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며 국제사회를 통해 한국의 위상이나 위치를 가늠할 수 있게 됐습니다. 정부 정책의 투명성과 개방성, 국민의 높은 의식 수준 등은 전 세계인들에게 우리나라의 반부패 인식에 대해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생각합니다.”
박은정(68·사진) 국민권익위원장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부패인식지수(CPI)가 개선될 것으로 내다봤다. 독일의 비정부 국제기구인 국제투명성기구(TI)에서 발표하는 CPI는 각국의 부패 정도에 대한 인식 수준을 수치화한 지표다.
임기 마지막 해를 맞은 박 위원장은 인터뷰 내내 현 정부 들어 달성한 반부패 성과를 조목조목 설명했다. 그는 “반부패 5개년 종합계획을 만들고 민관 협치를 통해 개혁을 차근차근 추진하면서 최근 몇년간 CPI 등 우리나라의 청렴에 대한 국제사회의 인식이 향상된 부분을 나름대로 보람으로 꼽고 싶다”며 3년여의 재임 기간을 회고했다.
박 위원장이 CPI 개선을 임기 중 가치 있는 일로 거론한 것은 부패지수가 높을수록 추가 사회비용이 발생하고 자원 배분이 왜곡돼 국가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CPI 개선은 한국이 코로나19라는 전례 없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반드시 풀어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이 지난 2017년 발표한 ‘부패방지의 국제적 논의와 무역비용 개선의 경제적 효과’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CPI 수준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정도까지만 낮아져도 국내총생산(GDP)이 8% 넘게 증가한다는 분석이 있다. 한국의 CPI는 권익위 등 정부의 노력으로 2017년 54점(51위), 2018년 57점(45위), 2019년 59점(39위)으로 해마다 상승했다. 박 위원장은 정부의 CPI 상승 요인에 대해 “정부 출범 이후 대통령 주재 반부패정책협의회를 복원해 법조계 전관특혜 근절, 학교법인의 회계 투명성 제고 등 고질적 부패에 대한 범정부 차원의 협의·조정을 통한 대책을 추진했다”며 “또 사회 각계에서 참여하는 민관 협력의 거버넌스인 청렴사회민관협의회에서 공익법인 투명성, 법조계 전관특혜, 특수활동비 개선 등 8건의 정책제안을 도출해 실제 각 부처의 정책에 반영하도록 하는 국민 참여 기반의 반부패정책 추진체계를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조사대상을 OECD 국가로 좁히면 한국은 여전히 하위권에 머물러 있다. 가장 최근 조사인 지난해 기준 OECD 36개국 중 한국의 CPI 순위는 27위였다. 박 위원장은 최근 코로나19로 인한 전 지구적 위기에서 우리나라가 보여준 투명성과 공정성이 OECD 국가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며 “세계가 우리를 보는 눈을 통해 투명성과 신뢰라는 자본을 우리나라가 새롭게 획득했다고 본다”고 진단했다.
박 위원장은 정부가 △적극적인 정보공개 △방역원칙에 따라 안전하고 질서 있게 총선을 실시한 점 △사회적 거리두기, 자가격리 같은 방역과정에서 사재기 자제 등 사회질서를 준수하는 수준 높은 시민의식 등이 한국 정부의 대외 이미지에 긍정적 요소로 작용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 위원장은 2003년 이후 17년 만인 올해 우리나라에서 다시 열리는 세계 최대 규모의 반부패 민관 합동 포럼인 국제반부패회의가 국제사회에 한국의 반부패정책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는 공론장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각국 정부, 시민사회, 학계, 언론 등 약 140개국에서 2,000여명의 반부패 관계자들이 참여한다. 2003년 이후 17년 만에 우리나라에서 개최되는 반부패회의는 당초 6월 서울에서 열릴 예정이었지만 코로나19 사태로 올해 말로 연기됐다. 박 위원장은 “이번 코로나 사태에서 더욱 빛을 발한 한국 정부의 투명성과 국민의 성숙한 시민의식, 정부와 국민 간의 신뢰를 국제사회와 공유하는 등 2003년 서울 회의 개최 이후 보다 청렴하게 변화된 한국의 모습을 알리는 기회가 될 것이라는 데 이번 회의의 큰 의미가 있다”고 했다.
대통령 탄핵사건으로 공정사회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높은 열망 속에 2017년 6월 취임한 박 위원장은 재임 기간 ‘공직자의 이해충돌방지법’을 법제화하지 못한 것을 가장 아쉬운 대목으로 꼽았다. 박 위원장은 “공직사회 신뢰 확보를 위한 반부패청렴제도는 이해충돌방지법을 통해 완성된다”며 “21대 국회는 뚜껑을 열면 이 법부터 통과시켜야 한다”고 역설했다. 권익위는 2013년 8월과 지난해 7월 두 차례 공직자가 직무상 권한을 남용해 자신이나 가족이 인허가·계약·채용 등의 과정에서 이익을 보지 못하도록 한 이해충돌방지법안을 발의했지만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국회는 2015년 3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 법)을 의결하면서 이해충돌방지법안은 제외했다.
박 위원장은 특히 권력형 범죄가 부패인식지수에 미치는 파급력이 큰 만큼 이해충돌방지법안을 통해 고위공직자의 부정부패를 척결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실제 2017년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과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자녀 입시비리 특혜 의혹 등은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큰 주목을 받았다. 이 같은 고위공직자들의 논란이 국제사회에서 우리나라의 부패인식지수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는 게 박 위원장의 판단이다.
그는 “고위공직자의 범죄사건이 발생하면 국민들은 이를 권력형 범죄로 느낀다. 그것은 한 건이면서도 국민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상당하다”며 “소위 ‘스폰서 검사’ 사건처럼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면 그 한 건으로 국민들은 공직사회 전체가 썩었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래서 고위공직자의 윤리성과 청렴성 확보는 권익위의 중점 추진과제가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위원장은 이해충돌방지법 내에 고위공직자를 겨냥한 맞춤형 규정들이 있다며 21대 국회에서의 법안 통과를 거듭 촉구했다. 그는 “고위공직자의 민간 부문 업무활동내역 제출, 가족채용 제한 등 보다 강화된 기준을 제시해 고위공직자의 이해충돌에서 기인하는 부패 예방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며 “고위공직자의 솔선수범을 통한 사회 전반의 청렴의식 확산을 위해 정무직·선출직 공직자에 대한 청렴교육도 확대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박 위원장은 공공기관의 채용비리도 뿌리 뽑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무엇보다 공정성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에 큰 영향을 주는 채용비리 전수조사에 공을 들이고 있다. 권익위는 기획재정부·행정안전부 등 관계기관과 함께 2017년 1,190개, 2018년 1,205개의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채용비리 전수점검을 실시한 데 이어 2019년도 점검 결과도 정리하고 있다. 권익위는 이를 통해 채용비리 피해자 3,294명에게 채용기회를 제공했고 이 중 269명은 실제 취업까지 이어졌다고 소개했다. 박 위원장은 “채용의 공정성에 대한 사회 전반의 인식이 변화해 그동안 관행으로 여겨지던 채용청탁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고 채용비리에 대한 무관용 원칙 적용에 공감대가 형성된 부분은 큰 성과라고 생각한다”며 “세 번째 정기전수 조사는 진행 중이고 상반기 중 2019년 공공기관 채용실태 점검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라고 안내했다.
박 위원장은 한국 사회를 뒤흔들었던 ‘n번방 사건’ ‘버닝썬 사건’을 계기로 공익신고자 보호에 대한 중요성이 날로 높아지는 만큼 관련제도 개선에도 힘써왔다. 실제 공익신고 접수건수는 2018년 3,923건에서 2019년 5,164건으로 늘었고 공익신고자 보호 신청건수도 2018년 61건에서 2019년 147건으로 크게 증가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여전히 공익신고자 보호의 사각지대가 존재한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이에 대해 박 위원장은 “공익신고 대상에 해당하지 않아 보호받지 못하는 사례들이 있어 신고 대상 범위를 넓혀야 한다는 요구들이 계속 있었고 이에 따라 권익위는 현행 법률 전수조사를 통해 공익신고 대상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며 “공익신고자 보호와 관련 법들이 국회를 통과했다. 공익신고 대상이 크게 확대돼 사각지대가 해소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병역법과 아동학대처벌법 등을 포함해 공익신고 대상 법률을 대폭 확대하는 법안은 4월29일 국회를 통과했다. 이 법은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공포되고 6개월 뒤 시행될 예정이다. /정리=박우인기자 wipark@sedaily.com 사진=성형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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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경북 안동 △경기여고, 이화여대 법학과 △1978년 독일 프라이부르크대 법학박사 △1980∼2003년 이대 교수 △1998년 유네스코 국제생명윤리위원회(IBC) 위원 △1998년 한국법철학회 회장 △2004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2008년 한국인권재단이사장 △2011년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사 △2017년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 자문위원 △2017년∼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