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경영권 대물림 안 한다"

경영권 승계 의혹 '대국민 사과'

노조 문제로 상처입은 분께 죄송

무노조 경영방침 폐기도 공식선언

준법은 결코 타협할 수 없는 가치

국격에 맞는 새로운 삼성 만들 것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6일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경영권 승계 관련 대국민 사과를 하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  /오승현기자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6일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경영권 승계 관련 대국민 사과를 하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 /오승현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6일 자녀들에게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삼성의 4세 경영은 없다고 확실하게 못을 박은 것이다. 그동안 이 부회장 경영활동의 발목을 잡아온 경영권 승계 문제를 진정성 있는 사과를 통해 확실히 털고 가겠다는 의미기도 하다. ★관련기사 2·3면

이 부회장은 이날 삼성 서초사옥에서 진행된 대국민 사과를 통해 “저와 삼성을 둘러싸고 제기된 많은 논란은 근본적으로 경영권 승계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이 자리에서 분명하게 약속드린다. 이제는 경영권 승계 문제로 더 이상 논란이 생기지 않게 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녀들에게 회사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을 생각”이라며 “오래전부터 마음속에 두고 있었지만 외부에 밝히는 것은 주저해왔다”고 설명했다. 그간 자녀들의 경영배제 발표를 주저한 이유와 관련해 이 부회장은 “경영환경도 결코 녹록지 않은데다 제 자신이 제대로 된 평가도 받기 전에 제 이후의 승계 문제를 언급하는 것이 무책임한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전자의 기업 규모나 정보기술(IT) 산업의 특성을 고려할 때 이 부회장이 자녀에게 회사를 물려주기보다 최고 수준의 전문경영진이 회사를 이끌어야 미래의 생존을 담보할 수 있다는 결단을 내린 것으로 풀이된다. 이 부회장은 “인재들이 저보다 중요한 위치에서 사업을 이끌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삼성의 ‘무노조 경영’ 폐기도 공식 선언했다. 삼성이 그룹 차원에서 무노조 경영 방침 폐기를 밝힌 적은 있으나 이 부회장이 이를 공식화한 것은 처음이다. 이 부회장은 “그동안 삼성의 노조 문제로 인해 상처를 입은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이제 더 이상 삼성에서 무노조 경영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번 이 부회장의 입장표명은 삼성의 준법경영을 감시하는 외부 독립기구인 삼성 준법감시위원회가 경영권 승계 및 노조 문제에 대한 이 부회장의 대국민 반성과 사과를 권고한 데 따른 것이다. 이 부회장의 대국민 사과는 지난 2015년 6월 메르스 사태 당시 삼성서울병원의 전파 책임과 관련해 사과한 후 5년 만에 처음이다.

이 부회장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극복하고 한 차원 더 비약할 삼성의 미래 비전도 구체적으로 공개했다. 그는 “끊임없는 혁신과 기술력으로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하면서 신사업에 과감하게 도전하겠다”고 밝혔다. 위기 때 투자를 늘려 위기 이후 경쟁업체와 격차를 벌리는 삼성 특유의 초격차전략을 지속하겠다는 의미다.

이번 사과를 계기로 준법경영에 더욱 매진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부회장은 “준법은 결코 타협할 수 없는 가치”라며 “저부터 준법을 거듭 다짐하고 준법이 삼성의 문화로 확고하게 뿌리내리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또 “최근 2~3개월간에 걸친 전례 없는 위기상황에서 진정한 국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절실히 느꼈다”면서 “대한민국의 국격에 어울리는 새로운 삼성을 만들겠다”고 밝히며 입장 발표를 마쳤다.
/이재용·변수연기자 jylee@sedaily.com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6일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경영권 승계 관련 대국민 사과문을 읽는 도중 잠시 숨을 고르고 있다. /오승현기자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6일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경영권 승계 관련 대국민 사과문을 읽는 도중 잠시 숨을 고르고 있다. /오승현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6일 삼성의 ‘4세 경영’은 없다고 천명했다. 이병철 삼성 창업주에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이 부회장으로 이어진 경영권 승계가 ‘3세 경영’을 끝으로 막을 내린다고 공식적으로 밝힌 것이다. 과거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불거진 논란에 대한 진정성 있는 사과와 함께 4세 경영 포기라는 확실한 대책을 내놓으며 더 이상 과거 문제에 발목 잡히지 않고 삼성의 미래를 다지는 일에 온 힘을 쏟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재계에서는 이날 이 부회장이 경영권 승계 문제와 관련해 원론적 수준의 반성과 사과를 할 것으로 점치는 분위기였다. 현재 경영권 승계와 관련한 법원의 재판과 검찰의 수사가 진행 중인 만큼 이 부회장이 구체적인 입장을 내놓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부회장은 이날 경영권 승계에 대한 사과와 함께 자녀에게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는 파격적인 카드를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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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회장은 이날 삼성 서초사옥에서 진행된 대국민 사과를 통해 “그동안 저와 삼성은 승계 문제와 관련해 많은 질책을 받아왔다”면서 “특히 삼성에버랜드와 삼성SDS 건에 대해 비난을 받았고 최근에는 승계와 관련한 뇌물 혐의로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또 “이제는 경영권 승계 문제로 더 이상 논란이 생기지 않도록 하겠다”며 “법을 어기는 일은 결코 하지 않고 편법에 기대거나 윤리적으로 지탄받는 일도 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제 아이들에게 회사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을 생각”이라고 분명히 밝혔다. 이 부회장은 아들 한 명과 딸 한 명을 두고 있다.

공교롭게도 삼성의 4세 경영은 없다는 이 부회장의 이날 입장표명은 부친인 이 회장이 급성심근경색으로 쓰러진 지 6년째를 앞두고 나와 의미가 남다르다는 평가가 제기된다. 이 부회장은 이날 “지난 2014년에 회장님이 쓰러지시고 난 후 부족하지만 회사를 위해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면서 “큰 성과를 거뒀다고 자부하기는 어렵지만 그 과정에서 깨닫고 배운 것도 적지 않았다”고 소회를 밝혔다.

이번 경영권 관련 발표는 이 부회장이 2018년 5월1일 공정거래위원회가 대기업집단 동일인을 이 회장에서 이 부회장으로 변경하며 공식적으로 삼성 총수에 오른 지 2주년을 맞은 시점에 이뤄졌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이 부회장의 경영권 관련 입장발표가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의 권고 기한에 맞춘 것은 물론 이 회장이 쓰러진 지 6년, 이 부회장이 공식적으로 삼성 총수에 오른 지 2년째 되는 시점에 나왔다는 점에서 이번 기회에 경영권 승계 논란을 확실히 털고 가겠다는 진정성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답변 내용에 대해 삼성 참모 중 일부는 강한 반대와 우려의 의견을 제시했으나 이 부회장은 “오래전부터 생각해왔고 이와 관련한 제 의지는 확고하다”며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벌 승계’라는 한국 대기업의 풍토와 과감히 결별하고 글로벌 경쟁 환경에 대응하는 새로운 경영 비전을 제시한 셈이다. 삼성 안팎에서는 이 부회장의 이날 회견이 이병철 선대회장의 1983년 ‘도쿄 선언’과 이건희 회장의 1993년 ‘신경영 선언’에 버금가는 이 부회장의 ‘뉴삼성 선언’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이 부회장의 대국민 사과는 삼성 준법감시위가 제시한 시한인 이달 11일을 5일 앞두고 이뤄졌다. 당초 준법감시위는 3월11일 삼성의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의 위법행위와 무노조 경영 방침에 대해 이 부회장이 직접 반성 및 사과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준법감시위는 구체적으로 “과거 총수 일가의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준법 의무를 위반하는 행위가 있었던 점에 대해 이 부회장이 반성과 사과는 물론 향후 경영권 승계와 관련해 준법 의무 위반이 발생하지 않을 것임을 국민들에게 공표해달라”고 요구했다. 사과 기한은 한 달 뒤인 4월10일까지였다. 하지만 삼성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모든 경영진이 비상상황이라 권고안 논의에 차질이 불가피하다며 기한연장을 요청해 이달 11일로 미뤄졌다.

한편 삼성 총수가 대국민 사과를 한 것은 1966년 이 창업주가 한국비료의 사카린 밀수 사건으로, 이 회장이 2008년 차명계좌 의혹으로 국민 앞에 고개를 숙인 후 네 번째다. 이 부회장은 2015년 6월 메르스 사태 당시 삼성서울병원의 책임과 관련해 공식 사과한 바 있다.

재계에서는 이 부회장이 공식 사과와 함께 향후 경영권 승계 문제에 종지부를 찍으면서 이제 소모적인 논란을 끝내고 삼성이 코로나19 사태 극복과 위기 이후 미래 성장동력 확보에 매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재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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