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김광덕 칼럼] 김종인 비대위 선택, 머리 감추는 타조 행태

'꺼삐딴리' 연상시키는 거듭된 변신

개헌, 재정 포퓰리즘으로 야권 분열

비리 전과..도덕성 흠결로 쇄신 불가

젊은 리더 레이스로 '영웅' 만들어야

김광덕 칼럼 컷



타조는 위협을 느끼면 모래 속에 머리를 묻어버린다고 한다.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어리석음과 비겁함을 꼬집는 얘기다. 미래통합당 의원 당선자들은 타조와 닮은꼴이다. 4·15총선 때 ‘야당 심판’ 역풍에 놀란 그들은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을 추대하고 뒤로 숨어버렸다. 스스로 ‘바보’임을 선언한 뒤 통합당호의 운명을 결정하는 키를 넘겨준 것이다. 그들은 ‘흑묘백묘론’에 따라 김종인 비대위를 선택한 것 같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김종인 카드는 당을 수술하기는커녕 진통 효과도 없을 것이다. 한 전문가는 “단지 플라세보 이펙트 즉 가짜 약 효과만 있을 것”이라고 깎아내렸다.

김종인 카드의 첫째 문제는 정치철학과 정체성을 중시하는 ‘정당 정치’ 원칙에 정면으로 위배된다는 점이다. 김 위원장은 정치 색깔 측면에서 ‘360도 풀스윙’을 하면서 비례대표 의원직만 다섯 번이나 지냈다. 군사독재자인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이 각각 이끌었던 정당에서 비례대표로 당선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황교안 전 대표와도 인연을 맺었다. 정치권에서는 “시류에 따라 친일파·친러파·친미파로 변신하는 소설 주인공 ‘꺼삐딴 리’를 연상시킨다”는 얘기도 나온다.

둘째, 권력 분산형 개헌을 외치는 김 위원장은 자칫 정치 운동장을 일방적으로 기울어지게 만들 위험이 있다. 그가 여권의 개헌 논의 제안에 응해 야권이 개헌파와 반(反) 개헌파로 나뉠 경우 여당의 장기집권을 도와주게 된다. 그러면 한 정당이 독주하는 ‘1.5당 체제’가 될 수도 있다. 재정학을 전공한 그가 나랏돈을 푸는 정책으로 여권과 포퓰리즘 경쟁을 벌일 경우 국가경쟁력은 추락하고 야권 분열은 가속화된다.


셋째, 비리 전과자는 ‘개혁 전도사’로 옷을 갈아입더라도 당 쇄신이나 집권세력을 견제할 수 없다. 김 위원장은 지난 1993년 동화은행에서 2억원이 넘는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돼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보수는 도덕성으로 무장하지 않으면 진보를 이기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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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 독선적 리더십으로 인위적 대선후보 만들기에 나서면 결코 정권교체를 이룰 수 없다. ‘여의도 차르’로 불리는 김 위원장은 야권의 잠룡들을 모두 때리면서 ‘1970년대생 경제통을 대선후보로 만들겠다’는 취지를 밝힌 적이 있다. ‘킹메이커’ 역할을 시도하되 그래도 대안이 없으면 자신이 직접 ‘킹’에 도전해보겠다는 속내도 드러냈다.

다섯째, 비대위 임기가 내년 4월까지로 한정되는 게 아니라 더 길어질 가능성이 적지 않다. 통합당을 해체할 경우 비대위 임기 자체가 무력화되기 때문이다. 김종인 비대위의 아킬레스건은 일일이 나열하기 힘들 정도로 많다. 그럼에도 비정상적 체제가 들어서게 된 데는 정치의 기본원칙을 무시한 일부 보수언론의 잘못된 인식도 일조했다.

민주당 비대위 대표를 지낸 김종인 카드로는 플러스 효과를 전혀 기대할 수 없다. 여권의 오만과 실책이 없다면 오히려 마이너스 효과가 나타날 수도 있다. ‘탈(脫)이념’ 시대이지만 늘 정치의 에너지는 정당의 정체성에 대한 국민 신뢰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견제와 균형의 정치를 실현하려면 야당도 살아남아야 한다. 그러려면 난세에 야권의 새 영웅들이 등장해야 한다. 꿈을 가진 인사들이 국민이 기대고 싶은 ‘큰 바위 얼굴’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스스로 갈고닦아 나서야 한다.

용(龍) 같은 리더를 만들어내려면 블레어 모델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 1994년 영국 보수당이 장기 집권하고 있을 때 존 스미스 총재가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 노동당은 최악의 위기를 맞았다. 당시 41세의 토니 블레어는 과감히 총재에 도전해 노동당의 혁명적 변화를 호소했다. 그의 연설을 듣던 당원과 일반 시민들은 기립 박수를 보냈고 일부 사람들은 눈물까지 흘렸다. 통합당에서 비전과 용기·실력·품격·도덕성 등 5가지를 갖춘 젊은 리더들이 몸을 던져서 뜨거운 레이스를 펼쳐야 한다. 그래야 ‘바보들의 행진’을 멈출 수 있을 것이다.

김광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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