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어디선가 힘겨운 하루를 보냈을 당신에게 문득 편지를 쓰고 싶어집니다. 빨리 일상을 되찾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지만, 이 ‘잔인한 바이러스’가 좀처럼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오늘도 마음 졸이며 타인과의 모든 접촉을 조심하고 있을, 우리 모두에게 따스한 안부편지를 쓰고 싶어졌습니다. 이 바이러스는 사람을 참으로 서럽게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지극히 인간적인 접촉마저 꺼리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저 사랑을 표현하려 하는 것뿐인데, 다만 친밀감을 전하고 싶을 뿐인데, 우리는 문득 그토록 다정한 포옹도 악수도 피할 수밖에 되었지요. 게다가 방역의 최전선에서 고생하고 있는 의료진들의 고통은 더욱 할 말을 잃게 만듭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사투를 벌이다 의료진이 감염되는 사례가 보도될 때마다 가슴이 너무 아픕니다. 가족과도 만나지 못하고 오늘도 1분 1초가 영원처럼 길게 느껴지는 고통을 겪어내신 모든 의료진께 깊은 감사와 공감의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뉴욕의 한 젊은 의사가 코로나19 감염 후 우울감에 시달리다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뉴스를 보고, 한동안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그는 수많은 사람들을 치료한 훌륭한 의사였지만, 자신 또한 바이러스에 감염된 이후 극심한 고통을 겪었습니다. 얼마나 참담한 아픔과 공포가 그의 삶을 할퀴고 지나갔을까요. 풍요와 번영의 상징인 뉴욕에서 시체가 가득 쌓여있는 냉동차가 발견되는 끔찍한 현실. 제대로 장례도 치러지지 않은 그 수많은 시신들이 며칠 전까지만 해도 우리와 똑같이 숨 쉬며 사랑과 행복을 갈망하는 사람들이었음을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집니다. 언젠가 코로나사태가 완전히 종식되더라도, 우리는 지금부터 미리 코로나 이후의 세계를 준비하며 상처 입은 사람들의 마음을 추슬러야 하지 않을까요. 코로나 이후의 세계를 준비하는 것은 단지 경제살리기를 가리키는 것만은 아닙니다. 고통을 겪은 모든 사람들의 상처입은 마음을 어루만지는 것이야말로 코로나 이후의 세계를 준비하는 절실한 과제가 아닐까요.
최선을 다해 환자들을 돌본 의료진들이 심리적 압박감을 느끼며 괴로워하는 모습은 가장 마음 아픈 소식입니다. 얼마 전에는 대구 중구 중앙교육연수원에서 환자들을 돌보던 간호사 박현우 씨가 마지막 환자들을 구급차량에 태워 보내며 눈물짓는 모습을 보고, 저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이미 충분히 타인의 아픔을 돌봤으면서도 더 많이 보살피지 못해 미안해하는 간호사의 따스한 마음이 짧은 기사를 통해서도 전달돼 가슴이 시렸습니다. 잔인한 바이러스는 우리의 평온한 일상을 무너뜨렸지만, 이렇게 아름답고 눈부신 사람들이 여전히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했습니다.
이렇게 ‘랜선으로 아파하기’를 끝장내려면, 역설적으로 더 열심히 더 조심스럽게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해야 한다는 아이러니가 있습니다. 아직은 다가가서 꼭 안아주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전화나 SNS로 이 아픔을 대신 전달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서 그리운 사람들을 만나 펑펑 울고 지친 어깨를 토닥토닥 두드려주고 꼭 안아주고 싶습니다. 이제 그만 ‘랜선으로 슬퍼하기’를 끝장내고 싶습니다. 인간의 탐욕과 실수는 코로나19라는 무시무시한 심연을 만들어냈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사랑과 자비와 우정과 연대는 마침내 그 무시무시한 심연을 뛰어넘어 끝내 이 아픔을, 이 슬픔을 이겨낼 것입니다. 우리 이 슬픔이 끝날 때까지, ‘랜선’으로나마, 문자메시지로나마, 더 따스하고 더 다정하게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아직 끝나지 않은 아픔을 견뎌냈으면 좋겠습니다. 너무 오랫동안 평화로운 일상을 잃어버린 우리 모두에게 따스한 안부를 묻고 싶어집니다. 당신, 정말 잘 있나요. 우리 부디 서로를 더 많이 아껴주고 더 자주 서로의 안부를 물어주기로 해요. 보고 싶습니다. 그립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반드시 무사하기를 간절히 빕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충격적인 소식들에 가슴이 무너져내리는 우리들이, 부디 지치지 않고, 쓰러지지 않고, 이 어둠의 터널을 뚫고 나아가 눈부신 희망의 길 위에 함께 서 있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