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청론직설] "코로나 극복, 물리적 방역 못지않게 심리적 방역체계도 시급"

[백종우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재난정신건강위원장)]

감염병 대유행 따른 불안·분노는 정상적인 감정이지만

경제적 충격 겹치며 취약계층 극단적 선택 가능성 높아

정신건강 위기가정 조속히 찾아내 사회서비스 제공해야

전문인력 확충 등 재난정신건강 국가방역시스템 구축을

백종우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20일 서울경제와 만나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물리적 방역뿐 아니라 심리적 방역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호재기자백종우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20일 서울경제와 만나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물리적 방역뿐 아니라 심리적 방역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호재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자가격리·재택근무 등에 따른 우울이나 무기력감 등 정서적 불안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 블루’라는 신조어가 유행할 정도다. 세계보건기구(WHO)가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선언할 만큼 피해가 심각하다 보니 당연한 정서적 반응이라는 게 의학계의 진단이다. 일반적으로 시간이 지나면서 호전되지만 반대로 악화하는 경우도 있으므로 별도의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실제로 코로나19 통합심리지원단이 출범한 지난 1월29일부터 이달 14일까지 보건복지부 산하 국가트라우마센터와 영남권 트라우마센터, 나주·공주·춘천의 국립병원 등 5곳에서 1만5,650건의 심리상담이 이뤄졌다. 전국 정신건강복지센터가 자가격리자 및 일반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상담은 11만3,206건에 달했다. 코로나19로 인한 심리상담이 13만건에 육박한 셈인데 아직까지 표면화되지 않은 환자가 적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심리적 스트레스가 심각한 수준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대한정신건강재단 재난정신건강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백종우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20일 동대문구 회기동 경희의료원 진료실에서 서울경제와 만나 “가장 어려운 싸움이 보이지 않는 적과의 싸움”이라며 “아직 백신이 개발되지 않았고 국지적으로나마 지역 전파가 일어나는데다 경제적 고통까지 뒤따르면서 생기는 현실적인 스트레스”라고 짚었다. 이어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물리적 방역뿐 아니라 심리적 방역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면서 “역학조사관이 확진자 동선 파악을 통해 전염병 확산을 차단하는 것처럼 정신건강 위기에 빠진 국민들을 조속히 찾아내 적극적으로 사회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재난정신건강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국내의 재난정신건강 시스템 역사가 오래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삼풍백화점 붕괴(1995년)나 대구지하철 참사(2003년) 등 대형 재난사고 당시 의료적 처치와 함께 정신건강학적 치료를 병행했지만 단기간만 진행됐다. 국가 차원의 재난정신건강 지원 시스템은 6년 전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갖춰졌다. 국가적 재난상황에서 극심한 트라우마를 겪는 이들을 위한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데 뜻을 모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들이 사고 일주일 후인 4월23일께 재난정신건강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이어 국가 차원의 트라우마 센터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커지면서 관련 법률이 2017년 말 통과됐고 이듬해 국가트라우마센터가 설립됐다.

-‘코로나 블루’를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데, 그들에게 어떤 증상이 나타나는가.

△코로나 블루는 의학적 진단명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감염병 유행에 대한 불안이나 우울감·분노 등 복합적인 감정을 일컫는다. 하지만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오히려 정상적 반응이라고 보는 게 맞다. 현실에서 맞닥뜨리는 비정상적인 상황에 대한 지극히 정상적인 반응이기 때문이다. 의학적으로도 별도의 진단명을 붙이지 않고 심리적 응급처치라고만 표현한다. 다친 손에 붕대를 감는 것처럼 응급처치를 해주면 된다. 자신의 감정을 마음껏 표현할 수 있게 하고 충분히 들어주고 따뜻하게 위로해주는 것이 최선이다. 이렇게 한두 달 지나면 10명 중 8명 정도는 호전된다. 다만 이 가운데 20% 정도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같은 고통을 겪는 만큼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하다.

백종우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20일 서울경제와 만나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물리적 방역뿐 아니라 심리적 방역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호재기자백종우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20일 서울경제와 만나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물리적 방역뿐 아니라 심리적 방역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호재기자


-사태가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면서 코로나 블루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는데.

△코로나19가 신종 인플루엔자나 메르스 유행 때와 다른 점은 상당한 경제적 충격을 동반한다는 사실이다. 정신의학과 전문의 입장에서는 자살률 증가가 가장 우려된다. 실제로 자살이 국제통화기금(IMF) 체제의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급격히 늘었고 2002년 가계부채 대란과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크게 증가했다. 자살 사망자는 2011년 1만5,000여명으로 정점을 찍은 후 매년 평균 1만3,000여명선을 유지하고 있다. 실제로 경찰청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의 자살 원인 1위는 정신적 문제, 2위는 경제적 문제, 3위는 건강상 문제로 나타났다. 코로나19는 이러한 원인들을 복합적으로 안고 있다. 특히 코로나19가 1930년대 대공황에 비견될 정도로 커다란 경제 충격을 가져올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이런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실업이나 소득감소 등 경제적 문제는 우리 사회 가장 취약한 계층의 어려움을 증폭시키며 막다른 상황으로 내몰 수 있다. 코로나19 환자를 빨리 찾아내는 것 못지않게 경제적 위기에 빠진 아픈 가정을 조속히 찾아내 사회 서비스로 연결하는 노력이 매우 중요하다.

-해외에서도 국가적 재난으로 자살률이 크게 늘었던 사례가 있는가.


△2003년 홍콩에서는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발생 이후 1년 동안 노인 자살이 급증했다. 전염병으로 인한 노인 치사율이 높았기 때문에 불안감이 극도로 커지고 이로 인해 극단적 선택을 하는 노인들이 많았던 것으로 분석된다. 반면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을 살펴보면 첫해에는 자살이 평년에 비해 줄어드는 경향을 보였지만 2년차부터 남성과 중년층을 중심으로 자살률이 급격히 늘었다. 재난이나 전쟁과 같은 큰 위기가 발생하면 처음에는 서로 응원하고 격려하면서 잘 버티다가 아무리 애를 써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으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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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적 재난상황에서 사회안전망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는데.

△일본 정신의학계의 연구에 따르면 자살을 하기까지 평균 3.9개 이상의 어려움이 겹친다. 국내 연구에서도 4개의 위험요인 이후 자살로 이어졌다. 코로나19로 이미 세 가지 위기(정신적·경제적·건강상 문제)를 겪고 있는 사람들이 극단적인 상황으로 내몰릴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얘기다. 갑작스러운 경제적 위기에 처했거나 가정 해체 위기에 놓인 가정을 신속히 발견해 필요한 자원을 지원해줘야 한다. 이때 국가와 각 지방자치단체의 진짜 실력이 드러나는 법이다.

백종우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20일 서울경제와 만나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물리적 방역뿐 아니라 심리적 방역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호재기자백종우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20일 서울경제와 만나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물리적 방역뿐 아니라 심리적 방역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호재기자


-한정된 자원이라는 근본적 한계가 있지 않은가.

△재난극복은 물론 자원의 문제로 귀결된다. 재정 투입도 중요하지만 사회적 신뢰라는 자원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사태가 장기화할수록 서로 격려하면서 버틸 수 있는 힘을 주는 것은 사회적 신뢰이기 때문이다. 특히 우선순위에 대한 판단이 매우 중요하다. 바이러스는 평등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가장 취약한 계층의 피해가 클 수밖에 없다. 이번에 집단감염 피해를 입은 장애인시설이나 요양병원·정신병원이 집중 타격을 입은 것처럼 말이다.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실업자에 대해 취업·긴급재정·의료·정신건강 분야 등에서 개인 맞춤형 지원이 적극 이뤄져야 하는 이유다.

-국내의 재난정신건강 시스템은 어느 수준이라고 보는가.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이상인 국가 중에서는 매우 낮은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일례로 만성정신질환자가 가장 오래 입원한 나라 중 하나로 꼽힐 정도다. 특히 지역사회의 찾아가는 서비스가 없다는 게 문제다. 메르스 당시 방역 시스템이 취약해 여론의 뭇매를 맞은 후 많이 개선됐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찾아가는 방역 서비스다. 역학조사관이 자가격리자를 직접 방문해 상세한 역학조사와 함께 추가 감염 차단을 위한 조치를 적극적으로 취하면서 전 세계가 주목하는 방역 모범국가가 됐다. 각 지방자치단체마다 정신건강복지센터가 있지만 인력이 5명 내외로 매우 부족한 상황이다. 일상적인 상황에는 대처가 가능하지만 지금과 같은 재난상황에서는 전화 상담만 하기에도 역부족이다. 미국이나 유럽의 경우 인구당 몇 명 이상의 정신건강복지 전문인력을 두라고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우리도 이번 기회에 재난정신건강 방역 시스템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 평상시에는 중증정신질환자를 돌보거나 일반 시민의 정신건강을 챙기다가 재난 시기에 심리 방역에 투입할 수 있는 인적자원으로 활용해야 한다.

-이번 코로나19 위기극복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가.

△가족과 친구·동료 등 주변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면서 ‘공동체 면역력’을 키워야 한다. 주변에 낙오하거나 절망하는 사람이 없도록 서로 지지하고 응원하면서 좀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는 기폭제로 삼을 필요가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많은 사람이 지치기 시작하는 만큼 심리적 방역을 잘 갖추고 공동체 면역력을 기르기 위해 힘을 모아야 한다.
/정민정 논설위원 jminj@sedaily.com

He is

1970년 부산에서 태어나 1997년 고려대 의대를 졸업했다. 2002년 고려대 의대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수련을 마친 뒤 2007년 정신의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2007년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로 근무를 시작했고 2012년부터 이듬해까지 미국 듀크대 방문교수로 다녀왔다. 고(故) 임세원 교수와 함께 한국자살예방협회에서 ‘보고 듣고 말하기’ 한국형 표준생명지킴이 교육 프로그램 개발에 참여했으며 2016년부터 4년 동안 한국자살예방협회 사무총장을 지냈다. 지난해부터 보건복지부 중앙자살예방센터장 및 대한정신건강재단 재난정신건강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정민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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