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IT

"논문용 연구만 열중…예산은 나눠먹기식" [서울포럼 2020]

■포스트 코로나 시대, 과학기술 초격차가 답이다

<4>기초과학 강국의 조건

☞'축적의 시간' 공저자 R&D 진단

11



“연구비는 많이 들어가고 논문은 나오지만 혁신은 없습니다. 그저 논문용 연구만 합니다.”(차상균 서울대 데이터사이언스대학원장)

“연구개발(R&D) 정책이 기업·현장과 유리돼 있습니다. 산학연 협력에서 기업이 빠져 있어요.”(박희재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교수)


“기초연구를 나눠 지원하고 이어주는 컨트롤타워가 없습니다. 나눠먹기식 투자가 만연합니다.”(서승우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

우리나라 과학기술 정책과 R&D 현실에 대한 전문가들의 ‘일침’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R&D 투자가 세계 1~2위를 다툴 정도지만 논문용 연구 위주로 이뤄지다 보니 지식재산권(IP)과 특허 출원 같은 성과는 거의 없고, R&D 예산 지원이 나눠먹기식이다 보니 인공지능(AI)과 자율주행차 같은 ‘퍼스트 무버(first mover)’를 육성하는 속도가 더딜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서울대 공대 교수 26명이 지난 2015년 발간한 ‘축적의 시간’ 공저자이기도 한 차상균·박희재·서승우 교수는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벤처기업을 창업한 경험을 지니고 있다. 데이터사이언스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차 교수는 2000년 데이터 처리 소프트웨어 벤처기업 TIM을 창업한 뒤 2005년 독일 SAP에 400억원에 매각했다. 산업통상자원부 R&D전략기획단장을 지낸 박 교수는 1998년 대학 실험실 창업벤처 1호인 디스플레이 검사·측정 벤처기업 SNU프리시젼을 설립해 코스닥에 상장했다. 도심형 자율주행차 ‘스누버’를 개발한 서 교수는 자율주행차 스타트업 토르드라이브를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창업했다. 이들은 ‘축적의 시간’에서 “미래의 화두는 혁신이며 혁신경영의 핵심인 R&D를 차세대 성장의 원동력으로 삼느냐에 따라 미래 모습이 좌지우지될 것”이라며 “퍼스트 무버로서 시장을 주도하는 창의적 혁신 역량은 도전과 실패를 거듭하면서 축적하지 않고서는 얻을 수 없다”고 주장해 주목을 받았다.

“IP·특허출원 같은 성과 없어

정부 주먹구구식 지원도 문제


범부처 R&D 컨트롤타워 절실”

관련기사





박 교수는 25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R&D의 목적은 지식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핵심기술 개발을 통해 산업 성장과 경제발전을 이끄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국내 교수들이 논문을 쓰면 이미 중국에서는 제품을 생산한다”면서 “연구비를 지원받아 평가를 위한 논문만 쓰고 기술특허를 내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이어 “정부 R&D 예산의 80%가량이 대학과 정부 출연 연구기관에 투입되고 중소기업은 5%가 채 안 된다”고 비판했다.

서 교수는 주먹구구식 평가와 나눠먹기식 예산 지원을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학과 연구기관이 맡은 기초원천기술 연구와 기업이 수행하는 기술 상용화는 별개로 이뤄져야 하며 민간 전문가가 이를 매칭해야 한다”며 “R&D 사업평가 과정에 비전문가가 많다 보니 일관성이 없고 예산 지원이 나눠먹기식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서 교수는 “R&D 예산이 퍼스트 무버를 지원하는 타깃 펀드와 기존 연구를 지원하는 범용 펀드로 구분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차 교수는 국제적 협력을 강조했다. 그는 “AI에 의해 일어나고 있는 대전환은 규모와 속도·타이밍의 게임이며 폐쇄된 생태계와 국내용 연구·정책으로는 이 게임에서 승리할 수 없다”면서 “미국·중국 외에도 우수한 기술력을 보유한 프랑스·독일·영국 등과 연대해 R&D 시작부터 세계와 함께하며 규모의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전문가들은 과학기술 정책 및 R&D 혁신을 이뤄내기 위해서는 부처 이기주의를 극복하고 산학연 협력 플랫폼 구축을 주도할 범부처 성격의 컨트롤타워를 세워야 한다고 한목소리로 강조했다. 차 교수는 “R&D 예산을 여러 부처에 나눠주기만 하다 보니 어디에 썼는지 알 수 없고 성과가 연결되지도 않는다”면서 “국가 R&D 예산 심의·조정 및 성과평가 기능을 수행하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학기술혁신본부로는 R&D 효율성을 높이는 데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국무총리실이 주도해 부처 이기주의를 극복할 R&D 컨트롤타워를 세워서 치고 나가야 한다”고 제안했다. 서 교수도 “기초·응용·상용화로 이어지는 R&D 생태계를 아우르는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성행경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