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오늘의 경제 소사] 1992년 LA 폭동

아프리카계, 한인촌 집중 공격

1992년 폭동이 일어난 LA의 거리를 캘리포니아 주방위군이 순찰하고 있다. /위키피디아1992년 폭동이 일어난 LA의 거리를 캘리포니아 주방위군이 순찰하고 있다. /위키피디아



1992년 4월29일 오후3시께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 아프리카계 시민(흑인)들이 술렁거렸다. 로드니 킹 사건 배심원들이 백인 경찰들에게 무죄 평결을 내릴 것이라는 소문 때문이다. 1년 전 발생한 로드니 킹 사건은 동영상을 통해 흑인뿐 아니라 미국 사회 전체가 경악했던 사건. 한국산 포니 엑셀을 타고 시속 185㎞로 고속도로를 달리던 흑인 운전자 로드니 킹을 추적 끝에 체포한 백인 경찰 4명이 잔혹하게 구타하는 장면에 사람들은 치를 떨었다. 배심원단은 소문대로 무죄 평결을 내렸다.


판결 직후 흑인들이 거리로 모였다. 상점에 돌을 던지고 지나던 백인 운전자를 붙잡아 두들겨 팼다. 날이 어두워지면서 분노는 더 거세게 타올랐다. 몰려다니며 약탈하고 불을 질렀다. 경찰 순찰자도 도망치기 바빴다. LA 경찰당국은 초동대응에서 납득할 수 없는 두 가지 실책을 저질렀다. 뒤늦게 비상령을 내린데다 백인 부유층이 거주하는 지역만 막았다. 흑인 시위대는 경찰이 전혀 없는 코리아타운으로 방향을 틀었다. 결국 LA가 입은 전체 경제적 손실 10억달러 가운데 45%가 한인촌에 집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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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부터 한인촌은 공격받을 위험이 컸다. 두 가지 요인 탓이다. 첫째는 위치. 임대료가 싼 흑인 빈민가 부근에서 가게를 시작해 자연스레 한인촌도 흑인 지역 근처에 형성될 수밖에 없었다. 둘째 요인은 미국 언론의 악의적 보도. 로드니 킹 사건의 재판이 다가오자 미국 주요 방송사는 ‘두순자 사건’을 집중 방영해 흑인들의 분노를 백인에서 한인으로 돌렸다. 두순자 사건은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교민 두순자씨가 오렌지주스를 훔치려는 16세 흑인 소녀와 실랑이하다 우발적으로 총을 쏴 살해한 사건이다. 정당방위를 주장한 두씨는 1급 살인 혐의로 기소돼 집행유예와 400시간 사회봉사 명령을 받고 풀려났으나 흑인들은 들끓었다.

흑인 폭동이 발생한 후에도 사태의 원인을 한인과 흑인 간 갈등 때문으로 호도하는 미국 언론도 많았다. 한인 사회가 위기의 순간에 빛난 대목은 스스로 지켰다는 점. 군 복무 경력을 가졌던 교민들은 자경단 결성, 흑인 폭도들과 맞서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였다. 폭동은 닷새 동안 한인 사망자 1명을 포함해 63명이 죽은 뒤 진정됐어도 교민들은 깊은 상처를 입었다. 연방정부는 LA 재건에 150억달러의 복구 예산을 편성했으나 가장 큰 피해를 입은 한인들에게 배정된 돈은 없었다. 복구에서도 차별받은 셈이다. 국내외에서 1,200만달러 이상 모였다는 성금 집행도 분란과 추문을 남겼다.
/권홍우선임기자 hongw@sedaily.com

권홍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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