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기업들이 한계 위기에 내몰렸는데 여당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당장 위기 극복을 위한 경제 해법도 보이지 않지만 장기적인 국가 경쟁력에 대한 고려가 없다는 게 더 문제입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9일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4·15총선 경제 공약을 이같이 평가했다. 지난해 미중 무역분쟁과 일본 수출규제에 이어 올해 코로나19 사태로 기업들이 비상 경영에 들어갔지만 여당의 ‘기업 옥죄기’ 규제 강화 기조는 여전해 성장동력이 꺾일 수 있다는 우려다. 야당인 미래통합당이 법인세 인하와 규제 완화를 내세우기는 했지만 구체적인 대안이 없어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경제계가 꾸준히 정치권에 요청했던 기업 규제 완화 정책들은 여당의 공약에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대표적인 것이 지주회사에 대한 지분율 규제다. 지난해 9월 민주당 의원들이 전국경제인연합회를 찾아 주요 기업 현안 간담회를 열었을 때 기업인들이 가장 큰 어려움을 호소한 것이 지주사 규제였지만 여당은 오히려 “지주사가 총수 일가의 지배 수단으로 악용되지 않도록 자회사·손자회사의 주식보유 기준을 상향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외에 △일감 몰아주기 규제 적용 확대 △다중대표소송제·집중투표제 등을 담은 상법 개정안 △공정거래위원회 전속고발제 폐지 △소비자 집단소송제 도입 등 기업을 옥죄는 정책들은 더 선명해졌다. 재계 관계자는 “여당의 공약을 살펴보면 장기적으로 기업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정책 일변도”라며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우리 경제는 버려진 자식’이라고 토로했지만 21대 국회에서는 상황이 더 악화할 것 같아 걱정이 많다”고 전했다.
통합당은 지주사 규제 완화, 상속·증여세 합리화 등 비교적 시장 친화적인 공약을 앞세웠다. 특히 법인세 인하의 경우 현행 4단계의 법인세 누진구조를 2단계로 축소하고 과표구간별 세율을 2~5%포인트 인하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재 여야가 긴급재난지원금 등을 대폭 지원하기로 한 상황에서 세수 대안이 없다는 점 때문에 구호성 공약에 그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통합당의 공약집에서 기업의 주요 애로사항으로 지적되는 대형마트 규제 등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점도 아쉬움으로 꼽힌다.
재계는 민주당이 추진하는 노동 관련 공약 또한 눈여겨보고 있다. 민주당의 노동 공약은 문재인 정부의 국정 기조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확립을 골자로 한다. 상시·지속적 업무의 경우 정규직 고용 원칙을 확고히 하고 국민의 생명과 직접 관련되는 업무는 정규직 고용 원칙을 확립한다는 방침이다. 5인 미만 사업체 종사 노동자의 노동관계법상 권리를 보장하고 1년 미만 근속 노동자의 퇴직급여를 보장하겠다는 공약도 포함됐다.
문제는 이 공약들이 실현될 경우 대기업은 물론 영세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의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이미 문재인 정부 들어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 근로제 시행으로 한계에 내몰린 사업자들에게 ‘최후의 일격’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여당의 노동 공약을 보면 이미 일자리를 가진 이들의 안정성만 강화해 새롭게 노동시장에 진입하려는 사람들의 일자리는 빼앗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통합당은 과반 의석 확보를 통해 여권의 친노동 법안 추진에 제동을 걸겠다는 구상이다. 특히 통합당의 최저임금 제도 개편 공약은 최저임금을 업종별·규모별로 구분 적용하겠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최저임금 결정 기준에 기업지불능력을 포함하고 결정 주기는 1년에서 2년으로 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최저임금 타격이 심한 영세사업장에 대한 인상폭을 상대적으로 낮게 설정하고 사업주가 최저임금을 노동자에게 지급할 여력이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탄력근로제 최대 단위기간, 선택적 근로시간제 정산기간을 각각 3개월→1년, 1개월→3개월로 늘리겠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박효정·하정연기자 jpar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