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수출 활력 제고 방안을 발표하면서 신규 유동성 지원 방안을 담은 것은 일시적인 자금경색으로 유망 수출기업이 도산하는 사태를 막기 위해서다. 하지만 정부 지원이 수출 실적과 맞물려 이뤄지는 탓에 당장 수출절벽 위기를 겪고 있는 기업을 지원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18일 관계 부처에 따르면 수출기업에 대한 신규 유동성 지원프로그램은 조건부로 이뤄진다. 기업들이 외상 수출 결제일 이전에 수출채권을 현금화(수출채권 조기현금화)하거나 납품계약서를 근거로 제작자금(납품계약 기반 특별보증)을 지원받기 위해서는 수출 실적이 우선 필요하다. 정부로서는 무작정 지원에 나설 수 없으니 수출계약서 등을 일종의 담보 형태로 요구하는 것이다.
문제는 상당수 업체가 이 같은 조건을 맞추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글로벌 수요가 줄면서 이달 1~10일까지의 수출은 69억1,900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46.3% 급감했다. 지난달 1∼10일(-18.9%)보다 감소 폭이 훨씬 더 가팔라진 것이다. 앞으로 상황도 녹록지 않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은 ‘코로나19의 수출 영향 및 전망’ 보고서를 통해 한국 수출은 최근 확진자가 급증하는 미국·유럽 등 선진국에서 경기침체가 본격화되면서 2·4분기에 가장 큰 감소율을 보일 것으로 전망했다.
정부는 하반기 수출 회복세에 따라 신규 지원을 위해 책정한 자금이 무리 없이 소진될 것이라는 입장이다. 정부 관계자는 “지원 방안이 실행된 지 한 달밖에 지나지 않아 자금 집행률이 저조한 측면이 있다”면서 “글로벌 수요가 회복되면 자연스레 집행 규모도 늘어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업체로서는 수출이 반등하기까지 기다릴 여유가 없다고 호소한다. 시중은행에서 자금을 조달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기초체력마저 떨어지는 자동차 부품사, 조선 기자재 부문 중소업체들의 고민은 특히 깊다. 실제 자동차산업연합회가 부품업체 24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달 들어 2차 협력업체의 가동률은 30% 수준까지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부품업체 국내 공장 가동률이 지난 3월 60% 이상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글로벌로 확산된 후 수출물량이 끊기면서 영세 부품업계의 부담이 한층 가중되고 있는 것이다. 연합회 관계자는 “상대적으로 재무구조가 취약하고 업황 침체 영향에 민감한 영세 협력업체들 중 가동률 하락으로 인한 누적된 매출 손실로 이달부터 유동성 문제가 불거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업계는 정부가 ‘보릿고개’를 넘길 수 있도록 자금 지원 문턱을 낮출 필요가 있다고 호소한다. 당장 수출 실적이 없더라도 그간의 실적이나 기술 수준 등을 감안해 경쟁력 있는 기업이 ‘흑자 도산’하는 것은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자동차부품 업계의 한 관계자는 “2차 협력업체만 하더라도 물량이 끊기면서 급여를 못 주는 회사들이 허다하다”며 “업황이 반등하기를 기다리기보다는 일단 급한 불을 꺼야 할 때”라고 했다.
/세종=김우보기자 ubo@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