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국회·정당·정책

원내대표가 대체 뭐길래…민주당 원내대표 흑역사 되돌아보니

천정배 김진표 박영선 등 민주당의 원내대표의 정치적 역경 주목

더불어민주당 21대 국회 첫 원내대표 경선이 나흘 앞으로 다가온 3일 후보들은 ‘막판 득표전’에 열을 올리고 있다. 원내대표 경선 출사표를 던진 김태년·전해철·정성호 의원(이상 기호순)은 지난달 30일부터 이어진 황금연휴 기간 21대 국회의원 당선인들과 접촉면을 넓히며 지지 호소에 나섰다.

김태년 의원과 전해철 의원은 전국 곳곳을 돌며 대면 선거운동을 벌이고, 정성호 의원은 전화와 문자 메시지 등을 통해 ‘메시지 공중전’에 집중하며 막판 유세를 펼쳤다. 김 의원은 ‘일하는 국회를 만들 일꾼 원내대표’, 전 의원은 ‘당정청 간 원활하고 효율적인 소통을 이끌 적임자’, 정 의원은 ‘당내 다양한 목소리 반영과 여야 협치’를 내세우고 있다.


이처럼 후보들이 원내대표직에 출마하고 선출되려는 이유는 원내대표 당선 이후 정치적 입지가 확장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야당과의 협상을 이끌면서 모든 언론의 스포트 라이트가 집중되는 만큼 지역구 관리도 수월하다는 이점이 있다. 특히 원내대표 수행 이후 정치적 야심에 따라 당 대표 선출에도 도전할 수 있어 ‘원내대표 선출=정치적 입지 확장’이라는 등식을 활용할 수 있다.

그러나 과거 더불어민주당의 전신인 열린우리당과 새정치연합 등에서는 원내대표가 중간에 자진사퇴하는 등 정치적 역경을 경험하기도 했다. 따라서 자칫 원내대표 이후 중간에 자진사퇴할 경우 차라리 “아니한 만 못하다”라는 평가를 들을 수 있다. 과거 원내대표 흑역사를 돌아본다.





천정배 원내대표, 국가보안법 합의안 반발에 결국 자진 사퇴





열린우리당 창당의 주역 중 한명이자  원내대표와 법무장관 등 여권 핵심요직을 거친 천정배 의원이 28일 국회에서 탈당기자회견을 마치고 회견장을 떠나고 있다./사진=연합뉴스열린우리당 창당의 주역 중 한명이자 원내대표와 법무장관 등 여권 핵심요직을 거친 천정배 의원이 28일 국회에서 탈당기자회견을 마치고 회견장을 떠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천정배 의원은 과거 열린우리당에서 원내대표에 당선되면서 정치적 주가를 올리고 있었다. 하지만 국가보안법 문제가 불거지면서 정치적 타격을 받아야만 했다. 당시 열린우리당은 탄핵 역풍으로 17대 총선에서 152석을 얻어 과반 의석을 차지했다. 문제는 당론으로 정한 국가보안법 폐지를 놓고 당론이 나뉘기 시작했다. 한나라당과 보수세력은 ‘국가보안법 수호’에, 노무현 당시 대통령은 “독재시대의 유물인 국가보안법이라는 칼을 칼집에 넣어 박물관에 보관해야 한다”고 밝힌 상황이었다. 당내에서도 친노 성향 의원들이 국가보안법 폐지를 요구하자 또 다른 의원들은 국가보안법 폐지 반대 모임을 만드는 등 열린우리당은 두 갈래로 나뉘었다. 문제는 유시민 정청래 의원 등 친노 성향 의원들이 폐지 반대 의원들을 향해 “당을 떠나라”라고 고함지르는 일도 벌어졌다. 당시 이부영 당 의장은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와 회동을 통해 △국가보안법 여당 단독 처리 불가 △국가보안법의 민주주의 탄압 부분 개정 등 4개항에 합의안을 만들어냈다. 보안법 폐지를 요구하는 입장에서 이부영 의장이 합의한 단독 처리 불가와 보안법 개정 등에 대해 수용하지 않고 극렬하게 반발했다. 의원총회를 통해 여야 합의안을 추인받으려 한 상황에서 천정배 원내대표는 ‘배신자’라는 고함과 손가락질에 원내대표직을 사퇴하고 의원총회장을 떠나버렸다. 국가보안법 폐지가 의석수 문제로 불가능한 상황에서 여야 합의를 통해 독소조항 개정을 추진하던 지도부가 당내 반발로 홍역을 치러야만 했다.




김진표 원내대표, 한미 FTA 협상과 국회 정상화 합의안 반발에 자진 사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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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의 한ㆍ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강행 처리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민주당 지도부에 대한 책임론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23일 오전 국회 당대표실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손학규 대표와 김진표 원내대표가 눈을 감은채 최고위원들의 모두발언을 듣고 있다. /사진=연합뉴스한나라당의 한ㆍ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강행 처리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민주당 지도부에 대한 책임론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23일 오전 국회 당대표실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손학규 대표와 김진표 원내대표가 눈을 감은채 최고위원들의 모두발언을 듣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김진표 의원은 1974년 행정고시 합격 후 재경부 차관과 국무조정실장 등을 역임한 관료 출신 의원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노무현 당선자에게 “김진표를 반드시 중용하라”는 조언을 했다고 알려질 정도로 유능한 관료로 평가 받았다. 참여정부 초기에는 경제부총리를 역임하면서 카드 대란 사태를 조기에 수습하는 능력도 보여줬다. 김 의원은 2004년 17대 국회와 2008년의 19대 국회의원으로 재선에 성공한 뒤 곧 바로 원내대표에 선출됐다. 통상 3선과 4선 의원이 도전하는 원내대표직이지만 김 의원의 경우 당시 경제부총리까지 역임한 만큼 재선 의원으로서 무난히 원내대표에 당선됐다.

이처럼 승승장구하던 김진표 의원도 원내대표직을 수행하던 과정에서 정치적인 상처를 남겼다. 김 의원은 2011년 한미 FTA 비준안과 관련해 한나라당과 협상안을 만들어왔지만 의원들의 반발로 부결되면서 정치적인 홍역을 겪었다. 그는 이후 한나라당의 한미 FTA 비준안 날치기 통과 이후 당내에서 제기된 ‘투자자-국가 소송제(ISD) 폐기와 유보’를 위한 재협상 요구에 아무런 협의안을 이끌어내지 않은 채 국회 정상화에 합의했다. 이 같은 국회 정상화 방안 합의는 당 지도부와 협의 없이 이뤄져 당내 역풍은 거세졌다. 그는 당시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우리가 야당이 되니 또 (FTA 반대) 강경론이 득세했다”며 “비준반대는 자살골이라고 설득하면서 찬성으로 유도하니 당에서는 ‘한나라당 2중대다, X맨이다’는 말이 나왔을 정도”라고 회고한 바 있다. 김진표 원내대표는 그해 12월 열린 의원총회에서 “자리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밝히면서 사실상 사퇴를 선언했다.



박영선 원내대표, 세월호 특별법 협상에 발목 잡혀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원내대표가 1일 안산 세월호 유족 가족대책위 사무실을 방문하고 나서 밖으로 나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원내대표가 1일 안산 세월호 유족 가족대책위 사무실을 방문하고 나서 밖으로 나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박영선 의원은 지난 2012년에 치러진 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승리해 3선 고지를 밟으며 정치인으로서 탄탄 대로를 걸었다. 박 의원은 이후 2014년 5월에 치러진 원내대표 선거에서 여성 원내대표로 당선되면서 평소의 강경한 모습과는 달리 온건한 모습을 보이면서 원숙한 능력을 보였다. 하지만 새정치연합은 2014년에 7월에 열린 7·30 재보궐 선거에서 참패하면서 ‘국민공감혁신위원회’라는 이름의 비상대책위원회의 위원장으로 선출됐다. 원내대표 겸 비상대책위원장인 박 의원은 새누리당이 제시한 ‘세월호특별법 법안’을 수용하기로 결정하면서 당내의 강한 반발에 부딪혔다. 박 전 의원은 2014년 10월 2일 “원내대표직 그 짐을 내려놓으려 합니다”라는 장문의 이메일을 보내면서 원내대표직 사퇴를 공식화했다. 그는 이메일에서 “저는 세월호 특별법만은 정직하게 협상하고 반드시 결실을 보아야한다고 믿었다. 낯선 정치에 뛰어든 뒤 지난 10년의 경험에서 저는 소리는 요란했지만 정작 목표는 이뤄지지 않는 많은 경우를 보았다”면서 “2004년 국가 보안법 협상이 그랬고 과반 의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17대 국회의 검경 수사권 조정 협상이 그랬다. 지난해 국정원 개혁법 역시 우리가 개혁특위위원장까지 맡았지만 결국 법 한 줄도 고치지 못했다”고 새누리당과 세월호 특별법 협상 결과물에 대한 설명을 내놓았다.

당시 박영선 원내대표는 세월호 특별법 협상에서 7명의 특별검사추천위원회 구성에서 당연직을 제외한 국회 추천 몫 4명을 여야 각각 2명씩 동수로 합의했다는 이유로 강한 반발에 부딪혔다. 이후 여당 몫 2명을 유가족과 사전동의를 받는 조건으로 선정하는 합의안을 다시 마련했지만, 이마저도 의원들이 반발하면서 진통을 겪었다. 결국 야당 또는 진상조사위원회에 특별검사 추천권을 준다는 플랜 B마저도 관철 시키지 못했다는 이유로 세월호 유가족과 당내 의원들이 강하게 반발했다. 박 의원 측은 “특검 추천권을 가져오지 못한 대신 유가족의 진상 조사위 추천 몫을 2명에서 3명으로 늘린 성과가 있다”고 항변했지만 싸늘해진 여론은 좀 처럼 바뀌지 않았다.

박 의원은 원내대표직과 비상대책위원장의 자리를 놓기 위해 후임으로 보수 성향의 이상돈 교수와 진보 성향의 안경환 교수를 공동위원장으로 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문제는 이 같은 계획도 당내 반발로 이어져 결국은 탈당까지 고심할 정도로 당내역풍으로 최대 위기를 맞았다. 당시 문재인 대표가 김종인 전 새누리당 선거대책위원장을 영입하면서 박영선 원내대표로 인해 갈라진 당은 안정을 되찾았다.

김상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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