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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록 음악의 전설이 된 밴드부터 요즘 한창 주가를 올리는 인디 뮤지션들까지, 시대와 장르를 아우르는 이들 아티스트에게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모두 ‘롤링홀’ 무대에 섰다는 것이다.
롤링홀은 신촌에서 1995년도에 ‘롤링스톤스’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라이브클럽이다. 2004년 합정동 카페 골목 초입부로 이전하면서 상호를 롤링홀로 바꿔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롤링홀을 필두로 홍대에 여러 라이브홀이 생겨났고, 수많은 아티스트들이 이 무대를 거쳤다.
홍대 라이브 클럽 1세대이자 인디 뮤지션들의 성지로 꼽히는 롤링홀이 올해 25주년을 맞았다. 외부 투자를 한 번도 받지 않고 그 오랜 세월을 버텨내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 어려운 일을 해낸 국내 인디 음악계의 산 증인, 김천성 롤링홀 대표를 서울 마포구 롤링홀 공연장에서 만났다. 그는 “25년이나 할 줄은 몰랐다”면서 “음악을 워낙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으니 행복하지만 현실적으로 힘든 점도 많다. 롤링홀은 나에게 ‘애증’과 같은 존재”라고 소회를 밝혔다.
그에게 롤링홀은 단순한 돈벌이 장소가 아니라 음악에 대한 그의 열정이 고스란히 담긴 공간이다. 김 대표는 “약간의 신념 같은 게 있는 거 같다”며 “뮤지션들의 음반을 공짜로 제작해주거나 제작비를 지원해주기도 했고, 여러 아티스트를 발굴하기도 했다”고 회상한다. 지금은 큰 인기를 누리는 윤딴딴이나 이바다, 케이시 등은 대중에게 알려지기 전 김 대표가 가장 먼저 무대에 세운 아티스트들이다. YB, 크라잉넛 등 롤링홀의 역사와 함께한 고마운 뮤지션들도 많다. 김 대표는 “정상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지금도 전화 한 통이면 아무런 조건 없이 롤링홀 무대에 서주는 의리있는 뮤지션들에게 항상 고마움을 느낀다”며 “저 혼자 잘해서가 아니라, 무대에 서주는 뮤지션들이 있어서 지금까지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25년 간 롤링홀을 이끌어 오면서 풍파도 많이 겪었다. 그 중 가장 인상에 남는 것은 2000년 무렵 공연장(당시엔 롤링스톤스)이 하루 새 잿더미가 된 날이다. “화재가 났을 때는 운영을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힘들었죠. 그런데 사고 다음날 클럽에 가보니 여러 그룹들이 응원 벽보를 남겨뒀더라고요. 아티스트들이 연세대학교 대강당에서 롤링홀 재건 수익금을 모으기 위한 ‘롤링홀 살리기 공연’도 열어줬어요. 시나위, 체리필터, 크라잉넛, 긱스 등 출연 아티스트들이 굉장히 많았죠. 저한테는 인생의 전환점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뮤지션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재기할 생각을 못했을 것 같아요.”
이후에도 크고 작은 어려움을 견뎌낸 롤링홀은 현재 모든 공연계가 그렇듯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역풍을 온전히 맞고 있다. 감염증 여파로 신촌·홍대 공연장 중 두 곳이 벌써 문을 닫았다. 롤링홀도 올해 25주년을 맞아 다양한 공연을 준비했지만 2월 중순 이후 모든 공연을 취소할 수 밖에 없었다. 김 대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점이 가장 무기력하게 느껴진다”면서도 “코로나가 지나가고 나면 라이브를 좋아하시는 분들이 더 많이 공연장을 찾아주실 거라고 믿는다. 그만큼 행복한 일은 없을 것”이라고 희망을 전했다.
코로나19을 계기로 새로운 도전에도 나섰다. 지난 2일 네이버 브이라이브 플러스(VLIVE+)를 통해 ‘오픈 더 롤링홀’ 온라인 생중계 유료 콘서트를 진행했다. ONEWE(원위), W24, D.COY(디코이) 밴드 세 팀이 미국, 일본, 태국 등 전 세계 팬들과 교감을 나눴다. 그는 “온라인 공연이 실제 공연장의 현장감을 따라올 수는 없겠지만, 해외시장에서 밴드의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던 기회였다”고 설명했다.
앞으로는 지금의 롤링홀을 계속 이어가는 것은 물론, 다른 지역에 더 큰 규모의 롤링홀 2관, 3관을 여는 것도 염두에 두고 있다. 디코이 등 직접 밴드도 육성하고 있는 김 대표는 “밴드로 1등을 만들어보고 싶다”며 “K팝이 전 세계적인 인기를 얻고 있듯이 분명히 K록이 한 자리를 차지하는 날이 오리라 믿는다. 밴드의 시대가 올 것”이라며 가슴 속에 품은 더 큰 포부를 내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