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일 그리고 내 인생을 사랑했다. 지하에 와인 저장고가 딸린 깨끗한 아파트도 있었다. 내가 최고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지옥이 찾아왔다. 아내가 ‘아이들과 떠나겠다’며 이별을 통보했고, 직장은 날아갔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눈앞엔 압류장을 손에 든 집행관들이 서 있었다.
‘오늘도 살아내겠습니다’는 프랑스 파리의 유명 레스토랑 소믈리에였던 저자가 거리로 내몰려 경험한 3년 반의 노숙 생활을 기록한 글이다. 노숙인에게 파리는 낭만의 도시가 아니었다. 칼바람 부는 겨울, 발가락 끝까지 따뜻한 피를 내려보내기 위해 토끼뜀을 반복하고 몸에 붙은 빈대를 없애려 병원을 찾아 헤맸다. 정신적 고통도 가혹했다. 동전을 건네지만 눈을 마주치지 않는 행인들의 단호함에 상처받고, 등교하는 학생들과 마주치지 않으려 새벽 일찍 일어났다. 그러나 절망이 나뒹구는 거리에는 열망도 공존한다. 씻기 위해 긴 줄을 서고, 정부 보조금을 모아 저축도 한다. 칼바람에 감기 걸린 개를 걱정하며 담요를 덮어주는 친구도 곁에 있다.
저자는 노숙인을 사회 울타리 밖으로 밀어내기만 하는 세상을 향해 일침을 날린다. “노숙인에 대한 사회적 포기는 우리가 사는 나라가 그만큼 노후했음을 의미한다.” 남의 이야기라고만 생각하는가. 노숙자를 위해 투쟁하던 20대 시절의 저자도 상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 몇 년 후 절망의 거리를 배회하고 있을 자신의 모습을. 1만 4,8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