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3학년 때 일이다. 하루는 학교에 갔다 오니까 어머니가 나를 데리고 집 마당 저쪽으로 데리고 간다. 그런데 거기에 내가 그렇게 갖고 싶었던 자전거가 있는 게 아닌가. “자, 이제 네 소원 풀었지. 아빠한테 고맙다고 가서 인사해라.” 이뿐 아니라 나는 “앞으로 엄마 아빠 말씀도 잘 듣고 공부도 열심히 하겠다”고 자진해서 서약까지 했다. 막상 자전거를 갖고 나니 탈 줄 알아야 하는 데 이게 문제다. 쉽게 배워지지 않는 거다. 한 번은 오후에 배우려고 낑낑대다가 과일가게로 돌진하는 바람에 혼났다. 그래서 새벽으로 연습시간을 바꿨다. 그런데 갑자기 두부 장사 아저씨와 골목길에서 마주쳤다. “어, 어, 어” 하다 그대로 들이받았다. 덕분에 그 한 주는 매일 반찬이 각종 두부 요리로 도배가 됐다. 결국 동네 고수에게 배운 비법은 “자전거를 잘 타려면 잘 넘어질 줄 알아야 해. 첫째, 넘어지려는 방향으로 핸들을 틀어라. 둘째, 앞브레이크를 너무 세게 잡지 말라. 잘못하면 공중에 붕 뜨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 번 몸으로 익힌 것은 잘 잊어버리지 않는 법이다. 지금도 자전거는 잘 타고 있다. 가끔 넘어져서 탈이지만.
대학 3학년 때 일이다. 그때 슬슬 스키 바람이 불었다. 용평 스키장에 가서 우선 강습을 받았다. 10명이 일렬로 줄을 서서 강사의 설명도 듣고, 엉금엉금 옆으로 게처럼 걸어서 가는 것도 배웠다. 조금씩 진전이 있었다. 그러다가 그만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갑자기 상급자 코스에 올라가면 그 풍경이 어떨까 하는 호기심이 발동된 것이다. 일단 리프트를 타고 올라갔다. ‘정 안 되면 그냥 그 리프트 타고 다시 내려오면 되지’라는 플랜B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상황은 달랐다. 정점에서 리프트가 빙그르 돌면서 그대로 내려가려는데 안전요원이 황급히 나를 끌어내린다. 규칙상 절대 리프트를 타고 내려갈 수 없단다. 내 눈앞에 펼쳐지는 경사도는 스키를 적어도 몇 년 타도 될까 말까 할 정도로 가파르다. 일단 스키를 벗고 걸어서 내려가기로 했다. 그것도 안 된다는 안전요원의 경고를 무시한 채로. 몇 분을 코스 가장자리로 걷고 있는데 바로 옆으로 한 70세 정도로 보이는 할머니가 쌩하고 지나간다. 다시 오기가 발동해서 스키를 신었다. 엄청 자빠지고 구르고 거의 눈사람이 돼서야 밑에까지 내려올 수 있었다. 스키 고수에게 배운 교훈은 “첫째, 넘어질 때 반드시 뒤로 넘어져라. 둘째, 스키를 발에서 분리시켜라”였다. 잘 넘어져야 또 일어난다.
바로 얼마 전 일이다. 내가 애용하는 블루투스 스피커가 고장 났다. 집에서 와이프랑 와인 한두 잔 할 때도, 또 애들이 집에 와서 같이 맥주 마시면서 파티할 때도 분위기 띄우는 데 아주 좋은 스피커였다. 고장 원인은 배터리 방전이었다. 깜빡 충전해줘야 할 타이밍을 놓친 거다. 전에도 몇 번 이런 적이 있었기에 다시 충전하면 되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보통 7~8시간이면 충전되던 것이 3일이 지나도록 빨간불만 껌뻑이면서 전혀 충전이 되지 않는다. 나는 인내심이 극에 달해서 그냥 버리려고 했다. 그런데 와이프가 말린다. “여보 좀 더 두고 봅시다.” 어제 기적같이 그 스피커에 파란불이 들어왔다. 다시 작동을 잘한다. 새 중고를 살 기회가 날아갔다. 그래서 얻은 교훈 ‘첫째, 방전은 함부로 시켜서는 안 된다. 둘째, 끝까지 포기하지 말라. 셋째, 기회는 또 온다.’
지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온 세상이 끝장날 것만 같다. 그러나 ‘비 오는 날에도 해는 하늘에 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살다 보면 안 넘어질 수 없다. 안 넘어질 수 없는 것이 인생이라면 넘어질 때 안 다치게 넘어지는 법을 배워라. 넘어지는 방향으로 핸들을 틀고 뒤로 자빠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본능에 반하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게 잘 넘어지는 방법이라면 머리로 배우고 몸으로 익혀야 한다. 빨간불을 꾹 참고 기다리면 언젠가는 파란불이 들어온다. 그때까지만, 딱 그때까지만 버티자. 어차피 인생이란 비즈니스는 버티기 게임이 아니더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