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블’을 대표하는 아이콘을 꼽으라면 많은 팬들이 ‘아이언맨’을 지목할 것이다. ‘아이언맨’ 시리즈 영화 3편은 전 세계에서 폭발적 인기를 누렸고, 여러 마블 캐릭터들이 등장한 ‘어벤져스’에서도 중심 역할을 맡은 것은 아이언맨이다. ‘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나 ‘스파이더맨 : 홈커밍’ 등 자신이 주인공이 아닌 영화에도 수시로 등장해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아이언맨 뿐만이 아니다. 스파이더맨, 캡틴아메리카 등 마블 코믹스로 출발한 많은 인기 캐릭터들이 마블 콘텐츠 곳곳에 얼굴을 내민다. 마블은 이들 캐릭터들의 지적재산권(IP)을 활용해 거대한 ‘마블 유니버스’를 형성했다. 아이언맨이 그 시작을 알린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다. 2008년 ‘아이언맨’을 시작으로 MCU는 ‘어벤져스’처럼 인기 캐릭터 여럿이 등장하기도 하고 한 작품의 주인공이 다른 작품에 엑스트라로 등장하기도 하는 방식으로 지금까지 영화 22편을 선보였다. 탄탄한 세계관과 캐릭터를 중심으로 꾸준히 이야기가 나올 수 있는 구조를 갖춘 마블은 앞으로 더 많은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한국에서도 하나의 작품이 영화, 드라마, 웹툰 등 다양한 방식으로 재생산되고 세계관을 공유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아예 기획 단계부터 세계관을 만들어 웹툰과 영화가 동시에 진행되는 경우도 나왔다. 탄탄한 IP 유니버스를 구축한 ‘한국형 마블’ 탄생을 향한 첫 발을 내딛고 있는 셈이다.
'원 소스 멀티 유즈' 익숙해진 시대 |
잘 만든 하나의 콘텐츠가 한 번 소비되고 마는 것이 아니라 여러 방식으로 재생산되는 ‘원 소스 멀티 유즈’(one source multi use)는 이제 익숙한 일이 됐다. 봉준호 감독의 2013년 작품인 영화 ‘설국열차’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로 제작돼 최근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에 공개됐다. 얼어붙은 지구, 마지막 인류를 태운 열차가 7년째 달리고 있다는 영화의 큰 뼈대를 가져오면서 총 10개 에피소드로 확장했다.
‘부산행’으로 천만 관객을 동원한 연상호 감독은 그만의 세계관을 다양하게 펼쳐내고 있다. ‘부산행’의 후속편인 ‘반도’ 개봉을 앞두고 있으며, 드라마 작가로 변신해 선보인 tvN ‘방법’도 후속편이 영화로 제작될 예정이다. 네이버웹툰 ‘신과 함께’는 동명의 영화 두 편이 모두 천만 관객을 돌파하며 큰 사랑을 받았으며, 네이버웹툰 ‘신의 탑’은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돼 전 세계에서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음악에서도 세계관 확장이 이어지고 있다. 그룹 방탄소년단(BTS)은 그동안 ‘학교 3부작’ ‘청춘 2부작’ ‘러브 유어셀프’ 시리즈 등 음반을 통해 꾸준히 자신만의 세계관을 형성해왔다. 인기에 힘입어 BTS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웹툰과 게임도 등장했으며, 드라마도 곧 찾아온다.
장르물을 주로 선보이는 케이블 채널 OCN은 마블을 목표로 내세웠다. 올해 개국 25주년을 맞은 OCN는 지난 10년간 ‘보이스’ ‘손 더 게스트’ 등 오리지널 드라마를 제작하면서 개성 있는 작품과 다양한 캐릭터들을 구축했다. 황혜정 OCN 국장은 “마블이 세계평화를 지키는 히어로를 중심으로 한다면 OCN은 권선징악, 사회정의 구현 중심”이라며 “그동안 사회적 공감을 일으키는 애정 어린 한국형 히어로들이 많이 탄생한 만큼 이를 하나의 세계관으로 이어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하나의 IP가 두 달간의 드라마 방영 후 사라지는 게 아니라, 세계관으로 이어지고 팬덤을 형성하는 ‘마블’과 같은 비즈니스 모델을 이어가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어벤져스’에 마블 캐릭터가 여럿 등장했던 것처럼 OCN에서 사랑받은 캐릭터들이 모두 등장하는 드라마나 영화가 하나의 형태가 될 수 있다.
한국에서 이어지는 새로운 시도 |
기존에 있던 IP를 활용하는 대신 아예 새로운 세계관을 창조하려는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웹툰 콘텐츠 기업 와이랩(YLAB)은 다른 웹툰 캐릭터들이 서로 하나의 세계관을 공유하고 연계해 스토리를 진행해나가는 ‘웹툰 유니버스’ 프로젝트인 ‘슈퍼스트링’을 진행하고 있다. 2015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이 프로젝트가 처음 공개된 후 지금까지 이를 발전시켜 ‘부활남’, ‘테러맨’ 등 10여 개의 웹툰이 만들어졌다. 작품들은 모두 독립돼 있지만 캐릭터들이 다른 웹툰에 등장하는 방식으로 서로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슈퍼스트링’은 탄탄한 캐릭터들을 바탕으로 동명의 모바일 RPG 게임으로도 제작될 예정이다.
아예 기획단계부터 함께해 웹툰과 영상을 동시에 제작하는 사례도 처음으로 나왔다. SF 장르물인 ‘승리호’는 카카오페이지와 영화투자배급사 메리크리스마스가 손잡고 기획단계부터 함께해 웹툰과 영화가 비슷한 시기에 공개된다. ‘승리호’는 2092년 우주 쓰레기 청소선 승리호의 선원들이 대량파괴무기로 알려진 인간형 로봇 도로시를 발견한 후 위험한 거래에 뛰어드는 이야기다. 지난 27일부터 다음웹툰에서 연재를 시작해 영화 이전의 이야기를 풀어낸 후, 올 여름 영화 개봉 무렵에 영화와 웹툰 내용이 맞춰질 예정이다. ‘승리호’는 앞으로 웹툰만이 아닌 다양한 스토리 포맷을 통해 세계관과 캐릭터를 확장해 나갈 계획이다. 카카오페이지 측은 “단순히 ‘웹툰의 영상화’나 ‘영상의 웹툰화’가 아니라, 하나의 IP가 무궁무진한 포맷의 스토리로 확장해가며 ‘IP 유니버스’를 구현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기존 팬덤이 있는 IP를 활용하는 것이 아닌 새로운 IP와 세계관을 선보이는 것은 리스크가 존재할 수 있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시즌제 계획이 확실해야 IP가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며 “마블은 ‘아이언맨’에서 번 돈을 다음 작품에 투자를 하는 방식으로 세계관을 키워 갔고, 이것이 가능했던 건 매력적인 캐릭터가 있었기 때문”이라며 “다양한 캐릭터와 그들이 다양하게 겪어낼 수 있는 세계관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