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트롤 : 월드투어’가 미국에서 극장주의 분노에 휩싸였다. 코로나19로 극장들이 폐업 위기에 몰린 상황에서 영화 제작·배급사인 유니버설 측에서 VOD 직행에 따른 성과를 눈치 없이 자랑했기 때문이다. 전미극장주협회(NATO)는 곧바로 비판 성명을 냈고, 세계 최대 극장 체인 AMC는 아담 애런 CEO가 직접 나서 앞으로 유니버설의 작품을 상영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VOD 직행 대박에 유니버설 “새 가능성”
28일(현지시간) CNBC, 헐리우드리포터 등 미국 현지 언론에 따르면 유니버설은 올초 ‘트롤(2016년작)’의 후속작인 ‘트롤 : 월드투어’의 전세계 극장 개봉을 추진했다. 하지만 코로나 19가 전세계로 확산하면서 극장을 포기하고 VOD로 우회하기로 결정했고, 지난 10일 미국 내 온라인 동영상 플랫폼에 공개했다. 극장을 거쳐 온 게 아니라 첫 공개인 만큼 대여료가 프리미엄 주문형 비디오(PVOD) 가격인 19.99달러로 책정됐다.
코로나19 한가운데서 고심 끝에 강행한 새로운 시도는 성공이었다. 출시 3주 만에 1억달러(1,219억원) 매출을 올린 것이다. 실제 수익 면에서는 더 쏠쏠한 성과였다. 전편의 북미 박스오피스매출은 5개월 동안 1억5,370만달러였는데, 영화계 관례상 제작사인 유니버설은 이중 절반 정도를 가져갔다. 반면 VOD에서는 유니버설의 몫이 80%에 달했다.
이에 유니버설스튜디오 모회사인 NBC유니버설의 최고경영자(CEO) 제프 셸은 월스트리트저널(WSJ)과 인터뷰에서 “트롤 월드투어는 우리의 기대를 뛰어넘어 PVOD의 가능성을 보여줬다”며 “극장이 재개관하게 되면 우리는 두 가지 포맷(극장·VOD)으로 영화를 내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극장가 분노…美 최대 AMC “유니버설 영화 거부”
하지만 셸 CEO의 발언은 미국 극장가를 자극했다. 코로나19로 극장 영업이 중단 되면서 자금 유동성이 악화 되고 폐업까지 걱정하고 있는 판에 ‘새로운 가능성’ 등을 언급했기 때문이다.
전미극장주협회(NATO)는 곧바로 성명을 내고 “유니버설이 트롤 월드투어의 PVOD 결과에 만족할지 모르지만 이를 할리우드에서 ‘뉴 노멀(새로운 정상)’의 신호로 해석해선 안된다”며 “유니버설은 유례없는 환경에서의 특이한 상황을 극장 개봉 우회의 이유로 삼지 말라”고 덧붙였다.
미국 최대 극장 체인 AMC는 별도로 실망과 분노를 표출했다. 아담 애런 AMC CEO는 도나 랭글리 유니버설픽처스 회장에게 보낸 서한에서 “앞으로 유니버설의 작품은 상영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애런 CEO는 “(코로나19로) 극장들은 문을 닫았다. 트롤 월드투어가 안방으로 바로 간 건 예외였을 뿐”이라며 “제프 셸의 발언은 실망스럽고, 우리에게는 이제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강조했다.
■韓서도 CGV·롯데, ‘극장·VOD’ 동시 개봉 반대
AMC를 비롯한 미국 극장계의 분노는 VOD 직행이 일반화할 경우 전통적인 영화산업 생태계가 위협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영화 ‘사냥의 시간’이 극장 개봉을 포기하고 넷플릭스 직행을 선언했다가 소송에 휘말린 바 있다. 당시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냈던 해외 세일즈사 콘텐츠 판다 역시 영화 생태계 파괴 가능성을 이유로 들었다. 우여곡절 끝에 넷플릭스에서 상영 가능해졌지만 앞으로도 비슷한 사례가 나올 경우 갈등 상황이 재연될 가능성은 크다.
또 유니버설이 미국에서는 VOD로만 직행했지만 한국에서는 셸 CEO가 언급한 ‘두가지 포맷’ 개봉 실험에 나섰다. 29일 극장과 VOD 동시 개봉을 선언했는데, 한국 극장가 역시 이를 거부했다. 지점 수가 가장 많은 CGV와 롯데시네마가 동시 개봉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트롤 : 월드투어’를 상영하지 않기로 하면서 ‘메가박스와 VOD 동시 개봉’에 그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