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용산 정비창 부지를 개발하겠다고 밝힌 시점이 지난 6일이다. 4일 후인 10일 청와대 국민청원에 민원이 하나 올라왔다. 골자는 청약가점을 산정할 때 ‘지역 거주기간’도 포함해 달라는 것. 내용은 이렇다. 용산 정비창 분양이 오는 2023년 말께로 예정된 만큼 청약 1순위 거주요건인 2년을 채우기 위해 서울로 전입하려는 수요가 대거 늘어난다는 것이다. 즉 가점 산정 시 지역 거주기간을 포함해 오래전부터 서울에 살고 있는 사람과 용산 분양을 노리고 입주한 청약자 간의 차별을 둬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청약가점은 통장 가입 및 무주택 기간, 부양가족 수 등에 따라 결정된다. 만약 민원인의 주장대로 가점 산정 때 지역 거주기간이 포함되면 어떻게 될까. 같은 무주택자라도 서울 토박이의 당첨 가능성은 더 커지게 되는 셈이다. 제도가 현실화될지는 미지수이지만 공급 부족과 각종 규제로 인해 청약 전선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었던 서울 예비 청약자들은 로또 단지인 용산 정비창만큼은 다른 거주자에게 뺏기고 싶지 않다는 피해의식이 깔려 있다.
이 민원이 눈길을 끄는 이유는 용산 개발이 현 정부 출범 이후 더욱 강화된 청약·대출 규제로 인해 나타나는 ‘불평등’ 이슈를 다시 수면 위로 끌어 올리고 있다는 점이다. 규제가 만들어낸 현재 상황을 보자. 물론 누군가는 혜택을 입고 있지만 다른 계층은 철저히 소외되고 있다. 소수의 혜택, 그중에서는 무주택 현금부자들이 특혜를 독식하는 구조다.
청약시장을 보자. 서울 등 투기과열지구의 경우 추첨제 물량이 전무하다. 대부분 가점제로 공급된다. 설상가상으로 강력한 대출규제마저 시행되고 있다. 로또 아파트는 가점에서 유리한 무주택자라도 현금이 없으면 그림의 떡이다. 기존 주택 매입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청약 전선에서 밀린 수요자들이 ‘영끌’로 내 집 마련에 나서보지만 최근에는 이것도 불가능하다. 생애 최초 대출을 받고 싶어도 까다로운 기준에 좌절만 느끼고 있다. 기존 주택을 팔고 넓은 평형으로 이사 가는 것도 대출 규제가 가로막고 있다.
코로나 쇼크는 불평등을 더 심화시키고 있다. 현금부자들은 요즘 수십억원의 강남 일대 아파트 초급매를 쓸어 담고 있다. 시가 15억원 초과는 대출을 받을 수 없는데도 말이다. 한 전문가는 “강남 일대 아파트값이 떨어지는 것보다 대출도 불가능한 초급매 매물을 소수의 누군가가 사들이고 있다는 것이 흥미롭다”며 “외환위기와 금융위기 때 부동산 부의 양극화가 심해졌는데 이번도 예외가 아닐 것 같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을 것이 없는 ‘흙수저 젊은 부부’는 이 같은 불평등을 온몸으로 느끼는 계층이다. 30대 부부가 웬만한 중견기업에 근무한다고 하자. 부부의 소득이 기준을 넘어 생애 최초 주택자금 대출도 못 받을뿐더러 공공임대에도 입주하지 못한다. 대기업에 다니는 맞벌이 부부는 결혼하는 순간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한다. 소득 수준이 기준을 넘어서면서 신혼부부 특별공급 등의 혜택을 아예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청약도 가점이 안 돼 로또 단지는 꿈도 못 꾼다.
얼마 전 하남 위례신도시 미계약분 2가구 무순위 청약모집에 4,043명이 몰려 2,021대1의 경쟁률을 기록해 화제를 모은 바 있다. 분양가가 15억원이 넘어 대출은 한 푼도 받을 수 없다. 그럼에도 무작위 추첨이다 보니 현금부자는 물론 청약 전선에서 밀린 30~40대 및 1주택자 등 이른바 불평등 계층이 대거 청약에 뛰어든 것이다.
전문가들은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점을 여러 차례 강조했고, 지금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이 같은 규제가 오히려 무주택자들의 내 집 마련 비중을 높여주고 있다고 반박한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닌데 그 무주택자는 소수의 계층이다. ‘내가 소외받고 있다’는 불평등은 앞으로 더 거세질 것 같다. 7월 말이면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가 본격 시행된다. 내년에는 3기 신도시 물량에 대한 사전청약도 이뤄진다. 2023년에는 서울에서는 오랜만에 용산에서 로또 단지가 나온다. 더 늦기 전에 규제가 만든 불평등을 해소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 ljb@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