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해외칼럼] 블루스테이트에 보낸 매코넬의 메시지 '급사하라'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이미 수많은 미국인이 목숨을 잃었지만, 사망자 수는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것이다. 경제사정 역시 말이 아니다. 코로나19는 대공황과 비교조차하기 힘들만큼 심각한 경기둔화를 불러왔다.

하지만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경기침체에 반드시 재정적 어려움이 동반돼야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모든 미국인이 배불리 먹고, 의료보험 혜택을 유지하며, 렌트나 모기지를 내지 못해 살 곳을 잃지 않도록 도울 수 있는 충분한 재원이 있다. 물론 필요불가결한 공공서비스를 축소해야 할 이유도 없다.


불행히도 수 만 명의 미국인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극단적인 경제적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고, 공공서비스도 대폭 축소될 가능성이 크다. 왜냐고.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미치 매코넬’이라는 정치인의 이름 두 마디로 족하다. 연방 상원 공화당 원내대표인 매코넬은 지난 22일 코로나19 영향으로 곤경에 처한 전국의 주와 시 정부에 대한 연방정부의 추가 지원에 반대한다며 “재정파탄 상태에 빠진 주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은 차라리 파산을 신청하라”고 권했다.

아직도 매코넬이 당파주의자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싶다면 그의 보좌관들이 작성한 두 건의 메모부터 살펴보라. 주 정부 지원안에 관해 언급한 메모의 제목은 ‘블루스테이트 긴급구제’(blue state bailouts)다. 블루 스테이트는 민주당 강세지역을 뜻한다. 따라서 두 건의 메모는 매코넬이 블루 스테이트에 대한 지원중단을 염두에 두고 작성한 것임을 시사한다.

이와 관련해 여러 명의 주지사들이 ‘어리석은 생각’이라며 매코넬을 비난하고 나섰다. 옳은 지적이다. 그러나 매코넬이 취한 입장은 단지 어리석기만 한 게 아니라 악랄하고 위선적이다.

앞서 필자는 “우리에겐 재정적 어려움을 극복할 충분한 재원이 있다”고 말했다. 여기서 ‘우리’란 낮은 이자율로 막대한 자금을 차입할 수 있는 연방정부를 지칭한 것이다. 실제로 차입경비의 척도로 간주되는 ‘물가연동 국채’의 현 이자율은 -0.43%다: 기본적으로 투자자들이 연방정부에 관련비용까지 지불해가며 돈을 빌려주고 있다는 얘기다.

워싱턴은 현재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막대한 예산적자를 감당할만한 여력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당연히 적자를 감수해야만 한다. 그러나 지방정부들은 예산적자를 내서는 안 된다. 전국의 거의 모든 주가 예산균형을 법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전방에서 팬데믹과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 주 정부들은 심각한 세수 결손과 치솟는 경비로 저마다 심각한 재정파탄 위기에 직면한 상태다.

이에 대한 확실한 해법은 연방지원이다. 그러나 매코넬은 주 정부와 시 정부들이 연방정부에 손을 벌리는 대신 파산을 신청하길 원한다.

이건 여러 면에서 어리석기 짝이 없는 해법이다 우선 주 정부에겐 파산을 선언할 법적 권한이 없다. 설사 채무를 변제할 능력이 없어 비교적 적은 빚을 상환하지 않는다 해도 지방정부가 느끼는 재정압박이 크게 완화되지는 않지만 국가적 위기는 가중된다.


게다가 이 같은 재정고갈 위기가 블루 스테이트에 국한된 문제라는 발상은 터무니없다. 플로리다에서 캔자스와 텍사스에 이르기까지 석유가격 붕괴로 심한 타격을 입은 주들은 물론 매코넬의 출신지역인 켄터키를 포함한 미국 전역의 지방정부들이 재정위기에 노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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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주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이 예산을 대폭 삭감할 수밖에 없는 처지로 몰린다면 전반적인 경기둔화가 심화될 것이고, 이는 도널드 트럼프의 재선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은 물론 공화당이 상원 다수당의 지위를 유지하는 데에도 부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따라서 매코넬의 주장이 어리석다는 지적은 옳다. 그러나 그의 태도는 단순히 어리석기만 한 게 아니라 사악하기까지 하다.

주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이 급격한 예산삭감에 나선다면 누가 가장 큰 피해를 입을지 생각해보라. 주 정부의 예산 중 상당부분은 의료보험 경비로 사용된다. 수 백 만 명의 미국인들이 일자리와 함께 의료보험을 잃고 있는 현 상황에서 노약자와 빈민층을 위한 정부 의료보험은 확대해야 마땅하다.

지방정부와 시정부의 예산삭감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볼 공무원들은 교사와 경찰관, 소방관들이다. 매코넬의 아이디어가 현실화 될 경우 미국의 실질적 정책은 교사와 경관들을 해고하고, 대형 식당 체인 소유주들을 구제하는 쪽으로 전개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매코넬의 위선에 관해 얘기해보자. 그의 발상은 여러 면에서 위선적이다.매코넬은 대기업들에게 막대한 혜택을 안겨준 감세안의 의회통과를 주도한 장본인이다. 백악관과 공화당의 합작품인 대규모 감세의 최대 수혜자인 대기업들은 직원들의 봉급 인상이나 시설투자 대신 자사주 환매에 새로 확보한 유동성을 쏟아부었다.

그럼에도 매코넬은 불가항력적 외부상황으로 인해 재정위기에 빠진 주 정부들에 대한 자금지원의 실질적 효과에 의문을 제기해가며 짐짓 걱정스런 표정을 지어 보인다.

또 다른 차원에서도 그는 위선적이다. 매코넬의 출신지인 켄터키 주는 연방정부의 재정지원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코넬은 연방정부 지원금보다 훨씬 많은 세금을 중앙 정부에 납부하는 뉴욕 주를 상대로 재정자립에 관한 훈계를 하려든다.

록펠러의 추산에 따르면 2015년에서 2018년 사이에 켄터키 주는 주민 1인당 평균 3만3,000달러 이상의 연방정부 보조금을 받았다. 이는 켄터키 주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18.6%에 해당하는 액수다. 반면 켄터키 주가 중당정부에 납부한 연방세는 얼마 되지 않는다. 주민들의 평균 소득이 워낙 낮기 때문이다.

뉴욕, 뉴저지와 코네티컷 등 상대적으로 부유한 주가 가난한 이웃에게 도움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은 맞는 얘기다. 그러나 국가적 재난사태 앞에서 가난한 이웃이 ‘블루 스테이트 긴급구제’에 관해 불만을 토로할 권리는 없다.

물론, 여기에 매코넬의 노림수가 있다: 그는 팬데믹으로 피해를 입은 블루스테이트 주들이 예산삭감과 긴축재정을 통해 정부규모를 축소하길 원한다. 이 같은 시도에 맞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단지 정치적 목적을 위해 비극적인 재난상황을 악용하는 파렴치한 시도가 실패로 끝나 매코넬과 그의 우군들이 정치적 대가를 치르기를 희망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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