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청론직설] "北 급변사태 가능성 여전…외교 독트린 서둘러 만들어야"

[이상환 한국국제정치학회장]

남·북방 삼각관계 뛰어넘는 원칙 세워야 영향력 생겨

北 전략핵무기 완성전 서해 도서 점령 핵담판 벌일수도

정부, 北에 '더이상 벼랑끝 도발 안통한다' 신호 보내고

평화관리 하더라도 통일하려면 결국 레짐체인지가 대안

한국국제정치학회장인 이상환 한국외대 교수는 14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만일 북한에 급변 사태가 오면 유엔의 관리 아래 주민투표로 갈 가능성이 높다”며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호재기자한국국제정치학회장인 이상환 한국외대 교수는 14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만일 북한에 급변 사태가 오면 유엔의 관리 아래 주민투표로 갈 가능성이 높다”며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호재기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일간의 잠행을 깨고 깜짝 등장한 지 보름가량 지났다. 국가정보원은 최근 국회에서 김 위원장이 심장 수술·시술을 받지 않았으며 정상적으로 국정을 운영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그럼에도 김정은 정권의 불안정성에 대한 논의는 끊이지 않고 있다. 한국외국어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인 이상환 한국국제정치학회 회장은 14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급변 사태 가능성이 여전히 있다”며 “급변 사태와 통일을 대비해 한국의 외교 독트린을 서둘러 만들어 발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올해는 한국전쟁 70주년을 맞은 만큼 외교 독트린을 준비하는 게 의미심장하다”고 덧붙였다. 한국외대에 있는 그의 연구실을 찾아 북한의 급변 사태 가능성과 대비책에 대해 들어봤다.






-사망설이 나돌던 김 위원장이 20일 만에 비료공장 준공식에 참석하면서 공개 활동을 재개했다.

△권위주의적 사회주의 정권의 지도자들이 잠행할 때는 보통 세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지배체제가 개인에서 집단으로 또는 그 반대로 변할 때다. 두 번째는 커다란 정책 변화가 있을 때다. 나머지 하나는 유고 상황이다. 이번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든 심혈관계 질환 때문이든 김 위원장의 건강 문제가 주된 이유인 것으로 보인다. 공개 활동 재개와 함께 발생한 비무장지대 내 우리 군 감시초소(GP)에 대한 북한의 총격 도발은 핵·경제 병진정책에 변화가 없다는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김 위원장은 지난 4월 중 최고인민회의(12일), 김일성 생일인 태양절(15일), 인민혁명군 창건일(25일) 행사에 잇따라 불참했고 미국 B-IB 폭격기의 근접 비행에도 과거와 달리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김정은 정권이 공고해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초기 단계다. 본인의 정통성을 강화해줄 수 있는 행사에 빠졌다는 것은 이례적이다. 가장 큰 이유는 결국 건강 문제일 것이다.

-김 위원장의 건강 상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키 170㎝에 몸무게 130㎏이라면 다양한 심혈관계 질환이나 당뇨병을 예상할 수 있다. 북한 정권의 밀실 정보는 일본이 비교적 잘 파악해왔다. 일본 언론이 김정일 유고 때와 달리 소극적으로 보도해 나는 김정은의 잠행에 대해 사망설보다는 건강이상설에 무게를 뒀었다.

-앞으로 북한에 급변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가.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우선 건강 이상이든 권력 암투 때문이든 지도자의 유고로 급변 사태가 생길 수 있다. 다른 하나는 경제제재든 북한 체제의 한계성 때문이든 경제적 어려움이 가중돼 나타날 수 있다. 경제난으로 인해 인위적인 지도자 유고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지도자 유고와 경제난이 한꺼번에 찾아올 수도 있다. 미국 언론인 해미시 맥레이는 1995년에 발간한 저서 ‘2020년의 세계(The World in 2020)’에서 2020년에 한반도에 급변 상황이 생겨 통일이 시작된다고 전망하기도 했다.

-북한의 급변 사태가 발생한다면 어떻게 진행될 수 있나.

△지배층 균열에 식량난 등이 겹치면서 북한 정권이 통제 불능의 상태로 갈 수 있다. 북한 군부 내에 암투가 벌어질 수도 있다.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3대 부자세습에서는 누가 정권을 이어받을지 군부 내에 합의된 틀이 있었지만 그다음은 알 수 없다. 백두혈통에서 한 사람을 원수로 내세울 수 있지만 실질적인 정책 결정은 집단지도체제에서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비하는 게 좋은가.

△‘친(親) 북한정권-반(反) 북한주민의 정책’과 ‘반 북한정권-친 북한주민의 정책’ 가운데 어떤 대북 정책을 펴는 게 바람직한가. 평화 관리가 중요하다고 본다면 전자가 바람직하지만 통일에 방점을 둔다면 후자를 선택해야 한다. 북한에 급변 사태가 생기면 최종적으로는 국제법적 문제가 발생해 유엔의 감시 아래 주민투표를 통해 결정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지금의 친 북한정권-반 북한주민의 정책은 통일에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 평화 관리를 하더라도 통일을 하려면 결국에는 북한의 레짐 체인지(정권교체)밖에 없다.

-북한이 전략무기를 완성하는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


△북한의 핵·미사일 문제를 국제정치의 전망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 가령 카지노 게임에서 조금만 따도 만족하지만 어느 정도 손실을 보면 원금 회복 때까지 위험을 감수하고, 극단적인 손실을 입을 경우에는 정신을 차린다. 즉 국제정치에서 상대에게 극단적 손실을 볼 수 있는 조건을 인식시킨다면 자신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끌고 갈 수 있다는 얘기다. 1994년 미국이 북핵 시설을 폭격하겠다고 했을 때 김영삼 정부의 반대로 실행되지 않았지만 북한이 이를 감지해 꼬리를 내리고 경수로 건설안을 받아들인 것도 이 이론으로 설명된다. 미국은 현재 북한에 대해 우방을 위협하는 핵미사일은 묵인하더라도 미국 본토를 위협하면 참지 않겠다는 것을 마지노선으로 인식시켜왔다.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완성한다면 미국이 레짐 체인지든, 외과적 수술(surgical strike)이든 할 수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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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미국의 경고를 무시할 수도 있을까.

△북한은 마지막 협상 카드로 쓰기 위해 미국에 도달 가능한 ICBM이나 SLBM을 완성하려고 한다. 북한이 그렇게 해도 미국이 대응하지 않을 것이라는 신호를 중국이 보내면 북한이 단행할 수도 있다. 중국은 미국과의 통상분쟁으로 이해관계가 맞물려 미묘한 상황이다. 북한은 기술 개발이 완성된다면 미국의 대선 전후 또는 내년 초에 마지막 게임을 실행할 수도 있다고 본다. 김 위원장의 건강이 나빠지고 북한 경제가 코로나19 사태로 더 어려워진 점도 이런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8일 청론직설 이상환 한국외국어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이호재기자. 2020.05.08


-우리 정부는 북한의 전략무기 도발 가능성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

△우리 정부는 북한을 협상 테이블에 끌어앉히려고만 하지 극단적 손실영역의 마지노선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마지노선을 인식시키지 않고 안보에서 얘기하는 억지(deterrence)가 가능할 수 있겠는가. 북한이 전략핵무기를 완성하기 전에 백령도든, 연평도든, 서해도서 중 하나를 점령하고 미국과 협상해 핵 보유에 대한 인정을 받아내려는 전략을 쓸 수 있다는 주장이 한동안 나왔다. 북한의 벼랑 끝 외교가 이 선에서는 안 통한다는 신호를 보내줘야 하는데, 지키고자 하는 마지노선이 어디인지 잘 모르겠다.

-북한에 급변 사태가 왔을 때 우리 정부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나.

△급변 사태가 오기 전에 미리 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 쉽지 않겠지만 한국의 외교 독트린을 만들어 발표하는 것이다. 우리는 5년 단위로 대북 정책과 외교 노선이 흔들린다. 한 나라의 독트린이 자리를 잡으려면 최소한 20년은 걸린다. 20년 동안 바뀌지 않을 독트린이 나오려면 우리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를 나름대로 반영해야 한다. 북한에 급변 사태가 발생할 경우 우리의 의지가 반영된 결론이 날 확률은 10%도 되지 않을 것이다. 결국 4대 강국의 합의에 동의하는 형태가 되기 쉽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의 주도 가능성을 높이려면 외교 독트린을 통해 남·북방 삼각관계 구도를 뛰어넘는 외교 정체성(identity)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외교 독트린을 만든다고 해도 주변 강국들이 인정해주겠나.

△처음에는 안 먹힐 것이다. 힘으로 눌림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소신 있게 우리가 세운 원칙에 따라 행동하겠다고 하면 때로는 중국을 지지하든, 미국을 지지하든 받아들여질 수 있다.

-갈수록 미국과 중국의 패권전쟁이 격화되고 있는데.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2020년 이후 시장 중심 경제의 미국과 국가 중심 경제의 중국이 세계 패권다툼을 벌일 것으로 내다봤다. 이 싸움의 핵심은 민주주의와 인권 등 인류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있느냐의 문제다. 이 싸움의 전(前) 단계가 기술 경쟁력과 표준 싸움이다. 중국이 인공지능(AI) 기술에서 앞서나가고 있는데, 이는 서구 국가들이 인권·개인정보 보호 문제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이를 지키기 때문이다. 서구는 인권 가치를 공유하지 않는 나라를 빼고 경제 표준을 만드는 표준 전쟁으로 대응하고 있다. 우리는 인권 가치를 공유하는 미국과 안보적인 공감대를 형성할 수밖에 없다. 통일을 위해서는 우리가 지향하는 국가 모델을 담은 외교 독트린을 내세워 중국을 설득해야 한다. 독트린을 갖고 접근해야 명분을 쌓고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

-미국 대선을 앞두고 북미 대화에 진전이 있을 것으로 보는가.

△문재인 정부의 당초 시나리오대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상반기에 방한하고 이어 북미정상회담의 물꼬가 트였으면 변화가 있을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선 승리를 위해 미중 관계와 북미 관계 개선을 돌파구로 삼을 가능성도 높지 않다. 관리 모드가 미국 대선까지 지속될 것이다. 한국에서는 내년에 2022년 대선 레이스가 시작된다. 중국도 코로나19 사태로 미국에 거슬리는 행동을 하기 어렵다. 따라서 북한의 비핵화 시간표도 상당히 늦어질 것이다.

/오현환 논설위원 hhoh@sedaily.com

한국국제정치학회장인 이상환 한국외대 교수가 14일 대학 캠퍼스에서 서울경제와 인터뷰를 갖고 북한의 급변 사태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이호재기자한국국제정치학회장인 이상환 한국외대 교수가 14일 대학 캠퍼스에서 서울경제와 인터뷰를 갖고 북한의 급변 사태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이호재기자


He is…

1963년 서울에서 태어나 관악고와 한국외국어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미시간주립대에서 국제정치경제와 한미관계를 전공해 정치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외국어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정치행정언론대학원장·연구산학협력단장·학생처장 등을 지냈다. 이와 함께 대통령 외교안보자문위원, 통일부 정책자문위원, 교육부 대학평가위원장, 한국정치정보학회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국민권익위원회 자문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오현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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