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관련 긴급재난지원금 사업이 급물살을 타고 있습니다. 재정건전성을 지켜야 한다며 전국민 지급에 반대 목소리를 높였던 기획재정부가 결국 곳간 문을 열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국회에서 재난지원금 마련에 필요한 2차 추가경정예산안이 통과될 경우 다음 달 4일부터 기초생활보호대상자에게 지원금을 줄 수 있습니다. 전국민 지급 시점도 5월 13일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 3월 30일 정부가 긴급재난지원금 도입 계획을 밝힌 지 약 한 달 만에 구체적인 일정이 나온 것입니다.
재난지원금은 국내에서 처음 시도하는 현금성 지원인 만큼 수많은 논란을 몰고 다녔습니다. 도입 발표 직후엔 소득 하위 70%라는 선별 기준으로 두고 말이 나오더니 총선을 전후로 정치권에서 100% 지급 요구가 나오면서 문제가 본격적으로 꼬이기 시작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여당과 의견을 달리 하면서 부딪히는 모습을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결국 정세균 국무총리가 나서서 여당과 절충안을 마련했고, 홍 부총리에게는 기재부 내부 단속을 지시했습니다. 그러는 동안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던 야당은 지방자치단체장 동의 등을 전제로 추경 심사에 착수하겠다고 하면서 입장을 선회한 상태입니다.
갖은 우려곡절 끝에 다음 달 지급이 이뤄질 것으로 보이지만, 논란을 겪으며 재탄생한 재난지원금은 정부가 처음 발표한 내용과는 크게 달라져 있습니다. 먼저 지원 대상이 소득 하위 70%에서 전국민으로 확대됐고, 자발적 기부 내용이 포함됐습니다. 기부로 모은 돈은 고용보험기금으로 전입해 고용유지와 실직자 지원 예산으로 활용한다는 계획입니다. 가구당 단가는 낮추지 않고 당초 기준을 유지하기로 하면서 더 투입해야 하는 재원 3조6,000억원은 국채를 발행해 조달합니다.
문제는 국민 100% 지급과 자발적 기부 등 내용이 포함되면서 정부가 당초 설정한 재난지원금 지급 목적인 생계 지원과 소비 진작 모두 거리가 멀어졌다는 것입니다. 먼저 코로나19로 피해를 입지 않은 계층이나 고소득층까지 나라가 빚을 내 현금을 쥐어주게 되면서 생계 지원이라는 말이 무색해졌습니다. 생계 지원이라는 목적을 달성하려면 코로나19로 직접적인 타격을 입은 자영업자·소상공인 또는 일시휴직·실직자에게 집중하는 방식이 가장 효과적입니다. 독일과 프랑스는 피해 정도를 기준으로 대상을 선별해 현금성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소비 진작 효과가 아쉽습니다. 정부가 현금성 지원을 하는 이유는 단기간 내 지원금이 소비로 연결되길 바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재정건전성 훼손 논란을 피하기 위해 자발적 기부를 끼워 넣으면서 오히려 돈을 돌려받는 방식이 됐습니다. 적자국채를 찍어내면서 재정건전성 훼손을 감수하는 만큼 소비 진작 효과가 발생하기 어렵습니다.
모든 국민에게 지급하는 보편지원방식의 장점을 누리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보편지원방식은 대상을 선별하는 과정에서 행정비용이나 대상 포함 여부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비용이 없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정부는 이미 건강보험료를 기준으로 소득 하위 70%를 분류한 뒤 다시 고액자산가를 컷오프하기 위한 기준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행정비용을 쓴 상태입니다. 기재부는 당초 이러한 비용을 아끼기 위해 선별 작업이 따로 필요 없는 소득 하위 50%를 대상으로 지급하자고 주장했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소득 하위 70% 분류는 당장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한 셈입니다.
기부금이 사회적 갈등을 더 부추길 가능성도 있습니다. 고소득자나 사회지도층 기부가 활발하지 않을 경우 ‘마녀사냥’식 몰아가기가 나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한 여당 관계자가 자발적 기부가 가능하겠냐는 질문에 “공무원만 해도 100만명”이라고 말하면서 벌써부터 강제기부 압박 논란이 불거졌습니다. 무엇보다 신속하게 지원할 수 있다는 보편지원의 장점을 충분히 살리지 못했습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지난 24일 정부가 처음 발표한 내용을 토대로 2차 추경안 분석 자료를 내놓았습니다. 최근 결정된 전 국민 100% 지급이나 자발적 기부 등 내용이 포함돼 있지 않기 때문에 국회 심의 과정에서 활용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다만 눈여겨 볼 대목은 있습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이번 긴급재난지원금은 최초의 대국민 현금성지원 정책으로서 향후 대규모 재난 발생 시 중요한 참고사항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했습니다. 정치권 입김 때문에 결국 이도저도 아니게 된 재난지원금 정책이 더 아쉽게 느껴집니다.
/세종=조지원기자 jw@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