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이 7일 신자들에게 “‘두려워하지 마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면서 희망을 간직하고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자”고 전했다.
염 추기경은 이날 오는 12일 부활절을 앞두고 내놓은 ‘부활절 메시지’에서 “현재 우리도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처럼 어둠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모든 것을 무(無)로 돌려놓는 죽음 앞에서 사람은 두려움과 절망에 빠지기 마련”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우리 교회는 ‘미사의 중단’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았다”며 “우리 신자들은 물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한 피치 못할 가슴 아픈 결정이었다”고 전했다 이어 “신자와 함께하는 미사 중단이 길어지면서 영적인 고통이 커갔지만 그 고통 안에는 축복도 숨겨져 있다고 생각한다”며 “신자와 사제들이 서로를 향한 사랑과 존경이 깊어지고 일상이 은총임을 깊이 깨달아 우리 신앙 공동체는 한층 성숙해질 것”이라고 전했다.
염 추기경은 코로나19로 사각지대에 놓인 취약계층에 대한 관심도 촉구했다. 그는 “주님은 우리가 서로에게, 특히 어렵고 힘든 이들에게 희망의 빛이 되기를 원하신다”며 “교황께서 그들과 함께해달라 요청한 것처럼 이들을 향한 도움의 손길이 앞으로도 계속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그는 총선을 앞두고 있는 정치권에도 “어려운 처지에 있는 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정치를 펼쳐주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밝혔다.
앞서 천주교 서울대교구는 지난 2월26일부터 이어온 미사 중단 조치를 무기한 연장하기로 결정하고, 오는 12일 부활절 미사도 일부 사제단만 참석한 채 온라인으로 대체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염 추기경은 오는 12일 부활절 미사를 신자 없이 진행한다. 모든 미사는 가톨릭평화방송TV와 유튜브를 통해 생중계된다.
다음은 2020년 부활 메시지 전문.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마태 28,20)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내려주시는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 모두와 온 세상에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만물이 소생하고 아름답게 피어나는 좋은 계절에 우리는 주님 부활 대축일을 맞이했습니다. 그럼에도 마음의 봄은 아직 멀리 있고 부활의 기쁨을 느끼기도 어렵습니다. 작년 12월에 시작된 코로나19로 인한 두려움과 불안의 먹구름이 온 세상을 덮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위기 극복을 위해 적극적으로 희생하고 투신하는 분들을 보면서 우리가 갈망하는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얻게 됩니다.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인내와 희생, 협조를 아끼지 않으시는 국민 모두에게도 깊은 감사와 존경을 드립니다.
사순 시기를 시작하면서 우리 교회는 ‘하느님의 백성과 함께하는 미사의 중단’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았습니다. 우리 신자들은 물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한 피치 못할 가슴 아픈 결정이었습니다. 미사를 봉헌하지 못하고 성체도 영하지 못하는 힘든 상황에서도 꿋꿋하게 신앙생활을 하시는 신자 여러분께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또한 홀로 미사를 지내며 신자들을 위해 기도하고 마음 써주시는 신부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 신자와 함께하는 미사 중단이 길어지면서 영적인 고통이 커갔지만, 그 고통 안에는 축복도 숨겨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자들은 사제를 그리워하고, 사제들은 신자들을 더욱 그리워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그리움은 서로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으로 자라났습니다. 이 마음이 계속되어 서로를 향한 사랑과 존경이 깊어지고 일상이 은총임을 깊이 깨달아 우리 신앙 공동체는 한층 더 성숙해질 것입니다.
최초의 인간 아담과 하와가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은 결과로 세상에 죽음이 들어왔습니다(창세 2,17; 3,3.19). 죄의 결과인 죽음은 인간에게 “영원한 소멸의 공포”(사목헌장 18항)를 안겨 줍니다. 모든 것을 무(無)로 되돌려놓는 죽음 앞에서 사람은 두려움과 절망에 빠지기 마련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죽을 운명에 처하여 두려움과 절망의 굴레에 갇힌 인간을 구해 주셨습니다. 그분은 당신의 부활로써 죽음을 넘어 영원한 삶으로 가는 문을 열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굳건히 믿고 충실히 따르는 이들에게는 영원한 삶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 신앙인들은 이 약속을 믿고 죽음의 두려움과 절망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는 “나는 과연 비참한 인간입니다. 누가 이 죽음에 빠진 몸에서 나를 구해 줄 수 있습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를 구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로마 7,24-25)라고 고백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나약한 우리 인간에게 죽음을 넘어선 희망을 선사해 주십니다. 그분은 제자들에게 약속하신 대로 바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20) 주님은 빛이 충만한 시간만이 아니라 어둠이 가득한 시간에도 우리 곁에 계십니다. 루카복음에 등장하는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는 어둠의 시간에 주님을 만납니다. 주님은 당신의 십자가 죽음 때문에 실망하고 좌절하여 길을 가던 제자들에게 낯선 나그네의 모습으로 다가오십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필요한 힘과 용기를 주시어 다시 일어설 수 있게 이끌어주십니다(루카 24,13-35).
현재 우리도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처럼 어둠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긴 어둠의 터널이 언제 끝이 날지 몰라 많이 불안하고 두렵습니다. 하지만 부활하신 주님은 어둠의 터널을 걸어가야 하는 우리를 곁에서 동행하십니다. 그분께 우리를 맡기면 두려움을 이기고 희망을 간직할 수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지난 3월 27일 ‘인류를 위한 특별 기도와 축복’ 예식에서 주님께 의탁하여 두려움을 이겨내자고 다음과 같이 호소하셨습니다. “옛적의 뱃사람들에게 별이 필요했던 것처럼 우리는 주님이 필요합니다. 우리 인생의 배에 주님을 모십시다! 우리 두려움을 주님께 넘겨드려, 그분께서 이기시게 합시다. 제자들처럼 우리는 그분과 함께 배에 있으면 난파하지 않는다는 것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마르 4,35-41). 하느님의 힘은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 악한 일들조차 선으로 바꾸시는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돌풍 속에 고요를 가져다주십니다. 하느님과 함께라면 생명은 결코 죽지 않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우리에게 희망의 빛이 되어주십니다. 아울러 그분은 우리가 서로에게, 특히 어렵고 힘든 이들에게 희망의 빛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위기가 닥쳐오면 가장 먼저 약하고 가난한 이들이 고통을 당합니다. 교황님께서도 코로나19로 “격리된 사람, 독거노인, 병원에 입원한 사람, 봉급을 받지 못할 것 같아 자식들을 어떻게 먹여 살려야 할지 모르는 부모 등 많은 사람들이 울고 있다”고 하시면서 그들과 함께할 것을 요청하셨습니다. 코로나19가 시작되면서 이미 본당, 기관, 단체, 수도회 차원에서 그리고 개인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게 도움을 주신 것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이런 도움의 손길이 앞으로도 계속되기를 바랍니다.
부활 대축일 며칠 후에 제21대 총선이 치러집니다. 이번 선거에서 국민의 선택을 받게 될 국회의원들을 비롯해서 모든 정치인들이 국민들, 무엇보다도 어려운 처지에 있는 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정치를 펼쳐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아무리 상황이 힘들고 엄중해도 작은 희망이라도 보이면 견뎌낼 힘을 얻게 됩니다. 고통과 고난의 삶 속에서도 희망의 불씨를 지펴가는 데에 우리 모두 마음과 힘을 합치면 좋겠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어떤 상황에서도 늘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우리도 그분 곁에 머물도록 합시다. “두려워하지 마라”(마태 28,5.10)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면서 희망을 간직하고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도록 합시다. 서로를 배려와 사랑으로 대하면서 이 시련의 시간을 잘 견디어 나아갑시다. 불안과 고통 속에 있는 이들의 위로자이신 성모님께서 우리에게 위로와 평화를 주시도록 전구합시다.
다시 한번 부활하신 주님께서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풍성한 축복을 내려주시기를 기원합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장·평양교구장 서리
염수정 안드레아 추기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