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기고] 말로는 거리를 두지 말자

박주화 국립국어원 학예연구사




겨울 끝에 찾아온 고약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계절을 만끽하는 일이 소중한 행복이었음을 깨달을 만큼 사람들의 마음은 지금 크게 위축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침체된 분위기를 개선해보고자 사회 곳곳에서 긍정적인 운동들이 일고 있다.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를 위해 임대료를 덜어주는 ‘착한 임대인 운동’, 꽃 소비를 활성화해 화훼 농가를 돕고자 하는 ‘화훼 농가 돕기’ ‘사무실 꽃 생활화 운동’ 그리고 암묵적인 생활 지침이 된 ‘사회적 거리두기’ 등이 대표적이다. 개개인의 참여로 어려움을 함께 극복하자는 희망에서 시작된 움직임들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운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것은 그 취지에 공감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운동들이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을 수 있었던 데는 그 취지와 내용을 가늠할 수 있는 ‘쉬운 이름’이 있었다.


‘화훼 농가 돕기’ ‘사무실 꽃 생활화 운동’은 ‘원 테이블 원 플라워(1 table 1 flower)’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이름만으로는 꽃으로 어떤 활동을 하자는 것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어떠한가. ‘소셜 디스턴싱(social distancing)’이라는 생소한 용어로 알려졌다면 많은 사람들이 동참할 수 있었을까. ‘착한 임대인 운동’처럼 읽기만 해도 어떤 의미인지 간파할 수 있는 말, 정확한 의미를 단번에 파악하지는 못하더라도 새로운 정보에 낯가리지 않고 다가서는 시도를 해볼 수 있는 말. 이러한 말이 생각을 움직이게 하고 행동으로 실천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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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호트 격리, 드라이브 스루 진료, 워킹 스루 진료, 팬데믹…. 지난 1월부터 접하기 시작한 이 용어들이 제법 익숙해진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용어가 친숙하더라도 그 의미에 도달하기란 여전히 어렵다. 국립국어원에서는 이런 어려움을 덜고자 이들 용어를 ‘동일 집단 격리, 승차 진료, 도보 이동형 진료, 감염병 세계적 유행’으로 쉽게 다듬어 발표했다. 그러나 생산만 있고 소비는 얼어붙은 느낌이다. 쉬운 말을 마련하더라도 실질적인 소비 주체인 언론들이 외면한다면 애꿎은 국민은 새로운 외래 용어를 그저 학습하는 수밖에 없다.

누구나 예외 없이 감염병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 그러므로 감염병의 확산처럼 중대하고 위급한 상황에서 이와 관련된 정보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노출돼야 한다.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자는 선한 취지의 사회적 운동이 알기 쉬운 이름으로 사람들을 움직였다면 이제는 언론에서 쉬운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대중을 끌어안아야 한다. ‘사회적 거리두기’에 이어 이제는 ‘생활 속 거리두기’를 실천해야겠지만 말로써 대중과 거리 두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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