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청론직설]"정치 이념은 시장경제 망치는 악성 바이러스...강물에 던져야"

<이필상 전 고려대 총장>

지금은 코로나 여파로 쓰러지는 기업 일으키는 것이 우선

소득주도성장 고집말고 경제정책 원점서 다시 만들어야

與 포용적 국정, 野는 인재 영입 등 통한 환골탈태 필요

밑 빠진 독부터 고쳐 새로운 산업 일으킬 여건 조성 절실





이필상 전 고려대 총장이 27일 서울경제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이 전 총장은 “시장 경제의 가장 큰 바이러스가 정치 이념”이라며 “경제 정책에서 이념은 강물에 던지라”고 역설했다. /이호재기자이필상 전 고려대 총장이 27일 서울경제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이 전 총장은 “시장 경제의 가장 큰 바이러스가 정치 이념”이라며 “경제 정책에서 이념은 강물에 던지라”고 역설했다. /이호재기자


4·15총선에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압승을 거두면서 국정 전반에 적지 않은 변화가 예고되고 있다. 특히 상법 개정안 등 20대 국회에서 보류된 재벌 개혁 법안 처리를 위해 드라이브를 걸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면서 기업들의 긴장감은 어느 때보다 높다. 이필상 전 고려대 총장은 “기업에 대한 개혁은 체력이 있을 때 가능한 것”이라며 “지금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여파로 숨이 막혀 쓰러지는 기업들을 일으키는 것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이 전 총장은 “시장경제를 망치는 가장 큰 독성을 가진 바이러스가 정치이념”이라며 “경제 정책에서 이념은 강물에 던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전 총장을 27일 만나 코로나발 경제위기 극복 방안과 선거 후의 국정 운영 방향 등에 대해 들어봤다.

-여당의 압승으로 국회도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할 것 같다. 차기 국회에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국회가 정치 복원을 해야 한다. 여당은 일단 강력하게 정책을 추진할 기반을 만들었다. 경제를 살리는 쪽으로 마음을 다잡고 정책을 펼쳐야 한다. 힘은 잘못 사용하면 폭력이지만 잘 사용하면 순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 무조건 힘을 행사해 원하는 대로 끌고 갈 것이 아니고 반대 진영을 포용하며 국정을 이끌어야 한다. 야당도 비판할 때는 하되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여당과 정책을 논의해 합의를 끌어내는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다만 2년 후 실시되는 대선에 함몰돼 국회가 정파 간 싸움터로 변질될 수도 있어 걱정이다.

-야당의 변화에 대한 주문이 많은데.

△이번 선거 결과의 원인은 여당이 잘한 것보다 야당이 못한 데서 찾을 수 있다. 보수정당이 무너지는 것은 나라 발전의 한 축이 없어지는 것이다. 야당은 환골탈태해야 한다. 과거의 보수가 유지돼서는 안 된다. 나라를 발전시키며 가치를 지키는 새로운 체제로서 보수정당을 만들어가야 한다. 새로운 정책, 새로운 사람을 찾아야 한다. 다시 한 번 탄핵을 당했다고 생각하고 훌륭한 인재를 삼고초려해서라도 영입해 정당을 다시 만드는 작업을 해야 한다.

-당면한 과제는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적 쇼크를 해결하는 것이다. 경로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우리 경제가 방향 감각을 잃고 표류하던 차에 코로나19라는 큰 암초를 만났다. 빨리 구조하지 않으면 침몰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기저질환이다. 이 때문에 더 위험하다. 우리 경제는 대기업과 수출 중심으로 발전해왔는데 조선·철강·석유화학·자동차 등 주력산업이 모두 부실화하고 있다. 성장동력이 꺼지고 고용 창출 능력이 떨어졌다. 그만큼 심각하다. 외환위기나 글로벌 금융위기는 돈을 풀고 구조조정을 하면 벗어날 수 있는 위기였다. 이번에는 성격이 다르다. 사람의 이동을 제한하고 경제 활동이 막혔다. 생산과 소비, 투자가 다 멈췄다. 경제는 멈추면 무너진다. 우리가 전염병 대응을 잘하고 있으니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것으로 낙관할 수 있겠지만 기저질환이 심각해 쉽게 보면 안 된다.

-경기 회복이 그만큼 늦어질 수 있다는 뜻으로 들리는데.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의 올 성장률 전망을 보면 미국은 -5.9%이고 독일 -7.0%, 영국 -6.5%, 프랑스 -7.2%다. 반면 중국 1.2%, 인도 1.9%, 한국 -1.2% 등으로 그나마 아시아는 타격이 상대적으로 작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전망도 전염병이 빨리 진정될 것이라는 전제 아래서다. 코로나19가 하반기까지 이어지면 심각해질 것이다. V자형 회복은 불가능하다. 우리는 대외의존도가 높다. 전염병을 빨리 극복해도 다른 나라의 타격이 커서 제대로 수출하지 못하면 2차 피해를 입는다. 그래도 성장률이 다른 나라보다는 나은 편이니 이럴 때 경제 정책을 제대로 펴야 한다. 머뭇거려 신속히 대응하지 못하면 대외 상황에 휘말려 더 나빠질 수 있다. 정말 중요한 시기다. 총선이 끝난 만큼 정부가 경제 정책을 원점에서 새로 만들어 대응해야 한다.

-그렇다면 현 시점에서 우리 경제에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우리 경제의 근본 문제는 주력산업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이다. 예산을 퍼부어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일 수 있다. 밑 빠진 독부터 고쳐야 한다. 독을 고친다는 얘기는 새로운 산업을 일으키고 기업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을 선점해 신산업에서 먹고살 것을 찾아야 한다. 중국·일본에 앞서 모든 정책과 제도를 집중하고 기업 규제를 풀어야 한다. 기업이 새로운 산업에서 우후죽순처럼 일어날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 기업은 대신 근로자를 껴안으면서 발전하는 쪽으로 철학을 바꿔야 한다. 무조건 노조를 배제하는 것은 요즘 시대에 맞지 않다.

-하지만 정작 기업들은 또 다른 걱정에 놓여 있다. 선거에서 이긴 여당이 20대 국회에서 처리하지 못한 재벌 개혁 법안을 밀어붙일 가능성을 우려한다.

△경제 논리로 봐야 한다. 위기 국면에서는 유연하게 대처해 기업을 살리고 봐야 한다. 개혁 과제도 필요하지만 이를 수용할 타이밍이 아니다. 아무리 좋은 개혁도 수용하지 못하면 개혁이 아니라 파괴다. 경제가 난파선이 될 판인데 개혁을 밀어붙인다고 하면 견딜 수 있겠는가. 기업이 숨이 막혀 쓰러지는데 먼저 일으키고 봐야 하지 않겠는가.

-경제 논리를 강조했지만 현 정부에서 정치 논리가 많이 작용했는데.


△경제 정책의 철학과 정책 기조가 바뀌어야 한다. 현 정부의 철학이 소득주도 성장을 매개로 정부가 주도해 경제를 살리겠다는 것인데 우리에게 맞는지 원점에서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미래산업을 선점해 다른 나라 경제를 이기겠다는 것이 세계적인 흐름이다. 보호무역주의로 무역전쟁까지 하고 있다. 이런 판에 우물 안 개구리 식으로 정부가 주도해 양극화를 해결하고 성장을 하겠다고 하면 세계 흐름을 따라갈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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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념에 따른 정책이 문제라는 것인데.

△시장 경제는 수요공급이라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자원을 효율적으로 분배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이념이라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한다. 모든 정책이 이념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다. 소득주도 성장 정책에 문제가 있어서 수정하자는 의견이 많다면 바꾸고 폐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계속 고집한다. 이념의 덫을 경제에 씌우는 것은 숨통을 막는 일이다.

-여당이 이겼다고 현 정부의 정책을 국민이 인정한 것으로 보면 안 된다는 것인가.

△그렇다. 여당이 이번 선거에서 소득주도 성장, 최저임금, 근로시간 단축을 얘기하지 않았다. 어찌 보면 경제에 자신이 없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경제 정책을 새롭게 바꿔야 한다. 미래지향적인 발전 체제를 갖춰야 한다. 신산업과 벤처기업을 일으키고 인력자원의 경쟁력을 높이는 교육 정책으로 성장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경제 정책에서 정치적 이념은 강물에 던져야 한다.

-코로나19 이후의 패러다임 변화에 대한 논의가 많다.

△정치적 측면에서는 인터넷을 매개로 비대면의 직접민주주의가 확산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경제적 변화도 클 것이다. 그동안 세계화 흐름 속에서 중국 중심으로 공급망이 구축돼왔다. 그런데 중국에서 코로나19가 터지니 공급에 문제가 생겼다. 미국과 유럽의 코로나 확산으로 무역·생산·투자가 위축됐다. 경제 개방으로 구축된 공급과 수요 체계가 미증유의 사태에서 작동하지 않았다. 교류가 안 되는 환경을 경험하다 보니 각자도생의 경제체제로 바뀔 수밖에 없다. 갈수록 국가주의가 확산할 것이다.

-우리의 대응 방식도 달라져야 할 것 같다. 높은 대외의존도를 피하려면 내수를 키워야 할 것 같은데.

△내수 기반을 확대해 자생력을 높여야 한다. 4차 산업으로 패러다임이 바뀌면서 드론·인공지능·빅데이터 등 과거에 없던 산업이 발전하고 있다. 미래산업을 선점하되 내수 중심의 기반을 갖추면서 해외로 진출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세계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우리 스스로 살 수 있는 체제를 갖춰야 한다. 더불어 서비스산업을 발전시켜 내수 기반을 두텁게 해야 한다.

-하지만 이념과 이익집단에 치우친 규제로 산업 발전이 막히는 경우가 많다.

△코로나19를 계기로 모든 체제가 바뀌고 있다.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과거의 규제를 고집하면 모든 분야에서 암초로 작용한다. 이익집단들은 눈앞의 이익을 조금이라도 더 얻으려 투쟁을 벌이고 있다. 이제는 먼저 시장의 파이를 키운 뒤 자신들의 몫을 더 요구하는 쪽으로 사고를 전환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재난지원금을 놓고 논란이 계속 이어졌다. 재난지원금 지급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이를 둘러싸고 포퓰리즘 우려도 적지 않다.

△현 정부는 팽창예산을 편성해 정부 주도로 일자리를 만들고 복지를 확대하는 등 분배 정책을 펼쳤다. 하지만 정책의 효과를 거두지 못해 성장동력이 꺼지고 시장의 고용 창출 능력이 떨어졌다. 이런 식으로 계속 가면 포퓰리즘에 인질로 잡혀 경제가 쓰러질 수 있다. 잘살던 남미 국가들도 포퓰리즘이 심각한 경제 바이러스로 작용했다.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포퓰리즘은 습관성이어서 끊을 수 없고 확대 재생산된다.

/김영기 논설위원 you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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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경기도 화성에서 태어나 제물포고와 서울대 금속공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와 경영대학장·경영대학원장 등을 거쳐 2006년부터 고려대 총장을 지냈다. 현재 서울대 경제학부 특임교수로 일하고 있다. 한국선물학회장과 한국재무학회장,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경제정의연구소장, 함께하는시민행동 공동대표 등을 맡았다.

김영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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