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 한 가운데는 ‘잘잘레시피’에서 보낸 재료들로 만든 한우 스키야키가, 술잔 안엔 ‘술담화’의 막걸리 샴페인이 자리 잡았다. 퇴근길 집 근처 마트에 들러 장을 보지 않았지만 구독 서비스를 통해 집 앞으로 배송 받은 재료만으로 금세 한 끼 식사가 완성됐다. 저녁식사를 마친 뒤엔 자연스럽게 ‘넷플릭스’ 앱을 열고 킹덤 시즌2를 보기 시작했다. 자기 전엔 침대에 누워 ‘밀리의 서재’ 앱에서 전날까지 읽었던 책을 이어 읽기 시작했다. 집 안에서 스마트폰을 손가락으로 누르는 것만으로 요리와 음주, 문화생활이 한 번에 해결된 셈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발(發) ‘집콕’ 생활을 도운 80%는 구독 서비스였다. 한 달간 출퇴근 이외에는 집 안에서 먹고 입고 읽고 보고, 심지어 빨래까지 전부 ‘언택트’ 생활을 이어갔다. 외부 활동이 제한적이어서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구독 서비스 덕분에 부족함도 없었던 한 달이었다.
하루 만원 투자로 집 앞에 편리함이 도착했다 |
특히 대부분의 서비스가 첫 달에는 무료 혹은 할인 혜택을 제공하기 때문에 실제로 여섯 가지 서비스를 한 달간 즐기는 데 들었던 금액은 20만원대였다.
구독 서비스의 종류는 의식주를 넘어 최근 무한대로 확장되고 있다. 대표적인 구독서비스인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만 해도 넷플릭스에 더해 왓챠플레이·디즈니플러스(국내 미출시)까지 끊임없이 늘어나고 있다. 이밖에 △와인(퍼플독) △차(오설록) △영양제(필리) △양말(미하이삭스) △생리대(해피문데이·오가닉버튼) △꽃(꾸까) △면도날(와이즐리) 등 생활 속에서 필요한 모든 제품·서비스를 구독할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 제품을 고르는 피로감을 줄이기 위해 구독을 선택했지만 너무 다양한 서비스에 파묻혀버리는 ‘구독 피로감’이 오히려 새로 생겨날 정도다.
눈뜰 때부터 잠들 때까지 구독과 함께한 생활 |
출퇴근길을 함께한 동반자는 밀리의 서재다. 그동안 노트북·서류로 가득 찬 가방 안에 책 한 권의 무게를 더하는 것이 부담스럽다는 핑계로 책을 멀리해왔다. 하지만 5만여권의 전자책을 스마트폰으로 볼 수 있게 되자 지하철·버스 안에서 자연스레 밀리의 서재 앱을 열게 됐다. 웹툰에 쏟던 시간의 일부(하루 평균 31.8분)를 독서에 나눠준 결과 한 달간 8권의 책이 앱에 쌓였다. 밀리의 서재는 “지난 2월 기준 누적 유·무료 가입자가 150만명”이라며 “이용자들은 월 평균 독서량은 7~8권으로 국민 평균(연 7.5권)보다 거의 10배 이상 많이 읽는다”고 전했다.
미루고 미뤘던 철 지난 옷들의 드라이클리닝도 구독으로 해결했다. 세탁 구독서비스 런드리고 앱에서 한 달간 드라이클리닝을 12벌 할 수 있는 상품에 가입하자 다음날 수거함 ‘런드렛’이 문 앞에 왔다. 렌드렛 안에 겨울 코트 등을 가득 담아 밖에 내놓은 뒤 앱으로 ‘수거신청’을 누르니 같은 날 밤 런드렛 수거가 진행됐다. 이후 정확히 21시간30분 만에 세탁이 끝난 런드렛이 문 앞에 놓여 있었다. 하루도 채 되지 않아 세탁물 수거부터 배달까지 비대면으로 이뤄진 것이다. 런드리고는 “집에서 세탁기를 돌려 건조하고 옷을 입기까지 하루 안에 되는 것처럼 사이클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며 “스마트팩토리와 배송 시스템을 자체 기술력으로 만들어 하루 서비스가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런드리고는 나처럼 바쁜 척하지만 실은 게을러서 세탁을 미루는 사람들에게 안성맞춤형 서비스가 될 수 있다.
쇼핑·외식 대신 집에서 구독 |
술(술담화)과 음식(잘잘레시피) 구독서비스는 외식을 완벽하게 대체해줬다. 술담화는 계절과 날씨·특징 등을 고려해 매달 다른 전통주와 안줏거리를 보내준다. 3월의 전통주는 복순도가 손막걸리 2병과 탁주 1병이었다. 전통주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어울리는 안주를 소개하는 글을 읽으며 한 잔, 두 잔 걸치다 보니 어느새 막걸리를 뚝딱 비우게 됐다. 깜짝 선물을 기대하듯 어떤 전통주가 올지 궁금해하며 기다리는 과정도 즐거움을 줬다. 술담화는 “3월 기준 2,500명의 구독자에게 그동안 30개 이상의 제품을 소개해왔다”며 “인스타그램 등 온라인에서 전통주를 언급하는 게시물이 거의 없었는데 구독서비스 이후 수백개의 후기들이 나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요리 재료들을 매주 배송해주는 잘잘레시피는 몰랐던 음식을 접하는 계기를 만들어줬다. 매주 4개의 요리 중 한 가지를 선택하면 그에 맞는 식재료들을 배송해준다. 이를 통해 3월 첫 주는 스리라차 새우볶음밥을, 두 번째 주는 한우 스키야키를 만들어 먹었다.
新 라이프스타일이 된 구독...“계속 성장할 것” |
물론 한 달 내내 구독서비스가 좋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끊임없이 문 앞에 뭔가가 배달되자 집 안에는 상자·스티로폼·비닐이 쌓여갔다. 일회용품을 멀리하겠다는 다짐이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고민해야 할 지점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독 서비스는 계속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밀리의 서재 등장 이후 도서·출판 업계에서도 비슷한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클로젯셰어 역시 “지속가능한 패션을 추구하는 사회적 움직임과 함께 서비스가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업체들은 구독이 새로운 습관, 라이프스타일로 자리 잡아나갈 것으로 내다봤다. 런드리고는 “세탁의 질을 만족스럽게 제공한다면 구독으로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술담화도 “편리하게 집에서 온라인으로 주문해서 마실 수 있으니 점점 수요가 커질 것으로 예상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