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6월 시행된 자동차성능·상태점검 배상책임보험(성능점검 보험)이 결국 폐지될 것으로 보인다. 매년 중고차 구매시 소비자 피해 건수가 1만5,000여건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가운데 구입한 중고차에 문제가 있을 경우 소비자를 구제하기 위해 마련한 성능점검 의무보험 제도가 1년도 안 돼 다시 대안도 없이 원점으로 돌아가는 ‘황당한’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이를 수수방관한 국토교통부와 폐지 여론을 주도한 중고차 매매 업계에 대한 비난 여론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10일 국회 등에 따르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는 지난 8일 전체회의를 열고 함진규 미래통합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자동차관리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오는 17일 임시국회 회기 내에 마지막 관문인 본회의만 열리면 개정안은 무난하게 통과할 것으로 전망된다. 법안이 통과된다면 의무보험이 임의보험으로 전환되는 첫 사례가 된다.
이 법안은 자동차성능·상태점검 업자들의 책임보험 의무가입을 임의가입으로 전환하는 것이 골자로, 3년 전 책임보험 의무화 법안을 발의한 당사자인 함 의원이 이를 무력화하는 법안을 다시 발의하면서 논란을 빚었다. 2017년 거짓이나 오류 투성이 성능·상태점검으로 중고자동차 매수인이 재산상 손해를 보는 사례가 속출해 배상책임보험 가입을 의무화해야 한다며 법 개정을 추진했던 함 의원이 2년 만에 정반대 주장을 펼쳤기 때문이다. 막상 의무보험이 시행되자 함 의원 측은 보험료가 과도하게 높은 점, 소비자에 부담을 전가하는 사례가 속출한다는 점, 성능·상태점검업자와 중고차 매매사업자 간 분쟁 갈등, 고액 보험금 지급을 회피하려는 보험사의 일방적인 보험 해지 현상 등을 근거로 들며 부작용을 막기 위해서라도 법 개정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손해보험업계는 국토부와 금융위원회, 업계가 제도개선 방안을 논의할 것을 건의했지만 논의 테이블은 마련되지 않았다. 2월에는 손보업계가 약 4년 뒤 이뤄질 요율 조정을 앞당겨 보험료를 최대 25%까지 인하해 부담을 낮추고 점검 범위 확대 등을 통해 소비자 보호 기능을 강화하겠다는 개선안을 내놓았지만 중고차 매매 업계와 함 의원 측은 의무보험 폐지 입장을 고수했다.
문제는 주무부처인 국토부마저 대안 마련도 없이 제도 폐지에 힘을 실어줬다는 점이다. 함 의원의 개정안 발의 직후에도 시행 초기의 잡음 때문에 이제 막 도입된 제도를 폐지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던 국토부는 매매 업계 등의 불만 제기가 잇따르자 의무보험 폐지로 입장을 바꿨다. 6일 교통법사위에서는 오히려 임의화가 소비자 선택권을 확대한다는 주장을 펼치기까지 했다. 당시 회의에 출석한 손명수 국토부 2차관은 “임의화하더라도 소비자가 원하면 보험을 들 수 있는데 현재는 강제가 되다 보니 소비자들이 불만이고 매매업자들도 불만”이라며 “추가적인 소비자 보호를 위해서는 계속 대책을 만들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이해관계자 간 충분한 협의를 거쳤느냐는 이현재 의원의 지적에 대해서는 “노력은 했는데 자동차진단보증협회는 (임의화) 찬성으로 돌아섰으나 손해보험협회는 의무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보험사들로서는 그래야지 보험이 된다”며 보험업계만 유일하게 개정안에 반대하고 있다는 식의 주장을 내놓았다.
그러나 손 차관의 주장과 달리 소비자단체들은 의무보험 폐지에 대해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지난 2월 안실련·전국모범운전자연합회·녹색어머니중앙회 등의 소비자단체들은 ‘소비자 피해를 부추기고 국민 생명을 담보로 한 중고차의 부실 성능점검 임의화를 반대한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내고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향후 중고차 거래관행은 더욱 음성적으로 이뤄져 소비자 피해는 급증할 것이며 궁극적으로 국회 및 범정부 차원에서 추진하는 중고차 시장의 투명화 및 선진화는 요원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부작용에 대해서는 관계 당국이 보완책을 마련하되 중고차 소비자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기존 법안의 실효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함 의원 측은 임의보험으로 전환하더라도 소비자 보호 기능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보험업계는 임의가입 변경은 사실상 폐지와 다름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는 중고차 성능점검업자들이 자동차성능보험에 가입하지 않으면 벌금 1,000만원을 부과하는 덕분에 우월적 지위에 있는 매매업자들이 점검 가격 인하나 부실점검을 요구하더라도 보험 가입을 근거로 맞설 수 있지만 강제성이 사라지면 점검 불량이나 침수차량 미고지 등의 부실한 점검 사례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제도 폐지와 동시에 매달 빠른 속도로 늘어나던 보험금 지급 건수도 크게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제도 시행 6개월 만에 5,039건의 중고차 매매 건에 대해 29억8,791만원의 보험금 지급이 이뤄졌다. 월평균 720명의 중고차 소비자들이 보험을 통해 피해를 구제받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