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0세대를 정치로 불러낸 것은 합리적 목소리를 실종시킨 대결정치에 대한 반성, 그리고 지금의 인적 구성으로는 미래를 대비할 수 없다는 위기감이다. 이들은 진영 논리에 젖은 정치를 비판하고 4차 산업혁명 등 새로운 시대의 어젠다에 대해서는 직접 목소리를 내겠다고 나섰다. 청년 정치가 지속 가능하기 위해서는 ‘초당적 정치세력화’와 함께 정치문화의 대대적인 혁신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민주 대 반민주는 낡은 정치문법…내 삶에 필요한 이슈 찾아야”=지난 4년 국회를 멈춰 세운 것은 대부분 ‘극한의 진영대결’이었다. 조국 사태가 대표적이다. 여당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게 자녀 입시비리 등의 문제가 있었음에도 ‘검찰개혁을 위해 조 전 장관을 임명해야 한다’는 논리를 앞세웠다. 여기에 ‘어용 지식인’을 자처한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조국 지키기’에 불을 붙였다. 이에 강준만 전북대 교수는 “유시민은 그 시절(민주화운동)의 선명한 이분법의 사고 틀에 갇혀 있다”며 “진보의 대의를 위해 운동조직을 ‘적’의 공격에서 보위해야 한다는 조직보위론을 민주화가 된 세상에서 다시 꺼내 들었다”고 일갈했다.
야당 역시 진영 논리로 맞섰다. 황교안 전 미래통합당 대표를 중심으로 곽상도·주광덕 의원 등 검찰 출신들이 선봉에 섰다. 조 전 장관의 사회주의자(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 사건) 논란도 제기했다. 민주화 후 33년이 지난 오늘까지 ‘운동권’ 대 ‘반공’ 대결이 계속된 것이다. 이를 지켜본 김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극단 대립으로 국회가 공전하며 민생 입법이 처리되지 못해 아쉽다”며 “국회의원은 진영 논리에 빠지기보다는 국민 전체의 대표라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는 소회를 밝혔다. 오영환 민주당 당선자 역시 20대 국회가 파행으로 치달은 이유를 “진영논리에 빠져 국민 여론을 두려워하지 않은” 데서 찾았다.
청년 당선자들은 자신들이 ‘민주 대 반민주’라는 낡은 구도를 타파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용혜인 더불어시민당 당선자는 “1987년 이후 정치권은 민주와 반민주 구도 후 해야 할 논의에 대한 질문 없이, 낡은 구도로 싸우고 있다”며 “청년들은 독재정권에 맞서 싸우는 게 아니라 어떤 것이 내 삶에 가장 닿아 있고 필요한 일인지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고 강조했다.
◇“미래 어젠다 무관심한 국회…혁신 민감한 청년이 나서야”=“타다에 관해 아무도 얘기를 안 하고 있어요. 아예 흥미가 없어요.” 지난해 말 ‘타다금지법’으로 불린 여객자동차운송법이 국회 문턱에 걸려 있을 때 한 젊은 국회의원이 토로하던 얘기다. 찬성과 반대 의견을 낸 일부 의원을 제외한 대부분은 내용도 모른 채 관심이 없었다는 것이다. 한 보좌진은 “수행비서가 차량으로 집에서 의원회관까지 모셔다주니 타다를 탈 일이 없다”고 했다. 국회의원의 83%가 50대 이상인 ‘아재 국회’의 슬픈 민낯이다.
청년 당선자들은 “미래에 민감한 국회야말로 좋은 국회”라고 입을 모은다. 전용기 시민당 당선자는 “살아온 시대가 다르면 생각도 다른데 동시대를 살아온 사람이 너무 다수”라며 “미래 세대를 준비할 역량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용 당선자는 “한국 사회는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이나 경제구조, 스마트 기기의 발전 등에 대해 기존 정치인들의 이해가 부족하다”고 강조했다.
지금의 국회 구조에서는 청년 세대들의 이해관계가 반영되지 않는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이소영 민주당 당선자는 “미래적 어젠다에 대해 직접 이해관계를 갖고 다루는 정치인이 필요하다”며 “20~30년 후 국가의 장기적 비전을 만드는데 기후나 연금 문제 등의 당사자가 논의 과정에서 빠지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짚었다.
◇다선 대신 청년 택한 민심, ‘청년 세력화’로 이어나가야=청년 정치에 대한 염원은 확인됐다. 지난해 11월 동아일보가 리서치앤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내년 총선에서 386운동권 출신 정치인들보다 더 젊은 세대가 정치권에 유입돼 정치권에 세대교체가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80.5%가 ‘그렇다’고 답변했다. 실제 선거 결과 배현진 통합당 당선자가 4선의 최재성 민주당 의원을 꺾고 송파을을 탈환했고 장경태 민주당 당선자는 3선의 이혜훈 통합당 의원을 동대문을에서 꺾었다. 민심은 ‘다선 의원’ 대신 ‘초선 청년’을 택한 셈이다.
남은 것은 그 불씨를 이어나갈 청년 정치인들의 능력과 의지다. 이들이 모두 살아남는다고 보장할 수는 없다. 20대 국회의 30대 정치인인 김해영 민주당 의원, 김수민·신보라 통합당 의원은 모두 낙선의 쓴맛을 봤다.
당선자들은 생존을 위해서는 ‘초당적 청년세력’을 만들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장혜영 정의당 당선자는 “2030들이 당을 넘어 협력해 기득권 양당 정치가 하지 않던 말들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며 “청년 정치에 대한 요구를 관철시킬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민주당 내에서 ‘2030 당선자 모임’이 꾸려진 것도 같은 맥락이다. 장경태 당선자는 “21대 국회 내 2030 의원들이 국회 변화에 대한 고민이 많다는 것을 당선 후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지성호 미래한국당 당선자 역시 “여야 대립을 넘어 한 달에 한 번 이상 소통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청년 정치 가로막는 ‘돈·조직’ 정치문화 바꿔야=청년 정치의 지속을 위해서는 ‘기울어진 정치판’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 ‘돈’과 ‘조직’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정치문화를 바꿔야 한다는 얘기다. 당마다 차이가 있지만 당직비 월 100만원, 당협위원회 운영비 월 1,000만원, 선거운동 비용으로는 3,000만원 이상이 든다. 청년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운 금액이다.
유럽 선진국에서는 돈 걱정이 덜하다. 프랑스나 독일·이탈리아·스위스 등에서는 선거 기탁금을 납부하지 않는다. 프랑스 사회당은 15~28세 청년들을 대상으로 당비를 면제해준다. 김용철 부산대 교수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다. 우리나라도 청년 정치 지망생들이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하고 관심을 가질 수 있게 기성정치인들이 정치문화를 적극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조언했다. 오 당선자 역시 “청년층의 정치진입 장벽을 낮추고 정당에서 청년 정치인을 육성하는 법과 제도 마련 등 시스템 구축이 중요하다”는 뜻을 전했다. 청년 정치의 부화를 위한 ‘줄탁동시(병아리가 알에서 깨어나기 위해서는 어미 닭이 밖에서 쪼고 병아리가 안에서 쪼며 서로 도움)’가 필요한 시점이다.
/김인엽·김혜린기자 insid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