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무역분쟁이 다시 격화될 조짐에 국내 기업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이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글로벌 경제위기가 닥친 상황에서 또다시 국내 기업 수출이 직격탄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5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 3월부터 한국 수출액은 전년 동월 대비 2개월 연속 감소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본격화된 지난달 수출액은 24.3%나 줄었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였던 2009년 5월에 29.4%가 감소한 후 최대 낙폭이다. 이에 지난달 무역수지도 9억5,000만달러 적자가 나며 99개월간 이어진 장기 무역수지 흑자가 멈추게 됐다.
3~4월 수출 감소는 일시적이라는 게 정부의 설명이지만 문제는 미국과 중국이 코로나19 확산을 두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는 점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최근 코로나19 팬데믹에 중국의 책임이 크다며 “중국으로부터 보상을 받기 위해 1조달러(약 1,200조원) 상당의 추가 관세를 물릴 수 있다”고 밝혔다. 래리 커들로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도 “중국은 코로나19 사태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코로나19에 이어 수출 기업에 초대형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한국 전체 수출 가운데 미중 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38.9%에 달한다. 특히 중국을 거쳐 미국으로 수출되는 물량이 많아 미중 무역분쟁이 발생할 때마다 국내 기업들이 치명상을 입는 구조다. 우리금융경영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1~9월 한국 수출은 미중 무역분쟁의 여파로 9.8% 감소했다. 영국(-6.3%), 독일(-5.1%), 일본(-4.4%) 등을 제치고 전 세계 교역 상위 10개국 중 가장 큰 타격을 입었다.
국회예산처의 ‘한국에 대한 미국의 수입규제조치 파급효과 분석’ 보고서는 미국의 수입규제로 우리 철강 수출 손실액이 오는 2022년까지 최대 28억5,000만달러(3조2,000억원)에 달할 수 있다고 전망하기도 했다. 세탁기 수출 손실액은 올해 말까지 최대 8억8,000만달러(약 9,800억원), 태양광전지 수출 손실액은 2021년까지 4억7,000만달러(약 5,3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높아지는 불확실성에 삼성전자(005930)·현대차(005380) 등 주요 대기업은 올해 경영전략을 전면 수정하는 등 대책 마련에 분주한 상황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최근 수원 삼성종합기술원에서 직원들을 만나 “한계에 부딪혔다고 생각될 때 다시 한 번 힘을 내 벽을 넘자”며 “어렵고 힘든 때일수록 미래를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