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유학 중 코로나19 사태로 귀국한 A씨. 발열 증상으로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자가격리자 안전보호’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하라는 권고를 받았다. 개인정보 입력 및 정보 수집에 동의하고 이름과 주소, 전화번호, 항공기 편명 등 신상기록도 따로 제출했다. 입국 이튿날 자가격리 중인 A씨를 방역 당국과 경찰이 찾아왔다. 하루 두 차례 자가진단하고 앱으로 결과를 보내지 않았다는 이유다.
#경기도에 거주하는 B씨. 직장 동료가 코로나 19 확진 판정을 받은 이후 농후 접촉자(밀접 접촉자)라는 이유로 자가 격리됐다. B씨는 권고대로 자가격리자 안전보호 앱을 설치했지만 켜놓지 않았다. 경기도는 B씨의 동선이 파악되지 않자 인근 경찰서 코로나19 전담팀과 합동으로 B씨의 카드사용 및 통신 기록, CCTV 등으로 추적에 나섰다. B씨는 결국 자가격리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됐다.
A씨와 B씨의 사례처럼 중앙방역대책본부 소속 역학 조사관들은 감염병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을 근거로 개개인을 밀착 감시해 동선을 구체적으로 추적할 수 있다. 비상상황에 따른 감염병 24시간 대응체계라고 하지만 사실상 개인에 대한 국가감시와 통제가 강화된 것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도 국민 안전을 위한다는 명분 때문에 개인정보 수집과 활용 범위는 더욱 넓어질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코로나19가 ‘빅 브라더 국가시대’를 가속화 시킬 것이란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조지오웰의 소설 ‘1984’의 주인공 빅 브러더처럼 국가가 권력을 효과적으로 행사하는 특별한 감시체계인 ‘판옵티콘’을 현실화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얘기다. 홍준형 서울대 교수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국가의 감시 기능·역량이 더 중요해질 수 밖에 없다”며 “코로나19 사태로 등장한 감시체계 강화 명분이 강해진다면 국가 권력이 공고화되고 개인 자유 침해나 통제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국민 개개인 일상을 지켜볼 수 있는 거미줄 감시망=개개인에 대한 국가의 감시체계에서 가장 중요한 수단은 폐쇄회로 텔레비전(CCTV)이다. 행정안전부가 발표한 ‘2019년 행정안전통계연보’에 따르면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가동하는 공공기관의 CCTV는 2018년 말 기준으로 103만2,879대가 설치·운영되고 있다.
특히 공공기관에 설치된 일부 CCTV는 줌과 회전기능, 음성녹음 등 단순 기록 장치가 아닌 뛰어난 감시능력을 갖춘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 국가가 언제든지 국민 개개인의 일상을 지켜볼 수 있는 촘촘한 거미줄 감시망이 구축돼 있는 것이다. CCTV 제조사의 연합체인 한국디지털CCTV연구조합의 한 관계자는 “미국의 9·11테러 이후 전염병이 전 세계를 강타하면서 세이프티 도시 구축 명분으로 개인에 대한 통제 명분이 커지면서 빅 브러더 감시 사회를 조장할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스마트시티 기술을 활용해 개발한 ‘코로나19 역학조사 지원 시스템’은 확진자 동선을 10분이면 추적할 수 있다. 경찰청과 여신금융협회, 3개 통신사, 22개 카드사를 통해 카드사용 내역 같은 금융기록과 교통수단, 통신 같은 위치기록 등 개인의 사생활 정보를 수집·분석한다. 개인정보를 조회하는데 사전 동의를 받을 필요 없고 필요에 따라 추후 통보하면 된다.
◇점점 강화되는 국가 감시체계…오남용 방지할 시스템 마련돼야=반면 국가의 감시체계 강화는 국민의 안전과 국가 안보를 위한 시대적 흐름이라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세계적으로도 국가 감시체계가 강화되는 추세다. 미국은 2001년 9·11 테러가 일어난 같은 해 10월에 곧바로 애국자 법을 통과시켜 미국 시민뿐 아니라 전 세계 시민을 도청하고 감시할 수 있는 체계를 갖췄다.
특히 CCTV를 통한 국가의 빅 브러더화는 전 세계적으로 현재 진행형이다. 영국 런던은 2005년 7월 지하철 폭탄 테러사건을 계기로 세계적인 CCTV 도시로 탈바꿈했다. 중국은 CCTV가 가장 많이 설치된 도시 10위권 가운데 8곳을 차지할 만큼 이미 세계 최대 CCTV 보유국가다. 중국은 올해 전국적으로 CCTV 카메라 6억 2,600만대를 운영할 계획이다. 서울은 인구 1,000명당 3.8대 꼴(34위)로 CCTV가 설치되어 있다.
때문에 비단 CCTV뿐만 아니라 방대한 개인정보 수집 및 활용 등 국가 감시권력의 오·남용이 초래할 위험을 방지하는 시스템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정부의 감시체계 강화로 개인 사생활이 없어지며 감시공화국으로 전락할 우려가 있는 만큼 사전에 방지할 대책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문명재 연세대 교수는 “국가감시 체계는 언제든 자의적으로 악용될 소지가 크다”며 “빅 브러더로 나아가는 정부의 감시권력이 개인의 정보에 접근할 권한을 극히 일부로 제한하고 사전에 동의를 얻는 안전장치를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탐사기획팀=이현호기자 hhle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