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도시락은 점포에 진열하기 힘들 것 같은데요. 같은 단백질 메뉴라면 무항생제 달걀을 쓰는 게 어떨까요?” 지난 5월19일 서울 테헤란로 BGF리테일(282330) 본사의 한 사무실에서 난상토론이 벌어졌다. 편의점 CU의 자체브랜드(PB) 상품을 개발하는 ‘상품연구소’가 격주마다 진행하는 신상품 품평회 자리로, 팀장급 이하의 직원들로 구성된 참가자들은 8개의 시제품을 맛본 뒤 가감 없는 평가를 쏟아냈다. 날카로운 질문공세에 진땀을 빼지만 이들의 젊은 입맛을 반영한 결과 지난해 PB 상품 매출은 10% 이상 증가했다.
# 최근 온라인에서 입소문을 타면서 한 달 만에 판매량이 6배 급증한 과자가 있다. 주인공은 이마트(139480) 품절대란 상품으로 불리는 ‘피코크 초콜릿 샌드위치’. 이 과자는 정용진 부회장도 자주 찾는다는 이마트의 ‘피코크 비밀연구소’에서 3단계의 평가를 거쳐 출시됐다. 까다로운 검증을 거친 피코크 상품들은 지난해에만 2,5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식품 제조업체의 ‘미투상품(인기 브랜드와 유사한 상품)’을 만들기에 급급했던 유통업체 PB가 이제는 제조사들이 모방하는 히트상품을 쏟아내며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 가고 있다. 레시피 개발부터 품질 검증까지 까다롭게 진행하는 ‘식품 연구소’를 가동하면서 대기업 브랜드와 견주어도 손색없는 브랜드로 자리잡은 것. 특히 1~2인 가구 증가로 수요가 늘고 있는 간편식 시장을 정조준하며 더욱 날개를 달고 있다.
◇식품업계 ‘미투’ 부르는 편의점 PB=편의점 CU가 운영하는 3,000여개 상품 중 PB의 비중은 30%에 달한다. 그중에서도 간편식의 종류와 매출은 매년 10% 이상 성장세다. 편의점에서 때우는 한끼가 제대로 된 식사가 된 배경에는 지난 2015년 설립된 ‘상품연구소’가 있다. 고객에게 상품을 선보이기 전까지 모든 과정을 원스톱으로 소화할 수 있는 독자적 연구개발 설비를 갖춘 곳으로 지금까지 출시한 상품 수는 1,300여개나 된다. 상품연구소가 본격 가동되기 전에는 유명 식품 제조회사의 상품을 베껴 저렴하게 선보이는 ‘미투 상품’이 PB의 주를 이뤘다. 그러나 이제는 전세가 역전돼 오히려 식품업계의 미투를 부르는 히트작을 쏟아내고 있다. 최근 식품 업계를 강타한 ‘마라 시리즈’ 상품도 지난해 3월 CU가 처음으로 출시했다. CU 관계자는 “상품연구소가 만들어진 후 간편식에 면류와 샐러드가 추가되고 도시락도 세분화됐다”며 “고객의 입맛과 영양, 취향을 세세하게 공략할 수 있게 되면서 편의점 간편식을 찾는 고객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100% 맛 보장제’ 자신감의 배경=이마트는 최근 피코크 전 상품에 대해 맛을 만족하지 못할 경우 100% 즉시 환불해주겠다는 맛 보장제를 선보였다. 이러한 자신감은 ‘피코크 비밀연구소’를 통한 까다로운 맛과 품질에 대한 검증이 있기에 가능하다. 비밀연구소에서는 유명호텔 주방장 출신 등 전문 요리사들이 레시피를 개발하고 셰프와 바이어들이 전국 팔도의 맛집을 찾아다니며 상품 기획에 나선다. 또 주 2회 상품 품평회를 진행하며 총 3~4단계에 걸치는 까다로운 맛 검증 절차를 통해 상품 출시가 결정된다. 이마트 관계자는 “간편 조리가 가능한 간편식이 인기를 끌고 있다”며 “최근 선보인 ‘오뎅식당 부대찌개’는 한 달간 1만개 이상 팔리며 피코크 밀키드 전통 강자인 밀푀유나베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고 말했다.
◇이커머스도 식탁 공략 박차=쿠팡과 마켓컬리 등 신선식품 새벽배송으로 식탁 공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이커머스들도 PB 상품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쿠팡은 식품 PB ‘곰곰’을 통해 농축수산물부터 냉동식품까지 다양한 라인업을 구축했다. 마켓컬리가 지난 2월 첫 PB 상품으로 선보인 컬리스 동물복지 우유는 출시 100일만에 누적 판매량 11만개를 넘기며 우유 상품 판매량 1위를 차지했다. 마켓컬리는 김슬아 대표도 참석하는 상품위원회를 통해 매주 PB 상품을 비롯해 입점업체 음식 300개 이상을 평가하고 있다. 마켓컬리 관계자는 “품질과 가성비를 모두 충족해 고객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다”며 “데일리 식품 라인업을 추가로 확장할 예정”이라고 전했다.