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들아 잘 지냈니? 거리 두기 해야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5차례 연기한 끝에 전국 고등학교 3학년이 80일 만에 등교한 20일. 오전 7시 20분께 서울 종로구 경복고 정문에서 마스크를 쓰고 등교하던 학생들은 선생님 목소리를 듣고서야 줄을 서기 시작했다. 반가운 친구와 바짝 붙어서 등교하던 학생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제서야 앞 뒤 간격을 두고 천천히 들어왔다. 지도교사들은 학생들을 반기면서도 긴장한 표정으로 비접촉 체온계로 발열체크를 하고 손에 소독제를 뿌려줬다. 종로구청에서 지원한 방역 인력은 등교가 끝나는 8시까지 정문 주변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방역 작업을 계속했다.
학생들은 오랜 만에 일찍 일어나 학교 가는 일이 힘들었는지 피곤한 기색이 있었지만 대체로 학교에 가서 좋다는 반응이었다. 경복고 3학년인 진도석 학생은 “그동안 학원가고 온라인 강의 들으면서 지냈다”면서 “(감염) 걱정은 되지만 학교 가는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최성훈 학생도 “학교에서 급식실에 칸막이를 설치했다고 공지하고 급식시간에 어떻게 밥을 먹어야 하는지 설명해줬다”면서 “전화로 안내를 받고 나서 등교 걱정이 줄었다”고 설명했다.
경복고는 이날 등교한 고3과 교직원을 대상으로 정문에서 발열 여부 확인을 하고 본관 1층에서 화상 열감지기로 다시 검사를 했다. 등교에 앞서 전날까지 교실 책상 배치를 시험 대형으로 띄워놓고 공기청정기, 청소도구함 등을 복도로 빼놓는 방식으로 ‘거리 두기’ 대형을 갖췄다. 이 학교는 학급당 학생수가 평균 25명 정도다. 쉬는 시간과 급식시간에는 교직원이 당번제로 학생들 간 간격 유지를 지도하기로 했다.
학교에서 홀수날에는 홀수반, 짝수날에는 짝수반이 먼저 밥을 먹게끔 편성을 하고 급식실에 칸막이를 설치하는 등 조치를 해놨지만 일부 교직원과 학생들 중에는 교내 감염을 걱정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날 아침에는 한 교직원이 고글로 중무장하고 출근하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자가진단을 통해 등교중지 조치가 내려진 사례는 없었지만 학생 1명은 ‘가정학습’을 이유로 교외체험학습을 신청하고 등교하지 않았다. 이상현 학생은 “온라인으로 수업을 듣다보니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들이 많아 그냥 학교에서 공부하는 게 낫겠다 싶었다”면서도 “점심시간은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학교 측은 수업과 방역을 모두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 부담감을 토로하기도 했다. 외부에 방역 용역을 맡기고 있는데 예산 문제로 일주일에 한번 정도만 가능한 상황이다. 인력 부족과 학생들의 자가진단 지도에도 어려움이 많다. 이경률 경복고 교장은 “우리 학교는 1,000명 이상 과대학교가 아니어서 보건교사가 1명인데 7~800명 정도 되는 학교에서는 2명 정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등교 전 자가진단 문진표 작성에 참여하지 않는 학생이 10~20% 정도 돼 오늘 아침에 또 안내했다”고 설명했다.
이날 고3만 등교했지만 오는 27일 고2, 6월 3일 고1 순차 등교가 예정돼 있어 학교가 긴장하고 있다. 여러 학교들이 고1, 고2 격주 등교 방안을 추진 중인 상황이지만 경복고는 전날까지도 전학년 등교시 학년 간 수업 운영방안을 결정하지 못해 이날 오후 회의를 이어가기로 했다.
이날 경복고를 찾은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최근 이태원 클럽 사태와 관련해 교직원 양성 반응자가 없어서 안심하지만 2차, 3차, 4차 감염자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며 “학교 구성원들이 방역과 학업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조 교육감은 “서울시, 교육부, 교육청, 구청과 함께 방역 의심환자 조사를 진행 중”이라며 “학교와 학원이 방역 최전선이라는 경각심 가지고 거리 두기와 방역에 철저히 협조해주기를 당부 드린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