맞대야 한다. 그간 우리 최저임금제가 가진 과도한 경직성·비현실적 요소에 대해 많은 전문가가 지적했고 숱한 대안도 제시된 바 있다. 최저임금위원회는 최소한 올해만이라도 최저임금 인상을 놓고 한국 경제의 숨통을 끊어놓으려는 실랑이를 하지 말고 코로나19 사태 이후를 전화위복으로 바꾸기 위한 고민을 함께해 국민에게 내놓기 바란다. 특히 ‘공식적인’ 공익위원들은 좌고우면하지 말고 진짜 국민 경제와 서민의 삶을 살리는 길이 무엇인지 양심적인 결단을 조속히 내려 휘청거리는 경제의 불확실성을 조기에 차단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