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해외칼럼] 야수를 굶기고 경기침체를 키운다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

美지방정부 '코로나發 재정난'에

학교·소방서·우정국 등 공공부문

수백만개 일자리 사라질 판인데

트럼프·공화당은 지원책 눈감아

V자형 경제회복 막는 주범으로




‘도널드 트럼프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불러온 ‘트럼프 경기침체’의 고통을 다소나마 줄이기 위해 연방정부가 전 국민에게 지급하는 경기부양수표에 트럼프의 이름을 인쇄한다. 전례가 없는 일이다. 1,200달러짜리 수표는 최근 의회를 통과한 경제부양 패키지의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 이 같은 조항이 담긴 ‘코로나바이러스 지원·구제 및 경제안전에 관한 법(CARES Act)’은 국민의 필요를 충족시키기에 턱없이 미흡하다.

4주 새 2,200만명의 일자리 손실을 가져온 경제적 참사 규모를 감안하면 이번에 시행되는 2조달러 규모의 부양책 외에 3차 구제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는 3차 부양책을 끝내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기세에 눌려 한동안 잠잠하던 반정부 이론가들이 다시 고개를 치켜들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경제는 의학용어를 빌려 말하자면 인위적으로 유도된 혼수상태에 빠져 있다.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사회적 접촉을 제한함으로써 경제의 모든 부분을 의도적으로 봉쇄한 것이다. 이처럼 인위적 혼수상태에 빠진 경제를 지금 당장 흔들어 깨워서는 안 된다. 최소한 신규 감염률을 급격히 떨어뜨리거나 진단검사를 극적으로 늘려 바이러스가 다시 기승을 부리더라도 즉각 대응에 나설 수 있도록 만반의 대응태세를 갖춘 후 경제를 재개하는 것이 올바른 순서다.

경제 재개가 늦어지면 근로자들과 병원, 주·시 정부가 심각한 곤경에 처하게 된다. 주정부는 연방정부와 달리 의무적으로 예산의 수지균형을 맞춰야 한다. 자금 조달을 위해 지방채를 함부로 발행할 수 없는 이유다.

연방정부는 경제정책을 통해 이들을 도울 수 있고 또 도와야 한다. 현재 집행 중인 부양책은 이 같은 역할을 어느 정도 적절히 해냈다. 그러나 그 정도로는 충분하지 않다. 소기업을 위한 특별대출 자금은 이미 바닥났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주정부와 시를 비롯한 지방자치단체들은 극적인 세수 손실과 폭발적인 경비 증가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우정국 또한 파산 직전의 상태다.


이들을 지원하는 데 초점을 맞춘 또 하나의 부양책이 필요하다. 여기에 소요되는 자금을 어디서 조달해야 하나. 간단하다. 빌리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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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미국에는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잉여자금이 넘쳐난다. 인플레이션을 감안한 연방채권의 이자율은 현재 -0.56%다. 투자자들이 이자까지 지급해가며 정부에 돈을 빌려주고 있는 셈이다. 정부 입장에서 보면 대규모 경기부양에 필요한 자금조달 문제를 고심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얘기다.

하지만 추가 부양 법안은 아직도 의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이 전국 병원과 주 및 시 정부를 위한 상당액의 지원금을 공화당 주도의 부양안에 포함할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인 미치 매코널 의원은 차후 추가 조치가 필요할 때 민주당 측의 주장을 검토하겠다며 반대의사를 고수하고 있다. 현재 공화당은 주와 시 정부의 어려움을 외면한 채 기업들에 지원금을 몰아주려 한다. 심각한 재정난에 빠진 지방정부들이 어쩔 수 없이 공공 서비스를 줄일 수밖에 없도록 압박하는 이른바 ‘야수 굶기기’ 전략을 이어가려는 속셈이다. 민주당 입장에서는 공화당의 속 보이는 전략에 강경하게 맞서는 것 외의 다른 선택지가 없다. 매코널은 마음만 먹으면 당장 내일이라도 민주당의 요구를 수용할 수 있다. 그러나 단 한 치도 양보하지 않으려 한다. 여기에 트럼프는 개인적 의견이라는 단서를 달아 우정국에 대한 지원 가능성까지 배제했다.

재정난에 봉착한 지방정부들이 교사들과 소방관들을 대거 해고하고 우정국까지 대규모 감원을 단행하는 등 가까운 장래에 우리는 수백만개의 불필요한 일자리 손실을 목격할 것이다. 대책 없이 직장에서 밀려난 실직자들이 지출을 줄이면 경제는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된다. 게다가 사라진 일자리 중 상당수는 팬데믹이 물러간 뒤에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바닥을 친 경기가 급속히 반등하는 이른바 V자형 경제회복을 기대하는 사람들은 가슴을 쥐어뜯을 수밖에 없을 터이다.

위로 삼을 만한 일이 전혀 없지는 않다.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경제위기에 제대로 반응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이들이 자신의 정치적 미래까지 스스로 망치게 되리라는 사실, 그것이 그나마 우리에게 자그마한 위로가 될 것이다.

트럼프는 팬데믹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자신의 실수를 대중의 기억에서 제거하기 위해 신속한 경기회복에 ‘올인’하려 한다. 그러나 빠른 경기회복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주범은 트럼프와 상원에 진을 친 그의 우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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