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영상] '젊음 갑질'에 참는 노인들…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대하기 쉬운 상대'로 경비원·청소부 꼽혀

'앵그리 사회'...약자에게 분노 집중 경향

노인 비정규 근로자들 "맞서기보다 피해"

갑질·폭언 등 부당한 대우에도 "참는다"

"경찰서·노동자단체 등에 적극 신고해야"







입주민의 폭언, 폭행에 시달리다 지난 10일 세상을 떠난 경비노동자 고(故) 최희석(59) 씨 사건의 파장이 커지고 있다. 최 씨를 폭행하고 협박한 혐의를 받는 입주민 심 모씨(49)에 대해 경찰 수사와 고발이 이어졌고 결국 심 씨는 지난 22일 구속됐다. 최 씨의 유족은 가해자인 심 씨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경찰은 같은 피해가 더 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25일부터 ‘공공주택 갑질행위 특별신고기간’을 갖기로 했다.

서울경제썸은 이와 관련해 거리에서 간단한 실험 하나를 진행했다. 우리 사회의 다양한 직업군들이 적힌 자석판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며 ‘가장 대하기 어려운 상대’ 순서대로 나열해달라고 했다. 예상대로 ‘경비원’, ‘청소부’, ‘택배기사’ 등을 가장 대하기 쉬운 상대로 꼽았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마주칠 수 있는 분들이다. 이런 분들은 ‘임계장’이라고 불린다. 경비 노동자로 일한 적 있는 작가 조정진 씨가 처음 쓴 단어다. ‘임시 계약직 노인장’을 줄인 말로, 많은 50~60대 노인들이 은퇴 후에 몸담는 직업군이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일하는 노년층은 약 500만 명. 이들 세 명 중 한 명이 ‘임계장’으로 살아가고 있다. 실험 결과에서 확인되듯 많은 사람들은 이들을 알게 모르게 ‘편한 상대’로 생각하곤 한다. 그만큼 ‘갑질’에도 노출되기 더 쉽다.

숨진 경비원 최 씨는 경비 일을 시작한 지 1년 정도 된 평범한 50대 남성이었다. 주차 문제로 입주민과 갈등을 빚다 폭언과 협박을 당해 결국 세상을 등졌다. 사건 발생 직전까지 최 씨와 연락을 주고받았던 한 이웃 주민은 “최 씨가 마음의 상처, 몸의 상처를 다 받은 상태였다, 자기 딸하고 살려면 근무를 계속 해야 했으니까 아파도 참았던 것”이라고 안타까움을 전했다. 류하경 변호사(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는 지난 13일 “가해자가 ‘둘 중 하나는 죽어야 끝난다, (네가) 그만두기 전까지는 안 된다’고 폭언했다”며 심 모씨를 상해 및 협박, 모욕 등 혐의로 서울북부지검에 고발했다.


경비원들의 이른바 갑질 피해 사례는 반복되고 있다. 이번 사건과 비슷한 사례는 지난 2014년 10월경 입주민의 폭언과 모욕적 행동에 못 견뎌 분신을 택한 서울 압구정의 모 아파트 경비원 사건이 있다. 피해 사례를 종합해보면 가해자들이 경비원과 같은 계약직 노동자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보인다. 직업을 무시하거나 인격모독성 발언을 하는 건 흔하다. “어디 교수한테 덤벼”(2016년 D대학교), “개가 주인에게 짖느냐”(2018년 경기 화성시 OO아파트), “당신들 하는 게 뭐냐”(2019년 H발전)는 식이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를 ‘앵그리(Angry) 사회’로 진단하며 “화를 풀어야 하는데 울분들이 그렇게 약자한테 감정이 터져 나와서 사람을 상처입히고 인권을 훼손하는 상황들이 발생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관련기사





/서울경제썸 영상 캡처/서울경제썸 영상 캡처


어느 때 ‘갑질’로 느끼는지 ‘임계장’들에게 직접 물었을 때 놀라웠던 점은 이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신고할 생각조차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 강남의 한 아파트 주차관리원으로 일하는 이 모 씨는 “(부당한 일이 생겨도) 우리가 이길 수는 없으니 물러난다”고 헛웃음을 지었다. 서울 도봉구의 한 빌딩 청소 일을 하고 있는 박 모(70대, 여성) 씨도 “나이 먹었는데 뭐 얼마나 존경받겠느냐”면서 “(부당한 상황이 생기면) 먼저 피해버리고 만다”고 얘기했다. 경기 김포의 대단지 아파트를 거쳐 현재 서울 마포구의 한 오피스텔 관리직으로 근무하고 있는 김 모 씨도 “사직서도 미리 받아놓고 경비원들이 뭘 잘못하면 바로 “당신 관둬”라고 해고를 통보받곤 했다”고 말했다.

피해를 호소할 곳을 찾기도 마땅치 않았다. 서울경제썸이 ‘경비원 갑질 사건’과 비슷한 사례를 들어 직접 고용노동부나 지역 관할 노동청 등에 신고해보려 했지만 제대로 된 안내를 받기 어려웠다. 여러 번 전화가 돌려진 끝에 경찰서 연락처를 안내받은 게 전부다.

/서울경제썸 영상 캡처/서울경제썸 영상 캡처


/서울경제썸 영상 캡처/서울경제썸 영상 캡처


민간 공익단체 ‘직장갑질119’의 임득균 노무사는 “경비원과 같은 분들을 특정해서 보호하는 법이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임 노무사는 “근로기준법상 ‘감단직(감시·단속적 근로자)’이라는 직종이 있는데,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다른 노동에 비해 피로감이 적은 근로자라고 해서 연장근로와 같은 일부 근로기준법 적용을 제외하는 규정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임 노무사는 입주민으로부터 ‘갑질’이나 ‘폭행’을 당했다면 혼자서 경찰에 신고하는 것보다는 지역별 노동센터와 같은 노동자 대변 단체를 찾아 도움을 요청하는 것을 권하기도 했다.

‘임계장 이야기’의 조정진 작가는 ‘임계장’의 다른 말로 ‘고다자’라는 단어도 있다고 말했다. ‘고르기도 쉽고, 다루기도 쉽고, 자르기도 쉽다’는 의미다. 정부와 지자체는 ’임계장’, ‘고다자’로 함축되는 우리 사회의 비정규직 노인 근로자들을 갑질과 폭행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재발방지대책에 나서기로 했다. 현행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을 4인 이하 사업장까지 확대 적용하고, 괴롭힘 행위자가 소비자나 원청 관계자 또는 회사 대표의 친인척 등 제 3자인 경우에도 사용자가 피해 근로자에 대해 보호조치를 하도록 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강신우·정수현 기자 seen@sedaily.com

강신우·정수현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