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기업의 유동성 불안을 해결하기 위해 20조원 규모의 저신용 회사채와 기업어음(CP), 단기사채 등을 매입하는 특수목적기구(SPV)를 다음달 출범시키기로 했다. 한국은행은 저신용 회사채 및 CP 매입 기구에 직접 대출을 추진하기로 했으며 정부가 SPV에 지급보증 수준의 출자를 하지 않으면 산업은행에 대출을 해 SPV를 운영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15일 “저신용 회사채 매입기구(SPV)의 최종 자본금 규모를 놓고 내부 협의 중”이라며 “다음달 초 3차 추경이 확정되면 SPV가 출범해 저신용 회사채나 CP·단기사채 매입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다만 새로 출범할 21대 국회에서 3차 추경안 처리가 늦어지면 저신용 회사채 매입기구 설립도 오는 7월로 연기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지난달 22일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열린 비상경제회의에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와 재무부가 힘을 합쳐 회사채 매입기구를 설립한 방식을 벤치마킹해 20조원 이상의 저신용 회사채와 CP·단기사채 등을 사들일 SPV를 만들기로 했다.
이와 관련해 한은은 연준처럼 SPV에 직접 대출을 하겠다는 입장을 정하고 미 재무부처럼 기재부가 SPV에 출자해 지급보증에 나서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주열 한은 총재도 지난달 통화정책회의 후 “연준이 그랬듯 정부 보증 아래 SPV를 설립하는 것은 상당히 효과가 크다고 생각한다”고 밝혀 SPV에 대한 한은의 직접 대출에 기본적으로 동의하고 있다.
기재부는 다만 예산실이 아직 3차 추경안을 확정하지 못한 상태여서 SPV에 대한 출자액 및 출자 방식 결정 등에 시간이 좀 더 걸린다는 입장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SPV의 출범이 금융시장 안정에 큰 도움이 되는 만큼 최대한 빨리 결정하려 한다” 면서도 “3차 추경에 예산 수요가 많아 구체적 지원액과 방식을 결정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기재부는 다음달 초 3차 추경안을 발표할 계획으로 이르면 이달 하순 SPV 설립을 위한 예산 및 지원 방식을 확정할 것으로 전해졌다.
기재부 내에서는 코로나19에 따른 피해 지원 분야가 막대하지만 최대한 균형재정을 맞춰야 해 SPV 설립에 별도 출자금을 배정하지 않고 SPV 운영의 주축이 될 산은에 증자를 하는 것에 그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정부는 최근 두산중공업·대한항공·아시아나 등 코로나19 피해를 입은 기업 등의 지원을 이끌고 있는 산은과 수출입은행에 3차 추경을 통한 자본확충 방침은 확정한 상황이다.
한은은 정부가 직접 SPV에 지급보증을 하는 출자안을 예산 여건상 배제하고 산은의 증자만 단행할 경우 SPV가 저신용 회사채 및 CP 등을 매입할 자금은 산은에 대출해 SPV를 운영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은은 산은에 직접 대출하는 방식이 저신용 회사채, CP 매입에 더욱 효율적일 수도 있다는 의견을 정부에 제시하기도 했다. 다만 산은이 대기업 구조조정에다 40조원 규모의 기간산업안정기금 운영까지 맡고 있어 저신용 회사채 매입기구까지 총괄하면 공룡 수준으로 비대해진다는 비판은 적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한은이 사상 처음으로 증권사와 보험사 등 2금융권에 대한 특별대출제도를 지난 4일부터 실시했지만 금융시장이 안정을 찾으면서 이날까지 이를 신청한 회사는 한 곳도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손철·조지원기자 runiron@sedaili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