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동십자각] 방역위기와 눈치보기

박현욱 여론독자부 차장




‘공기(空氣)를 읽는 문화.’ 일본 사회를 표현하는 수식어 중 하나다. ‘공기를 읽지 못한다(눈치가 없다)’가 일상용어일 만큼 ‘공기’는 개인·조직을 구속한다. 몇몇 일본 사회학자·평론가는 공기를 일본 사회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힘이라고 규정하기도 한다.

공기의 역기능은 개인 간에는 ‘눈치 보기’ 정도로 그치지만 관료조직과 섞이면 위험해진다. 평상시 공기는 드러나지 않고 조직의 절차와 원칙에 따라 행정 효율성이 높게 나타나지만 국가적 위기 때는 가히 치명적이다. 구성원은 조직 내 공기에 최적화된 합리성만 좇는다. 결국 문제의 포괄적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위기 대응에 실패한다.


지난달 일본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은 100만명에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검사를 받을 기회를 제공하겠다고 했다가 의료기관의 혼란을 일으킨다는 비판에 밀려 계획을 접었다. 한 기업인의 호의는 무시됐고 검사 확대를 탐탁지 않게 여겼던 일본 정부는 이제 ‘깜깜이’ 검사로 오히려 사태를 키웠다는 비판에 직면하고 있다. 이해하기 힘든 상황의 배경에는 그 공기가 깔려 있다. 울타리 안 사정을 외부에 알리는 것을 극히 꺼리는 일본 사회 특유의 정서에 더해 전염병 확산 사실을 애써 축소하고 싶은 아베 정부의 속내가 저류에 흐른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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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서 민관·국제 간 협력은 언감생심이다. 손 회장은 최근에도 대량의 소독액을 입수할 수 있지만 일본 인허가 절차가 1년 정도 걸릴 듯하다고 트위터에서 쏘아붙였다. 9년 전 동일본 대지진 때의 일부 장면이 겹쳐진다. 해외에서 의약품이 긴급지원되고 외국인 의료진이 구호활동에 나서려 할 때 일본 당국이 허가를 내주지 않아 보급이 지연되고 의료행위가 거부당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우리 사회와 관료조직도 ‘눈치’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상부의 공기 흐름에 따라 부유하고 복지부동하는 행태는 항상 도마 위에 올랐다. 다만 방역에서만큼은 다행히 5년 전 메르스라는 예방주사를 맞았다. 질병관리본부는 올 초 코로나19가 본격 확산되기 전에 진단시약 제조업체들을 모아 재빨리 시약을 만들게 하고 긴급사용승인 제도를 통해 민간 의료기관을 진단검사에 활용했다. 메르스 확산 초기 지난 정부가 감추기에 급급해 민관 협력의 골든타임을 놓쳤던 뼈아픈 실책을 되풀이하지 않은 것이 코로나19 확산을 이나마 저지한 요인 중 하나라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코로나19 종식을 기대하기는 아직 이르다. 여진, 본진(本震)이 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데 ‘이제는 방역 고삐를 좀 풀자’는 공기가 감돌 수 있다. 만약 제2, 제3의 웨이브(대유행) 기미가 보인다면 분위기 파악에 열중하는 대신 과거의 실패를 복기, 재복기해야 한다. 다시 둑이 무너진다면 국민 경제 살리기에 들이는 공도 물거품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hwpark@sedaily.com

박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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