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머리 앤’은 나이 든 오누이가 남자아이를 입양하려다 실수로 여자아이를 입양하면서 벌어지는 고아 소녀의 성장기다. 캐나다 작가 루시 M 몽고메리(1874~1942)는 1905년 집필을 시작해 1906년 1월 소설을 완성했지만 출판사로부터 다섯번이나 거절당했다. 여섯번째로 원고를 보낸 출판사에서 출간을 결정하며 1908년 4월 빨간 머리의 말괄량이 소녀가 세상에 나오게 됐다.
소설 속 무대인 캐나다 남동부 프린스에드워드섬과 노바스코샤는 끝없이 펼쳐진 감자밭과 목가적인 풍경 덕분에 전 세계 ‘빨간 머리 앤’ 팬들의 성지순례 장소로 유명하다. ‘노바스코샤’는 라틴어로 ‘새로운 스코틀랜드’라는 의미로 영국인과 스코틀랜드인이 이주하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원작명(초록 지붕 집의 앤·Anne Of Green Gables)에 등장하는 초록 지붕 집은 작가의 사촌인 맥네일 가족의 농장에 있는 것으로 작가 자신이 어린 시절 뛰놀았던 곳이다. 집 근처에 자리 잡은 호수는 소설 속에서 앤이 ‘빛나는 호수(Lake of Shining Waters)’라고 표현했는데 지금도 이름 그대로 불리고 있다.
국내에서 친숙한 ‘빨간 머리 앤(赤毛のアン)’은 원래 일본 번안소설의 제목이다. 이화여고 교사였던 고(故) 신지식 선생은 1953년 서울 인사동 헌책방에서 일본어로 된 ‘빨간 머리 앤’ 문고판 책을 발견해 1960년대 초 학교 주보에 번역·연재했다. 1963년에는 단행본 ‘빨강머리 앤(창조사)’을 출간했다. 6·25전쟁 이후 어려웠던 시절인 만큼 열악한 환경에도 웃음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앤의 모습은 모두에게 용기를 줬다.
많은 사람에게 긍정의 힘을 보여줬던 앤의 고향이 지난주 말 피로 물들었다. 19일(현지시간) 노바스코샤에서 발생한 총기난사로 최소 16명이 숨졌다는 소식이다. 치과 기공사로 일하는 50대 남성이 용의자로 지목돼 검거 과정에서 숨졌지만 범행 동기는 밝혀지지 않았다.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힘든 시간을 보내는 가운데 들려온 비극은 ‘아무리 힘들어도 희망을 잃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했던 앤의 고향이라서 안타까움을 더한다. /정민정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