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수입차 시장에서 ‘독일3사’ 쏠림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부동의 1위 메르세데스-벤츠를 비롯해 BMW와 아우디폭스바겐 등 소수 업체들은 ‘신차 효과-재투자’의 선순환이 이뤄지면서 점유율이 높아지고 있는 반면 다른 브랜드들의 시장 기반은 잠식되고 있다. 국내 시장이 한 때 수입차 브랜드들이 앞다퉈 진출하는 ‘황금의 땅’으로 여겨지기도 했지만, 최근 브랜드 양극화가 고착화하면서 시장이 소수 브랜드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11일 수입차 업계에 따르면 지난 4월 벤츠와 BMW(미니 포함·롤스로이스 제외), 아우디폭스바겐(벤틀리·람보르기니 제외) 등 독일3사 시장 점유율은 70.5%로 70%를 돌파했다. 이들의 지난해 4월 점유율은 57.6%였다. 1~4월 누적 기준으로도 지난해 53.2%에서 65.9%로 높아졌다.
인증 문제로 신차 출시가 늦어졌던 아우디와 폭스바겐이 국내 시장에 ‘복귀’하면서 판매량이 올라갔지만 아우디폭스바겐은 벤츠나 BMW가 아닌 다른 브랜드의 고객을 골고루 빼앗아온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달 수입차 시장 전체 판매량이 늘면서 벤츠는 점유율이 줄었지만 판매량은 오히려 늘었고, BMW는 판매와 점유율이 모두 상승했다. 반면 조용히 판매가 늘고 있는 볼보와 신차 효과를 누린 포르쉐를 제외한 다른 브랜드들은 판매량과 점유율이 급감하며 심각한 상황에 처했다.
미국 브랜드인 포드와 지프는 지난달 각각 판매량이 24.2%, 38.8% 줄었고, 1~4월 기준으로도 20.7%, 33.7% 감소했다. 수입 SUV 시장의 강자였던 랜드로버도 판매량이 4월 45.6%, 1~4월 43.5%나 줄었다. 재규어는 지난달 판매대수가 49대에 불과했다. 작년 같은 달보다 54.2% 급감한 판매량이다. 1~4월 기준으론 274대를 팔며 작년보다 54.1% 줄었다.
일본차들의 위기도 심각한 수준이다. 토요타는 4월 판매량이 309대로 전년 동기보다 62.8% 줄었고, 렉서스도 68.3% 급감한 461대를 파는 데 그쳤다. 혼다 또한 68.6% 줄어든 231대, 닛산은 34.2% 감소한 202대였다. 업계에선 일본차 불매운동이 단순한 ‘해프닝’으로 그친 게 아니라 일본차 브랜드 가치 자체를 잠식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독일3사’를 제외한 나머지 브랜드 대부분의 판매량이 급감한 결과 수입차 업계가 소수 과점 브랜드와 점유율 3% 미만의 ‘기타’ 브랜드로 재편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해만 해도 약 5~8%의 점유율을 차지하던 브랜드들이 모조리 3% 이하로 떨어졌고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입 브랜드들도 부지기수다. 수입차 업계 관계자는 “업계에 독일3사 쏠림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며 “너도나도 한국 시장에 뛰어들던 시절은 옛말이고,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의 브랜드들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업계에선 독일3사의 경우 ‘검증된 품질·브랜드→많은 판매량→다양한 마케팅·재투자’의 선순환이 이뤄지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반면 다른 브랜드들은 반대다. 판매량이 적어 투자가 어렵고 평판이 나빠지는 악순환을 겪는 브랜드가 늘어나고 있다.
몇몇 회사는 심각한 위기에 빠져있다는 분석이다. 철수설이 나돌고 있는 한국닛산이 대표적이다. 이 회사는 2018년 4월~지난해 3월까지 141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는데, 최근 회계연도에는 손실 규모가 훨씬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닛산은 일본 본사도 지난해 4·4분기 11년 만에 적자를 기록하는 등 경영난에 처했다. 2018년 4월~지난해 3월 344억의 영업적자를 본 재규어랜드로버도 판매량 급감에 따라 손실 폭이 커질 전망이다. 회사 관계자는 “출시가 미뤄진 신차를 내놓고 서비스와 고객 소통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