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성착취 판치는데…의제강간 연령 67년째 제자리

13세 이상 대상 성범죄 20년새 6배 이상 늘었지만

합의했다면 처벌 쉽지않아 '그루밍' 범죄 속속 노출

전문가들 "성적 동의 연령 높여 미성년자 보호해야"

1315A29 아동·청소년 성범죄



미성년자가 포함된 성 착취물을 제작·유포한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이 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지만 미성년자 성범죄와 관련된 처벌법은 여전히 60년 전에 머물러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미성년자가 성관계에 동의했더라도 성폭력으로 처벌할 수 있는 의제강간 연령의 경우 1950년대 형법 제정 이후 줄곧 ‘만 13세 미만’에 발목이 잡혀있는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n번방 사건을 계기로 미성년자를 노린 성 착취 범죄의 심각성이 드러난 만큼 우리도 세계적 수준에 맞춰 의제강간 연령을 상향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12일 법조계에 따르면 형법 제305조에 명시된 ‘미성년자의제강간죄’는 현행 의제강간 연령인 만 13세 미만의 미성년자와 성관계한 사람에 대해 미성년자의 동의 여부와 관계없이 강간죄로 간주해 처벌하고 있다. 의제강간이 ‘동의도 강제’로 보는 이유는 만 13세 미만의 미성년자를 성관계 동의 여부 판단에 미숙한 존재로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의능력이 없는 미성년자를 성인의 성적 접근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때문에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많은 국가들이 의제강간죄를 통해 미성년자를 성 착취로부터 보호하고 있다.


하지만 해외 대다수 국가들은 우리와 달리 의제강간 연령기준을 높게 설정해놓고 있다. 실제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전 세계 약 200개 국가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대다수 국가의 의제강간 연령기준은 만 15~16세 미만이다. 의제강간 연령의 범위를 넓혀 더 많은 미성년자들을 성인의 성적 접근으로부터 보호하고 있는 셈이다. 반면 우리와 같거나 더 낮은 연령을 적용하고 있는 나라는 일본과 스페인, 콜롬비아, 파나마, 나이지리아, 시리아 등 6개국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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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최근 ‘n번방’과 ‘박사방’ 사건에서 드러났듯 가해자가 피해자를 심리적으로 지배한 뒤 성폭력을 가하는 그루밍 성범죄에 노출된 청소년들이 점차 늘고 있다는 점이다.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의 경우 강간죄의 성립요건인 폭행이나 협박 없이 이뤄지는 사례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한국은 ‘비동의 간음죄’가 인정되지 않아서 만 13세 이상 청소년을 잘만 유인하면 합의에 의한 성관계로 처벌받지 않을 수 있다”며 “하지만 정작 중·고등학생 또래의 아이들은 온라인상에서 낯선 사람과의 채팅이 위험하다는 사실을 모른 채 범죄에 노출돼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이 교수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만 13세 미만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는 1997년 246건에서 2016년 932건으로 3.8배 늘어난 반면 13세 이상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는 같은 기간 681건에서 4,353건으로 6.4배나 급증했다. 만 13세 이상 청소년들을 노린 성범죄가 더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다는 의미다.

상황이 이런데도 우리나라의 의제강간 연령은 1953년 형법 제정 이후 지금까지 그대로다. 20대 국회에서 의제강간 연령을 상향하는 내용의 형법개정안이 3건이나 발의됐지만 모두 법제사법위원회 문턱조차 넘지 못하고 있다. 다만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 의제강간 연령을 만 16세 미만으로 상향하자는 주장이 잇따라 나오면서 그동안 미온적이던 법무부도 전향적 검토로 돌아서는 분위기다.

전문가들은 의제강간 연령 상향이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를 줄일 수 있는 대안 중 하나라고 입을 모은다. 오래전부터 의제강간 연령 상향을 주장해 온 이 교수는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을 비롯한 아동·청소년 성범죄는 ‘미성년자를 성적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는 그릇된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미성년자에 성적 접근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의제강간 연령 상향”이라고 강조했다. 조진경 십대여성인권센터 대표도 “투표와 결혼할 수 있는 나이는 18세인데도 성인과 합의로 성관계할 수 있는 나이만 13세”라며 “다른 권리와 형평을 맞출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김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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