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무심코 누른 ‘좋아요’가 당신의 투표심리를 조종한다

[책꽂이-타겟티드]브리태니 카이저 지음, 한빛비즈 펴냄

英 데이터기업, 페이스북 개인정보 사들여

정보가공해 트럼프 위한 개인 맞춤형 광고

대선 기간 4,000가지 광고 15억회 노출돼

데이터관리 소홀히 하면 민주주의 위험해져





2016년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극적 승리한 후 영국 데이터 분석기업이 페이스북 개인정보를 불법으로 이용했다는 폭로가 나왔다./이미지출처=픽사베이2016년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극적 승리한 후 영국 데이터 분석기업이 페이스북 개인정보를 불법으로 이용했다는 폭로가 나왔다./이미지출처=픽사베이


2015년 6월, 리얼리티쇼 진행자인 도널드 트럼프가 대권 도전을 공식화하자 민주당은 물론 공화당 지지자들조차 대부분 ‘쇼를 한다’고 비웃었다. 하지만 트럼프는 16명이나 되는 공화당 경선 후보들은 물론 대선 승리가 유력시되던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마저 이기고 백악관을 차지했다.


충격을 받은 미국 언론은 ‘샤이 보수’와 소셜미디어 등을 트럼프의 승리 요인으로 지목했다. 그런데 누가, 어떻게 샤이 보수를 움직이고, 소셜미디어의 영향력을 극대화했단 말인가. 계속된 의심과 추적은 결국 음지에서 미국 선거판을 조종한 자들을 세상 밖으로 끌어냈다. 트럼프 캠프의 선거 캠페인 파트너인 영국 데이터 분석기업,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다.

‘타겟티드’는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의 내부 고발자인 브리태니 카이저가 지난 날의 부끄러운 행위에 대해 적어내린 자기 반성문이자 빅데이터 산업이라는 그럴싸한 이름 뒤에서 벌어지는 대중 심리 공작의 위험성을 경고한 글이다.



저자는 프랑스나 독일에 비하면 미국이 개인 정보 취득과 활용이 상대적으로 쉬운 나라라고 지적한다. 유럽은 과거 나치가 유대인과 집시, 장애인과 동성애자에 대한 데이터를 수집해 잔인할 정도로 효율적인 홀로코스트 정책을 펼쳤던 기억 때문에 데이터 보호법이 굉장히 엄격하다. 반면 미국은 9·11테러의 충격 속에 ‘애국자 법’을 만들었다. 정부가 동의 없이도 국민들에 관한 모든 데이터를 수집할 권리를 가질 수 있도록 한 이 법은 결과적으로 빅데이터 산업이 탈선의 유혹에 쉽게 빠지게 했다.


미국 정부의 허술한 데이터 통제 분위기 속에서 페이스북, 구글, 트위터 등 거대 IT기업들은 데이터 권력을 쥐고 흔들기 시작했다. 페이스북 회원들이 심심풀이로 해본 심리 테스트나 게임, 퀴즈 그리고 무심코 누른 ‘좋아요’는 트럼프 당선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시작은 2014년 알렉산드르 코건 케임브리지 교수의 페이스북 개인정보 수집이었다. 코건 교수는 성격테스트 앱을 이용해 페이스북 회원 27만 명과 그들의 친구 목록에 있는 5,000만 명의 개인 정보를 수집했다.

이 정보를 사들인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는 개개인의 성격과 성향에 따라 최대 32가지 유형으로 세분화해 트럼프 당선을 도울 개인 맞춤형 타깃 메시지를 내보냈다. 과민한 성격인 사람들에게는 불안과 두려움을 조장하는 동영상과 문구가, 가족과 지역사회를 중시하는 이들에게는 트럼프의 따뜻한 이미지를 담은 광고가 노출되게 했다. 이른바 심리 조종이다.

2016년 미국 대선 ‘데이터 게이트’와 관련 된 키워드들./이미지출처=픽사베이2016년 미국 대선 ‘데이터 게이트’와 관련 된 키워드들./이미지출처=픽사베이


트럼프 캠프가 소셜미디어에 천문학적 광고비를 집행하자 페이스북은 물론 구글, 트위터 등은 숙련된 직원을 캠프에 파견해주기까지 했다. 페이스북 직원들은 유사 타깃을 수집해 맞춤 타깃을 만드는 법을 가르쳐줬다. 구글은 매일 인기 검색어를 팔았다. 예를 들면 구글 사용자가 검색창에 ‘트럼프 이라크 전쟁’이라고 검색을 하면 ‘거짓말쟁이 힐러리 이라크 전쟁에 찬성 투표, 잘못된 판단’이라는 트럼프 슈퍼 팩의 배너가 상단에 뜨게 하는 식이었다. 트위터에서는 특정 해시태그를 클릭하면 트럼프 광고가 자동으로 리트윗됐다.

사람들은 자신의 정보를 바탕으로 개인화한 광고인지 모른 채 선거 캠페인 기간 내내 맞춤형 광고에 노출됐다. 트럼프에 대한 온라인 광고 종류는 4,000개에 달했고, 수백만 명의 미국인들이 이를 15억 회 이상 조회했다. 저자는 “당시 광고가 가장 원초적인 본능에 대해 호소하고 공포심을 조장하며 서로 반목하게 하는 술수였다”며 “미국인의 중추신경을 공격하고 장악해서 사고방식, 행동, 기능에 문제를 일으켰다”고 회상했다.

저자는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가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이탈)과 나이지리아·케냐·트리니나드토바고 등 세계 각국의 주요 선거에도 개입했다고 폭로했다. 심지어 의뢰인을 위해 해당국 젊은 유권자들의 정치적 무관심을 극대화하는 비도덕적 심리 공작도 서슴지 않았다고 증언한다.

저자는 지금도 규제받지 않고, 추적할 수 없는 데이터의 흐름이 존재한다고 우려한다. 빅데이터 산업의 파괴력을 소홀하게 여긴다면 언제 어디서든 개인 사생활이 위협받고 민주주의가 다시 산산조각날 수 있기에 데이터에 대한 주인 의식을 갖고 법과 규정을 고치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1만8,000원.


정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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