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로여는 수요일] 퀵서비스

황주경

오토바이 가게 앞을 지나가는데


다리를 걷어붙인 청년 하나가 빨간약을 바르고 있다

스패너를 든 가게 사장이

다 고치는데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고 말하자, 청년 왈

배달이 밀려 큰일이라며 성화를 부린다

나는 오지랖 넓게 가던 길을 멈추고


“배달이 뭔 대수냐? 빨리 병원부터 가시라”고 말하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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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의 휴대폰이 울린다

“죄송합니다. 사모님, 곧 도착합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

휴대폰에 대고 쩔쩔매는 청년의 정강이로

빨간약 서너 줄이 길게 흘러내리고

수시로 회사를 때려치운다는 내 입이 부끄러워

나오려던 말을 삼키고 가던 길을 재촉한다

오토바이 한 대 내 옆을 휙 지나간다

비는 오는데 소는 뛰지, 꼴짐은 넘어가는데 오줌은 마렵지, 오줌은 마려운데 허리띠는 안 풀어지던 옛 농부 심정이었을 것이다. 오토바이는 헛바퀴 돌고, 바지는 구멍 나고, 정강이는 깨졌지만 아픈 줄도 모르고 정비소로 왔을 것이다. 어쩌다 넘어졌을까. 비에 젖은 커브에서 브레이크를 잡았을까. 어긋난 맨홀 뚜껑을 피하려다 연석을 들이받았을까. 무슨 물건을 가지고 가던 길이었을까. 쏟아지거나 깨지는 물건은 아니었을까. 저마다의 밥벌이 너머에는 얼마나 많은 상처와 빨간약들이 필요한 걸까. 긴 겨울 건너 퀵서비스로 온 봄꽃들이 휙휙 바람에 진다. <시인 반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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