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아메리카노에 ‘국민 후식’ 자리를 내 준 껌이 다시 부활하고 있다. 껌은 2000년 초중반까지 이견의 여지가 없는 국민 입가심 간식으로 통했으나 커피전문점의 확대와 함께 국민후식의 자리를 커피에 내줬다. 움츠렸던 껌의 부활의 촉매가 된 것은 공교롭게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다. 코로나19 확산방지를 위해 마스크가 생활화되면서 입 속이 텁텁함을 해소하기 위해 껌을 다시 찾고 있는 것.
12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스테디셀러인 ‘롯데 후라보노껌’이 지난 3월 판매량이 전월 대비 30% 증가한 데 이어 편의점 CU는 3~4월 껌 누적매출이 전년비 4.2% 성장했다. 2000년 초반 이후 매년 감소 곡선을 그려왔던 껌이 모처럼만의 반등이라 업계가 놀라워하는 모습이다.
◇한 때 제과업계 ‘반도체’=부피가 작지만 높은 매출을 올릴 수 있어 ‘제과업계 반도체’로 불렸던 껌의 인기가 식은 것은 커피전문점의 등장과 궤를 같이 한다. 껌은 2010년까지만 해도 3,000억원을 넘보는 시장이었다. 2000년 초반 커피전문점 디저트 문화가 자리를 잡으면서 과거에는 식사 후 입가심이나 에티켓 용도로 껌을 씹었지만 지금은 커피를 즐기면서 더 이상 껌을 찾지 않는다. 여기에 젤리·초콜릿 등 디저트 먹거리가 풍성해진 것도 껌 매출이 줄어든 요인이다.
2010년 3,100억원을 넘어섰던 국내 껌 시장 규모는 2017~2019년 2,400억원, 2,350억원, 2,300억원으로 매년 하락세다. 껌시장 전성기를 이끌었던 롯데제과 자일리톨의 경우 2003년 단일 품목으로 매출 1,700억원을 기록했을 정도다.
껌의 발목을 잡은 것은 ‘껌을 많이 씹으면 턱근육이 발달한다’는 편견도 영향을 끼쳤다. 제과업계 관계자는 “한 대학병원에서 턱관절 장애에 대한 연구결과를 발표했는데 이것이 사각턱 낭설로 번지면서 매출이 꺾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여러 연구에서 껌을 씹는 행위는 심리적 안정감과 집중력을 높여주는 효과가 있다고 입증한 바 있다. 스포츠 선수들이 경기 전 집중력 향상을 위해 껌을 씹는 장면이 유독 많이 노출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일본 등과 달리 우리나라 식약처 등은 식품의 효능에 대한 표현을 까다롭게 보기 때문에 껌의 성분이나 효능에 대해 자유롭게 표현할 수 없다.
◇마스크 생활화에 껌의 존재감 부각=마스크를 달고 살면서 입 속 답답함을 개선하기 위해 껌이 다시 꿈틀대고 있다. 제과업계에서도 이를 고려해 침샘 분리를 자극해 개운함을 배가하는 제품을 선보였다. 롯데제과는 최근 인기를 반영해 용기에 담은 껌 ‘후라보노 믹스’와 츄잉캔디 타입의 ‘뱉지않는 후라보노’를 내놓았다.
껌이 가지는 집중력 제고 등의 효과를 고려해 운동선수 맞춤형 껌도 등장했다. 롯데제과와 롯데중앙연구소가 프로야구 개막을 앞두고 롯데자이언츠에 선수용 맞춤 껌을 특수 제작하여 제공했다. 롯데제과는 지난해 11월부터 선수 개개인의 껌에 대한 선호도를 조사해 씹는 강도, 맛, 크기 등에 대한 세부적인 정보를 파악한 후 롯데중앙연구소에 껌 제작을 의뢰했다. 김원중 선수는 스피아민트 향과 둥근 사각형에 2g의 껌을, 박시영 선수는 레몬 맛의 큰 사이즈(4g), 구승민 선수는 혼합과일 맛의 작고(1.8g) 납작한 판껌으로 맞춤형 껌이 제공됐다.
코로나19로 텁텁한 입 속 느낌을 개선하기 위해 침 분비 촉진 성분을 함유한 마우스워터링향을 첨가한 껌도 나왔다. 롯데제과가 최근 선보인 ‘자일리톨 마우스워터’는 마스크 착용의 일상화로 입 냄새에 민감한 사람들이 늘면서 입 안을 마르지 않도록 하기 위해 껌을 찾는 소비자들을 위한 제품이다. 제과업계 관계자는 “침 분비를 촉진하는 성분이 함유된 마우스워터링 향을 사용해 마우스착용으로 입냄새에 민감한 고객을 위한 제품이 나오는 등 껌 시장도 날로 진화하고 있다”며 “마스크 일상화가 껌 시장 부활의 촉매가 될 지 업계도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