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어느 보건교사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린 글이 교사들 사이에서 잔잔한 반향을 일으켰다. 청원인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시작된 2월 이후 학교는 혼란 그 자체라고 전했다. 잦은 매뉴얼 변경, 학사일정 변경 등으로 무엇 하나 손댈 수 없다고도 했다. 교육 당국의 장담과 달리 학교에는 정확한 매뉴얼이 하나도 없고 그저 뜬구름 잡는 소리만 있다는 것이다. 교사들은 묵묵히 학교를 지키면서 맨땅에 헤딩하듯 무에서 유를 창조하며 버티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청원인은 당국에 “정말 단 하루만 학교에 나와보라”고 당부했다. 말로만 방역이 잘되고 있다고 강조하지 말고 학교에 직접 나와서 보고 모든 정책을 결정하라는 호소다.
27일 2차 등교 개학을 맞은 학교 현장은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 첫날부터 지방의 한 고등학교에서 확진자가 나오고 지역 감염이 다시 고개를 드는 것도 부담스럽다. 학교마다 체열 검사, 거리 두기, 스티커와 칸막이 설치 등 아이디어를 총동원하고 있지만 갈 길이 멀기만 하다. 무엇보다 교사들의 버거운 부담이 큰 문제다. 매일같이 지시와 공문이 쏟아지고 수시로 지침이 바뀌는 바람에 정신을 못 차리겠다는 것이다. 수행평가나 봉사활동 시수만 해도 몇 차례나 바뀌었는지 헷갈릴 정도다.
방역활동과 관련해 내려오는 지침이 불분명한 것도 교사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당국은 학교 방역, 지역사회 방역에 치중한다면서도 기본적인 방침은 ‘탄력적’으로 운영하겠다고 선언했다. 원격과 등교수업을 병행하고 상황이 발생하면 학교장 재량에 맡기겠다고 한다. 말이 좋아 재량권이지 사실상 교육 당국의 책임 회피가 아닐 수 없다. 부산시교육청이 확진자 발생 시 엄중히 문책하겠다는 공문을 보냈다가 사과하는 소동을 벌인 것은 단적인 사례일 뿐이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스승의 날을 맞아 “우리나라 선생님들의 열정에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면서 “‘K-방역’에 이은 ‘K-에듀’로 기억될 것”이라고 역설했다.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한국은 정보기술(IT) 강국이자 스마트기기 보급률과 정보통신 능력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라며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역량 있는 교사·학생에게 헌신적인 전문가가 45만명이나 있다”고 치켜세웠다. 원격교육도 개인 역량에 전적으로 맡긴 채 뒷짐만 지더니 일선 교사들의 헌신과 분투에 매달리는 ‘열정페이’와 다를 바 없다는 항변이 터져 나온다. 심지어 당국에서는 교사를 학교 내 방역 책임자로 지정하는 방안까지 검토했다가 방역 전문가 한명 없는 학교를 왜 최전선으로 내모느냐는 비판을 들어야 했다. 결국 교육부는 방역활동 등에 3만명을 투입하기로 했지만 정작 학교에서는 인력 확보가 쉽지 않아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정책과 현실이 따로 노는 격이다.
미증유의 위기상황에서는 컨트롤타워가 세워져 통일된 기준을 마련해야 일선 학교의 혼란과 피해를 줄일 수 있다. 그러자면 현장 의견을 수렴해 방역 전문인력을 배치하고 긴급 사태 발생에 따른 학교별 대처방안과 학사일정 등에 대한 종합적인 대책이 하루빨리 제시돼야 한다.
교육 현장의 혼란은 코로나19에 대처하는 탁상행정의 실상을 보여주는 단면일 뿐이다. 정부는 경제위기를 맞아 기업과 소상공인·취약계층을 살리겠다며 숱한 지원정책을 쏟아냈지만 겉돌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말로는 과감한 정책을 강조했지만 실제 집행과정에서 부처나 기관마다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한 것도 익숙한 풍경이다. 그래놓고 ‘사회적 연대와 협력’을 앞세워 사회 구성원들의 무한 책임과 기부정신을 강요하고 있다. 이런 근시안적 정책으로는 당장은 버틸지 모르겠지만 현실성이 떨어질뿐더러 지속가능하지 않다.
일선 학교에는 등교 개학을 맞아 감사반이 대거 투입됐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 교육 현장에 절실한 것은 혼란만 부추기는 감사반원이 아니라 아이들의 안전을 지켜줄 한명의 방역 전문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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