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건재함을 과시했음에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신중론을 유지하고 있어 주목된다.
김 위원장의 신변이상설이 제기된 후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에 관한 언급을 최대한 자제했다. 평소 과장된 화법을 사용하던 트럼프 대통령의 신중한 모습은 ‘최고지도자’의 신변문제를 민감하게 여기는 북한을 배려한 행보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의 건재 사실이 확인된 1일(현지시간) 에도 “아직 언급하지 않는 게 좋겠다”, “적절한 시점에 이야기할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고만 답해 궁금증을 자아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간 “잘 있기를 바란다”, “모든 것이 괜찮기를 바란다”며 김 위원장의 신변에 대해 신중론을 유지하며 여운을 남겼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언론 인터뷰에서 “만일의 사태”라는 말까지 사용하며 긴장감을 키웠다.
김 위원장의 신변에 대해 한국 정부가 자신감을 가진 점을 볼 때 동맹인 미국도 관련 정보를 미리 파악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만큼 미 행정부의 반응은 일반적이지 않다. 외교가에서는 이를 두고 트럼프 대통령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 19) 사태가 확산되는 등 정치적 악재가 겹치는 상황에서 ‘북한 리스크’를 관리해야 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란 해석이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특히 김 위원장이 연초에 새로운 신형전략무기를 곧 선보일 것이라고 엄포를 놓은 상황에서 북미 비핵화 협상 판을 깰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등을 했을 경우 트럼프 행정부는 곤경에 처할 수 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이 11월 대선에 걸림돌이 될 수 있는 북한과의 관계를 잘 유지해야 했을 것이란 해석이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 과정에서 대북 성과를 과시하기 위해 김 위원장의 신변이상설을 확대 재생산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조심스럽게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김 위원장과 “아주 좋은 관계를 갖고 있다”고 각별한 관계를 과시한 뒤 매번 북한과의 전쟁을 막았다는 외교적 성과를 강조했다. 실제 김 위원장은 신변이상설을 통해 전 세계에서 가장 관심을 받는 인물이 됐고 미국 조야에서도 북한에 대한 관심을 다시 끌어오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AFP통신은 김 위원장의 최근 신변이상설이 북한의 핵무기와 김 위원장을 후계승계에 대한 국제적 공포감을 촉발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신중론은 미국의 국가안보를 위한 전략적 행보라는 풀이도 나왔다. 김 위원장의 신변에 대한 정보는 미군의 정찰 능력을 대외에 그대로 노출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작용했을 것이란 분석이다.
한편 빈센트 브룩스 전 주한미군사령관은 미국 전략폭격기 B-1B 랜서 2대가 최근 동아시아에 전개된 것도 북한 상황과는 무관하다고 밝혔다. 브룩스 전 사령관은 이날 미국의소리(VOA) 방송에 “ B-1B의 최근 움직임은 김 위원장이나 북한 상황과 아무 연관이 없다”고 말했다. 앞서 민간항공추적 사이트 ‘에어크래프트 스폿’에 따르면 미국 B-1B 랜서 2대는 미국 본토에서 일본 오키나와 인근 동중국해를 거쳐 괌으로 비행했다. 이에 따라 외교가에서는 미국이 김 위원장의 신변 이상설과 관련 북한 동향을 파악하기 위한 정찰에 나선 것 아니냐는 주장이 나왔다. 브룩스 전 사령관은 “전략폭격기의 움직임과 북한 상황을 연계시키는 것은 언론의 오해와 추측에서 비롯됐다고 생각한다”며 “내 경험을 토대로 보면 그렇게 연결되지는 않는다”고 단언했다.
이어 “미국은 남북 긴장 완화 조치 노력의 일환으로 2018년 봄 이후 한반도에 전략자산을 전개하지 않았다”며 “현시점에서 이런 방침이 갑자기 바뀐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또 “북한과의 상황과 관련해 향후 전략폭격기 전개가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 매우 빨리 관련 자산을 투입할 수 있다”면서도 “최근의 움직임은 북한과는 관계가 없어 보인다”고 거듭 강조했다.
브룩스 전 사령관은 한반도 주변에서 미군 정찰자산들이 항적을 공개적으로 노출하는 것에 대해 “불필요한 긴장 조성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