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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애프터웨딩 인 뉴욕]20년 후 다시 선택의 기로에 선다면

2006년 '애프터웨딩' 리메이크作

감독·배우 성별 바뀐 ‘크로스 젠더’

원작만큼 주연배우 연기 뛰어나







인도 남동부의 시끌벅적한 빈민가. 미국인 자선활동가 이자벨(미셸 윌리엄스)이 부모 잃은 아이들과 함께 따스한 햇살 아래서 명상을 하고 있다. 아이들은 왜 명상을 해야 하는지 이유를 모른 채 그녀 옆에 앉아 시키는 대로 눈을 감고 있을 뿐이다. 한 아이는 눈을 감으면 캄캄할 뿐이라며 눈을 뜬 채 작은 반항을 한다. 사실 명상이 어른에게는 구원과 참회, 때로는 자기 합리화의 시간이겠지만 어린아이에겐 그저 자유 없는 속박의 시간 아니겠는가.

이자벨은 명상이 필요한 어른이다. 아이들과 함께할 때는 자애롭지만 혼자가 되는 순간 표정이 서늘해지곤 한다. 예민함과 초조함도 감출 수 없다. 혼자서는 도저히 손 쓸 수 없는 인도의 빈곤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거액을 줄 테니 뉴욕으로 직접 와서 서명하라는 낯선 후원자의 연락에 반가움보다는 경계심부터 드러내니 말이다. 하지만 이자벨은 결국 짜증을 억누르며 뉴욕으로 날아간다.

오는 23일 개봉하는 영화 ‘애프터 웨딩 인 뉴욕’은 20년 전 모종의 이유로 삶의 궤도에서 벗어나 다른 선택을 했던 이자벨이 후원자를 자처하는 테레사(줄리안 무어)와 그녀의 가족을 만난 후 인연과 다시 엮이고 재선택의 순간에 놓이게 되는 상황을 그린 작품이다.

수잔 비에르 감독의 2006년작 ‘애프터 웨딩(왼쪽)’과 바트 프룬비치 감독의 리메이크작 ‘애프터 웨딩 인 뉴욕’.수잔 비에르 감독의 2006년작 ‘애프터 웨딩(왼쪽)’과 바트 프룬비치 감독의 리메이크작 ‘애프터 웨딩 인 뉴욕’.


영화는 덴마크 출신 감독 수잔 비에르의 2006년 작품 ‘애프터 웨딩’의 리메이크작이다. 하지만 원작의 스토리만 그대로 가져왔고, 많은 부분을 새롭게 바꿨다. 가장 큰 변화는 감독과 주연 배우의 성별 교체다. 이른바 ‘크로스 젠더’ 리메이크다.


원작은 여성 감독 수잔 비에르가 두 연기파 남성 배우 매즈 미켈슨, 롤프 라스가드와 함께 만들었지만, 리메이크작은 남성 감독 바트 프룬디치와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연기파 여성 배우 미셸 윌리엄스, 줄리언 무어가 이끌었다. 자연스레 영화 전개의 핵심 소재도 ‘크로스 젠더’의 대상이 됐다. 원작이 남성의 감정 변화와 아버지의 책임에 집중한 반면 리메이크작은 여성과 어머니에 초점을 맞춘다.



스토리의 주요 배경도 달라졌다. 원작에선 인도 빈민가와 대비되는 공간으로 덴마크 코펜하겐이 등장하지만 리메이크작은 자본주의의 심장 뉴욕을 택해 글로벌 불평등의 시각화를 극대화했다. 리메이크까지 10년이 넘는 세월의 간극이 존재하는 만큼 기술의 진보 덕에 소품, 연출, 촬영 모두 훨씬 세련돼졌다.

하지만 성별을 바꾸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손을 댄 몇몇 사건이 등장인물 감정 변화의 당위성을 떨어뜨린다. 영상미에 집중한 나머지 처절한 생존 현장이어야 할 빈곤의 공간이 이방인의 명상을 위한 인생 도피처처럼 보이기도 한다. 뉴욕 역시 인도 빈민가의 대척점이 아닌, 최신 스타일을 소개하는 잡지 속 배경처럼 느껴진다.

그럼에도 배우들의 연기력만큼은 오스카상 후보에 올랐던 원작에 결코 밀리지 않는다. 원작의 매즈 미켈슨 만큼이나 미셸 윌리엄스 역시 복잡한 속사정과 갑작스러운 상황 앞에서 겪는 감정의 변화를 섬세하게 연기했다. 믿고 보는 배우 줄리언 무어의 연기는 말할 것도 없다. 자기 주도적 선택을 하긴 했지만 어쩔 수 없는 운명 앞에서 나약해지는 인간 본능에 대한 연기가 무어에게는 맞춤옷 같다. 러닝타임 110분.


정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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