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수요부진으로 자동차 강판 생산량 조정이 불가피합니다.”
안동일(사진) 현대제철(004020) 사장은 12일 서울경제와의 전화통화에서 “세계 자동차 시장이 어렵다 보니 강판 생산량도 어쩔 수 없이 업황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현대제철의 모회사인 현대차를 비롯해 전 세계 주요 자동차 공장들의 셧다운(가동 중단)이 장기화하면서 생산량이 줄어 철강 수요도 위축되고 있기 때문이다. 안 사장은 “팔리지도 않는데 제품을 쌓아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라며 “단계별로 비상대응책을 마련해놓고 시장상황에 따라 (감산을) 적용할 계획”이라고 했다.
현대제철은 최근 당진제철소 전기로의 생산량을 줄이는 방법으로 물량조정을 시작했다. 연간 최대 생산량이 100만톤인 당진제철소 전기로의 올해 생산량을 80만~90만톤으로 줄였다가 최근 다시 70만톤까지 낮추기로 한 것이다. 안 사장은 “제품 주문이 줄어들고 있지만 고로 생산량을 줄이기는 어렵기 때문에 전기로를 탄력적으로 운영해 생산량을 맞추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고로는 1년 내내 내부 온도를 1,500도 이상으로 유지해 쇳물을 생산하는 설비다. 가동을 하루만 멈춰도 쇳물이 굳어 복구에 수개월이 걸리기 때문에 고로에서 생산하는 물량을 줄이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현대제철은 최근 수익성을 높이기 위한 작업에도 착수했다. 지난해 12월 창사 이래 처음으로 만 53세 이상 사무직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진행했다. 또 수익성이 악화된 단조사업을 분사시켰고 강관사업부는 매각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실적부진이 길어지고 있는 중국의 사업구조 재편도 추진하고 있다. 현대제철은 중국 베이징과 톈진 자동차 강판 가공공장(SSC)을 통폐합하고 상하이와 쑤저우 법인도 일원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안 사장은 인위적인 구조조정은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선을 그었다. 최근 업계에서 제기되고 있는 충남 당진제철소 전기로 열연공장 구조조정 계획에 대해 그는 “매각 등 인위적인 구조조정은 없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현대제철이 감산과 사업구조 재편 등에 나선 것은 코로나19 장기화로 전방산업들의 수요가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현재 주요 국내 기업들은 물론 미국·유럽·인도 등 큰 시장의 자동차·조선공장 등이 대부분 셧다운됐다. 현대제철이 생산한 자동차 강판 90%를 납품하는 ‘고객사’ 현대·기아차도 국내외 생산공장 셧다운이 장기화하고 있다. 현대차는 당초 10일까지로 예정됐던 미국 앨라배마 공장의 셧다운 기간을 다음달 1일까지로 연장했고 기아차 조지아 공장도 가동 중단 기한을 이달 10일에서 오는 24일로 미뤘다. 브라질 공장도 현지 정부 방침에 따라 24일까지 닫기로 했다. 국내 수출기지인 울산5공장도 13일부터 17일까지 임시휴업에 들어간다.
전방산업의 셧다운으로 감산을 검토하는 것은 현대제철뿐 아니라 국내 철강 업계 선두주자인 포스코도 마찬가지다. 철강업계의 한 고위관계자는 “사태가 이대로 흐른다면 포스코도 감산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며 “수요변화에 따라 대응할 수 있도록 유연생산체계를 준비해두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포스코는 원가절감을 위해 원자재인 스크랩(고철) 구매를 중단했다. 제강공정에 스크랩을 투입하는 대신 용광로에서 생산되는 쇳물을 원료로 활용해 제조원가를 낮춘다는 계획이다. 이외에도 자본잠식에 빠진 베트남 생산법인(SS VINA) 철근 부문을 매각하고 일본 야마토그룹을 전략적투자자(SI)로 유치했다.
전문가들은 보릿고개를 넘기 위한 자구 노력에도 불구하고 철강 업계가 당분간 수익성 악화 국면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이영규 나이스신용평가 수석연구원은 최근 온라인 세미나에서 “코로나19는 이전에 다른 감염병보다 빠르게 확산하고 있어 실물경제 수요위축이 길어질 가능성이 있다”며 “전반적 수요위축 속에 올해 초 중국의 철강 재고가 급증해 제품가격마저 떨어지고 있어 국내 철강 업계의 수익성 악화가 점차 심화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