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장에 설 수 있든 그렇지 못하든 서울에서 오케스트라와 함께하겠습니다. 필요한 절차를 적합하게 치를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한 달여 전 서울시향의 음악감독 오스모 벤스케가 연락해왔을 때 국내는 엄격한 ‘사회적 거리두기’와 입국 검역 정책을 시행하고 있었다. 어느 누구도 무엇이 가능할지 예측할 수 없었다. 이후 영사관 및 질병관리본부·공항검역소 등과 소통한 결과 한국을 사랑하는 67세의 핀란드 출신 마에스트로는 외국인이 감내해야 하는 2주간의 자가격리 원칙을 흔쾌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해외 유입 확진율이 높아지면서 자가격리가 가능한 숙소를 찾는 일도 녹록지 않았지만 간절함은 통하는 법. 마에스트로가 공항에 내려 1차 검역과정을 마칠 때까지 전달된 목록에 담긴 식료품과 생필품이 숙소 앞으로 배달됐다.
지난해 계약을 위해 그가 음악감독으로 재직하고 있는 미네소타 오케스트라를 찾았을 때 우리는 막 취항한 서울과 미니애폴리스 간 직항 노선을 두고 예사롭지 않은 인연을 축하했다. 해당 항공편으로 올봄 미네소타 오케스트라가 한국을 방문해 서울시향과 함께 학교를 찾아가는 공익 교육 프로젝트를 기획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지난 2월 말러의 교향곡 ‘부활’로 성공적인 취임 연주를 마치고 돌아간 직후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상황이 벌어지면서 항공편은 끊어졌고 투어는 취소됐으며 그와 예정했던 정기공연도 무대에 올리지 못했다. 새로운 시작을 선보일 첫 시즌에 뜻밖의 악재를 만났지만 우리는 낙심하는 대신 한층 긴밀한 연락을 통해 서울시향의 ‘새로운 일상’을 논의했다.
이제 그간 무대를 준비해온 연주자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뚫고 온 음악감독과 만나 새로운 출발을 한다. 연습과 공연은 오케스트라에 일상 그 자체이지만 향후 펼쳐질 ‘새로운 일상’은 그 누구도 겪어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이기에 이를 위한 안전한 환경을 준비하는 것은 경영자로서 책임감이 느껴지는 일이다. 우리는 편성과 출연진을 전면 재구성한 공연기획과 연주자 안전조치, 관객 안전조치, 무관중 공연으로의 유연한 전환 등을 골자로 국내외 오케스트라 및 의료 방역 전문가들의 의견을 취합해가며 매뉴얼을 만들어왔다. ‘언제’ 이상으로 ‘어떻게’가 중요하다는 것, 모두의 안전과 음악을 함께 살리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기에.
결국 준비하던 유관중 정기공연은 예기치 못한 지역사회 감염 확산 사태를 맞아 스트리밍 무대로 돌리게 됐지만 랜선 너머 관중과 함께한다. 국내를 넘어 바이러스라는 공통의 적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 전 세계 시민들에게 ‘원 팀’이 된 서울시향의 음악적 연대의 힘을 보여주고자 하는 헌정 공연이다. 플랜 A와 B, 그 이상이 준비된다고 하더라도 현장에서 음악에 심장을 불어넣는 것은 연주자들의 몫이다. 막 자가격리를 마친 음악감독과 그 마법의 순간을 만들어내기 위해 새로운 일상으로 연주에 나서는 단원들과의 재회의 순간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